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2 - 전2권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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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고전은 마치 우리가 맛집을 찾아 헤맬 때, '원조'라고 여기저기 쓰인 글자들에 현혹되듯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불나방처럼 달려들게하는 마력이 있다. 그것은 비록 오래되어 반복적으로 재창조된 덕에 그것을 진부하다고 느낀다하더라도 기본이 탄탄한 백반집의 밥처럼, 특별한 것 없고 새로운 것이 하나 없다해도 먹었을 때 만족감이 높고 건강해진 것같은 느낌을 주는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집필한 작가가, 그것도 평생 실화를 바탕으로 쓴 적이 없음에도 이야기를 듣고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으리만큼 매력적이었던 이야기를 글로 펴낸만큼 기대감이 고조에 이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권의 거의 중후반까지는 고조에 다다른 기대감이 원래 '날개'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서히 추락하는 과정에서 실망이 고개를 들었지만, 1권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원래 이건 비행기가 아니라, 고무공이야. 떨어져야 더 높이 튀어올라.'라고 말하듯이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었다.

로맨스란 마치 온 우주가 그 둘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될 듯 이끌고,

주인공은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을 듯 아름다운 것

항상 서평을 쓰면 고민하게 되는 것은, 과연 이 책을 한 독자로써 평하면서 다른 이에게 의견을 줄 때에 내용에 대한 서술은 어느 선까지 허용되느냐이다. 개인적으로는 결과나 주요 사건에 대해 이미 아는 글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편이라, 늘 내용에 대한 평은 최소화하는 편이다. 하지만, 혹여나 필자처럼 1권 중반까지의 내용에서 글이 그저 탁류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마치 의미없는 듯 흘러가는 느낌에 실망하여 잠시 잠깐 참으면 맛 볼 수 있는 고전 로맨스의 재미를 못 느낄까 우려스러워 조금 적어보려한다.

1권의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말레이시아에 거주중이던 주인공이 전시중 포로로 붙잡히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여성과 아이들 30여 명은, 전쟁중 포로를 돌볼 여력이 없던 일본군이 포로수용소에 이들을 수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각 지역의 냉혈한 일본군 지휘관이 책임을 피하고자 이리저리 이동시키면서 겪은 고초와 노고를 이야기해준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열병, 탈진 등으로 죽는다.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이 소설이 로맨스라는 것만 눈치챘더라면 이 이야기가 내가 기대한 전쟁포로의 감동실화는 아니라는 걸 알았을텐데..

그렇게 살아남은 주인공이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되면서 그 시절 연인을 찾아내고, 찾아낸 연인과 함께 말 그대로 '장밋빛 미래'를 바로 현실화 시키는 이야기이다.

여주인공은 침착하고 단아하며 상냥하고, 남주인공은 순박하고 진실하며 성실하다. 전쟁을 이겨낸 그들은 6년 여만에 다시 만나 결혼을 하는데, 남주인공의 도시는 매우 낙후된 곳이다. 고로, 여주인공이 견디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데, 여주인공은 그런 낙후된 곳에서 살지 못할 거라 말하면서도 남주인공이 삶의 터전을 떠나는 것은 거부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화려한 도시 '앨리스'처럼 남주인공의 마을을 '현대화'시키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그려지는 것이 바로 고전 로맨스다.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어떤 음모나 음해도 없고 그렇다고 누군가의 야욕도 없다.

현대에는 없을 이야기, 그래서 아름다운 이야기

앞서 말했지만, 고전들 대부분은 끊임없이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영감을 받은 작가들은 계속하여 새로이 재창조해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퓨전 요리들이 그렇듯 꽤나(혹은 과한) 양념이 뿌려지고 더해지고 버무려졌으며 그런 입맛에 길들어진 독자들은 가끔 접하는 고전을 정말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짜고 맵게 먹으면 건강에 안 좋습니다. 심심한 것이 건강한 것이죠.'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고전이 건강에 좋아서가 아니라, 그 심심함이 바로 모든 맛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훼방과 음모, 야욕, 복잡한 인간관계와 엮고 엮이는 사건들은 재미를 더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더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 로맨스는, 이 소설은, 마치 어린 아이들의 풋풋한 사랑(이라고 그들이 부르는)을 보는 것처럼 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짓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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