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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평점 :
들어가는 말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불완전함이 가장 위험하게 적용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회구조이며, 사상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그런 사회구조는 불완전함을 그 모태로하여 불합리함을 구축한다.
구석기, 혹은 고조선 등의 사회를 지나 현대사회로 진일보하면서 그런 사회구조의 문제가 더욱 드러나는 것은 다른 것보다도 구조를 지탱하는 구성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기에 그러한 거대한 집단을 이끄는데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하였고, 그 결과물은 대의민주주의였다. 법치국가였고, 삼권분립이었다.
그러나 그런 구조 역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반면, 역시나 불완전한 것은 여전했다. 고로, 갖가지 비리, 부페, 불합리가 드러나고, 사회적 기반을 이루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분노하고 성토한다. 그러나, 이미 구조적으로 꼭대기에 선 자들을 피지배자들이 응징하는 것은 혁명을 제외하고는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분명 일부 독자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느끼게 해준다.
정의란 무엇인가
동명의 서적이 다년간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었다. 전 시대를 통틀고, 갖가지 사상을 총망라하여 이 시대에서 우리가 바라봐야할 '정의'에 대한 개념과 사회적으로 추구해야할 정의를 기술한 서적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학문적인 발걸음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소설에서 집행관들은 스스로의 그 어떤 사익 없이, 그저 사회적으로 처벌받아 마땅한 자들을 그 대상으로 직접 '집행'에 나섰다. 친일파의 잔재, 악질 기업인, 사기꾼 정치가 등을 처단하면서 여론의 힘을 등에 업는다. 물론, 잔인한 행각에 일부 우려의 여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동조하며 공감하였다. 그들을 '집행관'으로써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동감하고 공조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그들이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자들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부정적이다. 물론, 소설 내의 집행관들 역시 스스로를 정의라 여기지 않는다. 단지, 이 불합리한 세상에서 그래도 누군가는 합리적이며 상식적인 '처단'을 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 그들의 논지이다.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영화, 소설, 심지어 만화에서도 항상 정의의 편에 있는 자들은 참, 불합리하게도 곤경에 처한다. 목적이 정의라도 과정이 정의롭지 못한, 냉철한 이성적 문제에 봉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늘, 우리의 정의의 사도들은 정의로운 과정으로 정의를 이뤄낸다.
그것이, 우리가 영웅들을 숭배하는 이유다.
과정의 정의, 결과의 정의
위에도 언급했지만, 어디까지나 필자의 이성은, 정의롭지 못한 과정을 거친 정의는 결국 부정하다라는 이야길하고 있다. 그러나, 또, 처음 언급한 것처럼, 애초에 완벽하지 못한 구조 속에서 과정과 결과 모두 정의롭기를 바라는 것은 그릇된 욕심일지도 모른다.
작은 욕심, 아주 작은 과오. 그런 것들로 우리는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 연예인들을 평가하고 심사한다. 물론, 사회적 지도층이나 오피니언인 자들이 그런 사소한 부분마저 정의롭지 못하다면 당연히 사회를 이끄는 자세에서도 정의를 기대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들 역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본 뜬, 우리의 대표일 뿐이다.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정의롭기 위해서는, 그들을 대표로 만들어준 우리가 먼저 정의로워야, 그 결과인 그들 역시 정의로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