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 심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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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인간은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추해짐을 바라보는 인간 역시 얼마나 더럽혀질 수 있는가. 진정한 사과란 무엇인가. 사과란 존재하는가. 용서란 존재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 그 어떤 문장에도 물음표를 쓰지 않는 것은, 그 어느 것에도, 그 아무도, 대답할 자격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그 어떤 책 중에서도 가장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작가의 실제 경험이 담긴 책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완벽히 타인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있기에, 작가 본인의 경험을 책으로 썼다면, 그것은 단순히 '상상'이나 독자의 '정리'로 완료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험칙의 책을 읽는 것은, '내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공감'을 '겪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위로를 그 목적지로 향하는 공감에 발을 담근다.

가해자에게는 목소리가 없어야한다.

출판사의 편집인이 동봉한 문서의 내용 중 유달리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원고를 읽을수록 이 책이 절대 가해자를 변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의 입장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세세한 내용은 제외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기에 '공감'의 노력을 하게 되어있고, 결국 화자인 가해자의 목소리만 듣게 되는 독자들은 그의 여러가지 이야기와 상황에 대한 자세와, 본인의 과거를 그 원인으로한 핑계와, 종국에는 진심을 담은 그 사과로 인해 '공감'을 해버릴 수도 있다.

요지는, 이 책을, 또, 여성들만 읽고 분노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선을 여성의 입장에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어떻게보면 단순하다. 사과를 받지 못한 가해자가 본인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내용을 통해서, 그리고, 가해자 스스로 모든 사건과, 전후사정 등에 대해 진술하면서 본인의 범죄를 시인하고, 가정 내에서 성범죄가 어떤 흐름으로 일어나고, 사회에서 가정 내의 성범죄를 막기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그리고 가정에서 특히 가부장들의 어떠한 자세들이 성감수성이나 성인지성에서 문제인지를 알리고 싶었던거라 생각한다.

문제는, 페미니스트에 반대하는 진영의 자(어떤 명칭으로 불러야할지 모르겠다.)들은, 결국 이런 글에서 가해자의 과거라던지, 상황이나, 반성하고 과오를 뉘우치며 사과하는 모습에서 면죄부를 불러낸다는 것이다. 양 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한다는 주장에서 나오는 가해자의 목소리는, 참 듣기 싫거니와, 듣고 나서는 돌이킬 수 없이 피해자와 제3자의 마음까지 더럽히고 만다. 게다가 아주 조금이라도 그 마음이 얕다면, 더러움은 정화되지도 못한다.

잊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잊어야 한다.

가해자는 이미 죽었지 않느냐. 산 자는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지난 일은 잊고, 죽은 가해자는 무덤에 묻어버리고, 무성히 자란 잡초 밑에 덮어두고 산 자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범죄는 기억되어야하고, 상처는 드러나 있어야한다. 그래야 미래에 있을 피해자를 줄일 수 있고,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어루만질 수 있다. 하지만 정히 드러내야 한다면, 이는 가해자의 편지가 아니라 피해자의 편지였어야하지 않을까. 작가의 성향이 묻어날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 잔잔한 어투와, 차분한 내용이 주는 느낌은, 오히려 정갈해서 더욱 추악한 가해자의 모습이었고, 그 사과에서 그 어느것도 진정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외려 더욱 분노만 부추겼다. 게다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반대측이라면 이를 양비론의 기조로 삼아 모두 다 피해자인 양 호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이 더 화가 난다.

기억해야한다. 우리는. 모든 피해자와, 모든 가해자들과, 남겨진 사람들을. 하지만 그 어디에도 가해자의 '입장'을 남겨둬야할 공간은 없다.

사과라는 것은 어찌보면 '용서'의 전조다. 개인적으로, 한 인간의 삶에 상처를 낸 자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으므로, 사과할 자격 역시 없음이 맞다.

절대. 사과를 바라지 말자. 사과를 바라느니 더욱 분노하고 더욱 저주하자. 죽으면 후련해하자. 무덤가에 침을 뱉자. 그 편이 오히려 기억의 감옥을 벗어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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