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가
정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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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특히 직장이라는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너무 드라마틱하지만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그것은 직장 내 파벌, 성희롱, 배임과 횡령, 비리, 그리고 조직의 존립 여부를 그 배경으로 한 부합리의 당위성 주장이다. 혹시,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본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미생을 보는 기분으로 이 책을 볼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다만, 유념해야할 점은 이 소설 어디에도 장그래나 오과장, 김대리 같은 선한 자들은 없다는 것이다.

조직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단언하건대 조직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조직은 그 스스로 마치 살아있는 생명인 듯, 비열하게도 살아남는다. 조직 내에서 우리는 마치 하나의 부속품처럼, 톱니바퀴처럼 그저 조직이 굴러갈 수 있도록 챗바퀴를 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직 내에서 숨쉬기 시작한 이상, 우리는 이 조직이 굴러가는데 문제가 되지 않도록 수많은 불합리와 구조적 문제를 그저 용인하고 받아들인다.

누구나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그리고 정의롭지 못하거나 심지어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무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이상한 조직의 생리다. 그리고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임의 방증이다. 이 불합리를, 이 문제를 들쑤셔서 정의롭게 만들고 바르게 고치는 일을 내가 시작하게 되면, 일단 나는 '조직'이 거부하는 사람이 된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불합리와 무관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조직'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며 톱니바퀴를 멈춰세운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의 문제를 긁어내면 부스럼이 생기고, 그 염증은 주변인에게 번져간다. 조직 내 모두가 응당 그 문제는 해결되어야하고 고쳐져야하며 그래야만 '조직'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말미에는 '더 조용히 처리할 수는 없었는지'와 '자기만 독야청정인 줄 안다'는 말을 숙어처럼 달라붙인다. 그들은 조직의 세포, 그 중 백혈구와 같다. '조직'에 해가 된다면 심지어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적으로 간주하며 달려들어 물어 뜯는다.

특히 경제 조직에 정의는 없다

최근 사회복지 및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이의제기가 많다. 정부 역시 조직이며, 자유시장주의를 표방하는 이상, 심지어 국가마저도 경제조직이다. 철밥통이라 명명되는 공무원마저도 엄연히 경제논리에 의해 움직이며, 비효율적이면 인사에서 배제되고 지연 혈연 학벌 등이 승진에 영향을 준다. 일반 기업이라면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러한 부조리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우리는 백혈구인 것을. 우리가 선택한 적은 없지만, 순응하는 순간 우리가 선택한 사회이고 구조이고 조직이 된다. 그저 그렇게 순응하기로 결정한다면, 그렇게 살아가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불합리와 맞써 싸우고 싶다면 우리 모두가 '조직'과 맞서야만 한다. 마치, 자가면역질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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