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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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사회학자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새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헤엄치듯 그 본연의 위치에서 본연의 업을 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사회학자로써 폐지를 줍는 노인(그 중 특히 여성)을 주제로 삼아 필자의 말처럼, 그 어떤 변화를 도모한다기 보다는 문제를 '가시화' 혹은 '기시화'함을 그 목적으로 삼은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염세주의자인 독자로써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학문적 접근 혹은 일견(一見)한 통계적 해석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이자 비난적이다. 사회구조적 문제에 앞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 역시 변하는 거대한 흐름을, 단순히 한 시점(광복 이후부터 현대까지라고 하더라도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한 점에도 미치지 못하는)에서 보고 평가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 자만한 행태이지 않을까.

폐지 줍는 노인에게 주어질 '어떤 복지'

필자는 개인의 어떤 잘못보다는 시대의 흐름과 정책적 편협, 그리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빈곤문제가 더욱 부각되며, 그 문제에 대한 해결 역시 사회 단위의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교육에 빛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기존 노인들이 받던 대우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가정 구조가 무너지면서 대를 이어 이어오던 부양의 고리도 끊겨버렸다. 그럼에도 역부양의 의무에는 지고할 정도로 맹목적인지라 하루 몇 천원의 벌이에도 자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아니, 도움을 주려)한다.

그런 과정에서 재활용품의 순환 고리에서 구조적으로 공석이 생긴, 그리고 노인의 노동력과 경력으로도 충분히 활동이 가능한 재활용품 수거업을 차지하게 된다. 필자의 주장처럼, 이 역시 정부차원 혹은 경제구조적으로 그 빈틈을 없애버린다면 노인들이 각종 사고와 육체적 질병을 일으키는 재활용품 수거업에 뛰어들지 않아도 될 것이긴 하다. 그러나 그 전에 전제가 되어야할 것은, 그렇게 노인의 소득원을 잘라낼 구조적 변화에 앞서 그 노인들의 생계를 책임질 어떤 복지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어떤 복지'가 과연 노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옳은가하는 문제이다. 필자가 들여다본 노인의 빈곤이 과연 노인에게 국한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노인들이 자가, 전세 혹은 월세라도 그들의 주거지에서 소득생활을 영위하는 상황에, 어떤 젊은이들은 그 월세마저 구하지 못하고 고시원에서 아르바이트나 혹은 막노동으로 살아간다. 노인의 낢은 생애가 20년이라고 했을 때, 그 노인이 살아온 삶만큼의 길이를 더 살아내야하는 희망없는 젊은이 역시 많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주어져야할 '어떤 복지'는 없는가.

모든 복지는 현세대가 구세대를, 미래세대가 현세대를 짊어지는 것이다.

개인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의 잘못이 되진 않는다

모두의 책임은 있다. 구조적 문제도 있다. 정책적으로 보완해야할 부분도 있으며, 사회적으로 인식이 바뀌어야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은 이 역시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본인이 매우 염세적인 부분은 인정하면서) 그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과연 저들을 부양할 의무를 지닌 자들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가상의 인물 김영자씨의 자녀는 모두 6명이며, 그 자녀들이 매달 5만원씩만 보내준다고하더라도 30만원이다. 이는 김영자씨가 매달 하루도 빠짐없이 폐지를 주었을 때 벌 수 있는 소득이다. 그 자녀들이 김영자씨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겪은 것도 아니니, 김영자씨가 겪은 사회, 구조적 모순을 적용시키지 않아야함은 부언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그 자식들이 그 부양의무를 다 하지 않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혹은, 젊어서 흥청망청 노름이나 도박에 빠져살다가 기초수급자가되어 역시 본인의 노력없이 살면서 폐지를 줍는 자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필자의 말처럼 모두의 상황은 다르다. 그렇기에 일견한 필자의 예를 통해 그 대상 모두에 대한 복지를 펴는 것은 그 복지를 떠안아야하는 젊은세대에게 큰 죄가 될 것이다.

사회적, 구조적 문제들이 산재해있다. 그러나, 어느 세대이든 그러한 문제들은 있었고,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는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어떤 문제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애초에 해결책이 필요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변해버리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현재 더 집중적으로 조명되어야할 것은 통계적으로만 100만명에 이르는 실직자다. 그들이 바로 구세대를 짊어질 현세대이고, 미래세대를 키워낼 수 있는 현세대이며 '그 어떠한 복지'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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