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이미 떠난 사람들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예언자들이다. 

가야 할 방향과 죽은 상태를 알려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많은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 여전히 막막하다.

살아 있으나 자신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한 예언자들을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고 소통하시고자 특별 계시-성서-를 주셨다. 

인간 자신의 상태를 알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함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고 각 개인에게 말씀하신다.

이 모든 것을 중매 하시는 분은 인류 첫 사람에게 계시 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반드시 거치는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하나님께서 친히 육체를 취하셔서 대신 형벌의 흠 없는 거룩한 제물로 드려 부활로 인류의 갈 길을 드러내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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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마무리 하면서 무엇으로 이 힘든 세월을 위로하고 마음을 전할까 하여 글을 올립니다.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슬픔 많은 세상을 불제자들이 공(空)으로 돌려 인연을 초월하고자 한 것과 달리, 그 고통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질서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 자체를 인정하였습니다.

그 진리를 '로고스'라 이름하였는데 아마도 에베소에서 일반화된 키워드였던 것 같습니다. 

에베소 출신의 헤라클레이스토스의 영향력이 후에  계시의 말씀 요한복음 성서를 기록할 때 시대의 진리로 통용되고 있던 언어 '로고스'를  에베소 사도 요한이 차용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알다시피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목격하고 함께한 제자입니다.

저는 설교할 때 창세기 첫 절과 요한복음의 첫 절 분위기가 같다고 언급하곤 합니다.

태초의 창조, 태초의 로고스(변하지 않는 진리, '말씀'으로 번역)는 창세 이후 그 계시가  성취되었다는 것을 요한은 밝힘으로 세상에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있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으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세월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성서에 잘 기록되어 있으니 한 번 확인하면 될 것이고, '로고스' 안에서 진리와 자유를 얻는 것도 예수님을 알면 될 일입니다. 

세상 종말에 계시하신 말씀대로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다윗의 동네에 오셨습니다!

'예수' 이름 뜻은 ' 구원' 입니다.

영원을 결정할 때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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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걸하지 않는다.

 

나는 구걸하지 않는다. 진리가 아니라면.

차라리 죽을지언정...

소년이 가졌던 생각이다.

그리고 그 소년은 죽었다.

 

바람은 느끼는 것이지

이해하거나 알려고 하지 마라.

 

신은 계시할 뿐이다.

인간은 찾지 않을 뿐,

찾아도 스스로 도달할 수 없을 뿐...

신이 원하는 방법으로만 이해하고 알 수 있다.

신이 계시한 대로만 이해하고 알 수 있다.

 

인간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은 헛되다.

오늘도,

영원을 잃어버린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

(잠언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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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반기독교 단체에서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 "고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말했다며 버스에 통으로 광고를 하며 시내를 돌아다니게 한 적이 있었다. 어떤 교수님이 신문에 'rewards'를 어떻게 '심판'으로 번역 하느냐면서 자의적인 해석으로 "국제적인 망신이다" 라고 코멘트 한 적이 있다. 또 어떤 분은 'The Church's Confession Under Hitler'의 책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전혀 다른 긍정적인 내용의 글을 전했다고 언급하였다. 

자신들은 무명해서 유명인의 명성을 빌려서라도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것이겠지만, 오히려 이번 글에서 제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에 대해 알리고자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내가 직접 세상을 심판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불의가 판을 치고 이토록 사람으로 인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많은데 마지막 그 날에 심판의 하나님이 없으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누가 그 눈물을 헤아려 주겠는가!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권력을 자신의 탐욕과 세력 확장, 사욕을 위해 구가하고 있는 자들을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라도 심판 없이 내버려 둔다면 아마 종교개혁의 후예인 그리스도인 중에서 의사들이 많이 일어 났을 것이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의 책임은 더 커서 그 심판도 상응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또한 전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리라.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고 구원함이다.

아울러 심판과 관련된 중요한 말씀은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한복음3장 18절)" 라는 것이다.

(Whoever believes in him is not condemn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stands condemn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believed in the name of God's one and only Son.)


한참 후에 심판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이 땅에서 천국이 시작된 것이고 믿지 않는 이는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땅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선고가 확정되는 것 밖에 일어날 일이 없다.

세상이 아무리 편리하고 만족할 만큼 좋다 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없다면 지옥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인류의 죄값을 대신해서 사형 심판을 받은 사건이다. 이 세상 이대로 살만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필요가 없다. 

알다시피  재판관인 빌라도 조차 예수님이 죄 없다며 손을 씻으며 풀어주려 하였다. 

그런데 민중의 눈치를 보던 빌라도는 끝내 죄없으신 예수님을 죽이도록 허용했다.

죄명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신 메시아 '유대인의 왕'이었다.

누구의 죄 때문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죄가 있다면 말이 되는가?

도대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정의와 심판의 주이시다.

타락 이후,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로마서3장 23절 이하)

그렇다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역한 인류의 첫 조상 이후 모든 인간은 영원히 그 형벌을 받아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 인간은 그렇게 되어도 할 말이 없다. 인간의 대표가 불순종했으니 아담의 후손인 이상 벗어날 길이 없다.

또 한 가지는 인간의 대표가 처음부터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거룩함과 의로움에서 타락하였으니 새로운 인류의 누군가가 대표로 그 형벌을 지고 처벌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단 거룩하신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죄 없는 온전한 자이어야 한다.

이 조건에 부합한 자는 이 세상 인간 중에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반드시 죄값을 치루어야 할 대리자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거룩한 상태의 인간이 요구된다.

종교적으로 대신 속죄할 제물이 필요한 것이다.

아담의 후손에게 아예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는 친히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아기로 인류에게 오셨다.

인류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일지만 이미 첫 사람 아담에게 계시한 것이다. 

인간이 감히 볼 수 없는 하나님인데 볼 수 있는 하나님으로 인류에게 오신 것이다.

왜 하늘에서 그냥 용서하시면 되지 않았을까? 

절대 그냥 용서하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속성상 죄인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

이 점이 반기독교 단체에서 간과한 점이다.

예수님은 인류를 대신해서 새 아담으로 형벌을 받으신 것이다.

'창조주께서는 반드시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하신다.'

그러나 인간의 후손 중에 어떤 용기 있는 자가 대표로 대속물로 드린다 할지라도 자격 자체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내가 직접 세상을 심판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없었고 인류에게 계시한 그리스도 예수를 믿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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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일이 참 많다. 

아니 몇 개 있는데 감당하기에 힘든지 개수로 헤아리기 보다 무게로 느끼려 한다. 

이 놈은 원래 무게가 없다. 


이제 우울하지 않다. 

정확히 그 날이 어제보다 더 가까이 다가 왔다.


불안한 일이 참 많다.

그러나 불안하지 않다.

이 세상에는 그 날에 사라질 영원하지 않을 것들 뿐이다. 

없어질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영혼 깊은 곳까지 숨을 불어 넣고

비틀거리는 감각을 

의자에 앉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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