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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합본 특별판)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한 소녀의 성장을 바라보는 죽음의 신의 이야기
죽음의 신은 소녀를 자주 떠올리고 되뇌어보곤 한다.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각각의 당신이라는 존재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다.
여기서 눈치채겠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죽음의 신과는 많이 다른 죽음의 신이 등장한다. 죽음의 신이 쓴 일기를 보면, 낫은 들고 다지니 않으며 두건 달린 검은 가운은 추울 때만 입는다(추위를 느껴?) 얼굴은 해골 같은 생김새가 아니다. 휴일도 필요하고 감정이 있지만 표현은 안 한다. 특히 남은 자들에 대해 마음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 소설에서 이다.
죽음의 신은 우연히 무덤 옆에서 책을 훔친 소녀를 보게 된다.
그 소녀는 글을 읽지도 못하지만 책을 훔쳤다.
이다. 어려운 상황에 책임지지 못해 엄마는 떠났고 동생은 눈앞에서 죽어버렸다.
처음 책을 훔친 장소가 동생이 묻힌 무덤 옆이었다. 책은 동생과 자신을 이어주는 고리이기도 했다.
책도둑 리젤 메밍거가 새롭게 만난
여기서 나온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은 독특한 인물이다. 유대인에게 빵을 건네줘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하는 등 억압받는 상황 속에서도 이타적인 인물로, 나중에는 지하창고에 유대인 권투선수를 숨겨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 리젤의 친구 루디 슈타이너, 유대인 권투선수 막스, 서재를 공유해 준 시장 부인까지 모두가 특별하다.
리젤이 시장 부인의 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줄곧 생각해왔던 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뭐가 이렇게 다들 따뜻해?'
어떻게 전쟁 속에 리젤이 만난 사람들은 모두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일까? 하다 하다 죽음의 신까지 따뜻하다.
특히, 가 가장 인상 깊다.
루디는 리젤을 좋아해서 항상 따라다니고 도움을 주는 팬인데, 제시 오언스라는 별명이 있다. 히틀러 올림픽 때 흑인이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에 감격을 받고 온몸을 숯으로 칠한 다음 운동장을 마구 뛰어다녀서 얻은 별명이다. 어린 나이에, 그 시절에 차별이 없고 진정한 멋짐을 아는 남자였다. 루디는 남자답고 낭만적이라 책을 읽는 동안 '리젤에게 키스해'라는 문장을 유독 진심으로 응원했다. 루디까지 컨베이어 벨트에 싣다니..너무나 속상했다.
'그냥 제시 오언스처럼 되고 싶었을 뿐이에요, 아빠.'
'안다. 하지만 너는 아름다운 금발에 크고 안전한 파란 눈을 가졌어. 너는 그걸 행복하게 생각해야 돼.'
- 책도둑 -
독일에서 일어난 2차 세계대전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중간중간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다소 더디고 종종 이해하지 못한 문장이 있었지만, 아름다운 문체와 죽음의 신의 시선으로 서술된 그 시절의 암울한 이야기는 충분히 흡입력을 발휘한다. 죽음의 신은 객관적인 눈으로 정보를 전달하여 현실을 상기시켰다.
'매일 밤 리젤은 밖으로 나가 문을 닦고 하늘을 보았다. 보통은 뭘 엎질러놓은 것 같았다. 차갑고 무겁고, 미끌미끌하고 회색이었다. 그러나 가끔 별 몇 개가 용기를 내어 떠올라 빛을 발했다. 불과 몇 분이기는 했지만. 그런 밤이면 리젤은 약간 더 오래 머물며 기다렸다. 별들아 안녕. 기다렸다. 부엌에서 목소리가 들리기를. 또는 별들이 다시 끌려내려가, 독일의 하늘이라는 물에 잠기기를.'
- 책도둑 -
리젤은 동생의 무덤 옆에서 훔쳤던 책을 가지고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에게 글을 공부한다. 이를 계기로 책도둑 리젤은 책을 통해 버텨나가고 성장한다. 글도 몰랐던 소녀가 몇 권 안되는 책을 소중히 하고 읽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이 애절하면서도 흐뭇했다. 사실 리젤이 읽었던 책들은 특별한 책이 거의 없어서, 내용에서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책과 관련된 모든 시간들이 행복했기에 리젤이 책에 집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책 때문에 양아버지와 심야 수업을 했고, 친구 루디와 함께 책을 훔쳤고, 막스와 지하에서 둘만의 추억을 만들고, 시장 부인의 지지를 받았으니까.
낯선 도시의 힘멜거리. 후버만부부의 집을 둘러싼 한마을 사람들이 어느새 친근해지고 한 명 한 명에게 애정이 생겨 마음이 아팠다. 마을이 파괴되고 이웃이 죽는 소식을 들을 때면 이제는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에 애처롭고 애틋한 시선이 깃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루디와 후버만부부의 죽음이 다가왔을 때 혼자 남아 감당해야 할 리젤이 걱정되었다. 시간이 흘러 리젤에겐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죽음의 신이 남은 자들에게 마음 가는 것이 두려워 색을 찾아다녔던 것처럼, 리젤은 남겨진 사람이다.
ps. 책을 다 읽고 다시 처음, 신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길.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