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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 - 전예원세계문학선 313 셰익스피어 전집 1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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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의 왕 리어는 어느 날 자신의 세 딸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물어본다. 이는 향후 재산과 권력분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중요한 것으로서 딸들은 사뭇 진지한 긴장을 하게 된다. 첫째딸과 둘째딸은 그러한 리어왕의 의지에 부합하는 훌륭한(?) 대답을 해내어 엄청난 양의 부와 명예를 물려받게 되었으나 막내딸 코딜리어는 아버지에 대한 거짓된 사랑의 표현을 거부한 나머지 프랑스왕에게 강제로 시집을 가게된다. 가장 효성이 지극하고, 정직한 막내딸이 그처럼 '무지한'아비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이 희극의 비극적 결말을 예고케하는 결정적인 부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리어왕은 믿었던 두 딸에게 가혹한 푸대접과 불효막심함에서 우러나오는 상식이하의 대우를 받은나머지 충격을 받아 정신이상자에 이르게 된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비바람사이에서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 갈등하는 리어왕의 초라한 모습은 권력과 부가 가진 공허함을 맘껏 비웃는 듯 하다... 충신 글로스터 백작의 두 아들, 에드거와 에드먼드... 에드먼드는 이복형이자 사생아인 에드거를 협잡하여 자신의 지위를 드높이고 출세를 하겠다는 타락한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물론 말미엔 셰익스피어가 철저히 협잡꾼의 비참한 최후를 심판해주기 때문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에드먼드는 자신의 아비인 글로스터의 두 눈까지 멀게한 불효자식이기도 한데 글로스터는 끝내 자신의 오해때문에 '거지'가 되어야 했던 아들 에드거의 모습을 보지 못한체 숨을 거두게 된다.(선은 악의 부정이자 대립물로서 언제나 함께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므로...)

코딜리어는 리어왕의 가슴아픈 사연을 듣고 당장에 프랑스군을 이끌고 와서 자신의 두 언니와(형부 콘월과 올버니공작도 함께) 대치하게 된다. 기묘한 운명의 장난이랄 수 밖에 없을 이 웃지못할 상황은 결국 코딜리어와 리어왕의 '패배'의 결과 다정한 죽음으로 내세로의 여행을 더나며 막을 내리게 되는데... 극 초반에 코딜리어와 함께 궁전에서 내침을 당한 또 한명의 충신, 켄트공작은 리어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필한 진정한 신하의 모습을 보여주며 현실의 정치세계를 조소하는 인물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셰익스피어의 또 하나의 이 비극은 과연 무얼 얘기하는가?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르는 척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모두 다 효자...' 이 귀절은 셰익스피어의 주제의식을 압축해 놓은 매우 적절한 귀절이다. 권력과 명예앞에서 한 없이 조아리던 두 딸에게선 버림을 받고,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 막내딸에게선 목숨도 두렵지 않은 효심을 동시에 누렸던 리어왕의 비참한 한평생... 불충과 불효는 한순간의 단맛으로 인간의 이성을 흐리게 하지만, 충신과 효녀는 처음엔 쓰나 불로장생을 기약해 줄 '불로초'의 그것과도 같은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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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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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에서 윈스턴스미스라는 오세아니아 내부당원과 더불어 그와 함께 호흡했던 독자들마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농락하고 긴장케했던 '텔레스크린'의 집요한 감시와 통제는 현재의 우리에게 결코 '남의얘기'가 될 수 없는 매우 실감나는 시스템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설레임에 취해 감출 수 없는 느낌은 바로 20세기중반에 이미 21세기를 예견해버린 조지 오웰의 탁월한 감각과 지독히 SF적 요소를 수반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현실'적인 설득력을 동시에 전해주는 글의 생명력에 대한 놀라움이다!!

윈스턴스미스는 오세아니아의 외부당원이다. 내부당원과는 달리 그리 풍족한 생활을 하지는 못하지만 국민의 80%에 달하는 일반노동자보다는 차별된 혜택(?)을 누리는 신분에 속하는 인물이다. 소설은 바로 이 윈스턴스미스를 중심으로 일정한 긴장감과 암울함을 유지하며 오세아니아당내의 '비밀'을 철저히 파헤쳐 나가고 있다. 앞서 혜택이라 했지만 사실 그건 거짓말이다. 당의 내규에 복종하고 사상과 역사마저도 날조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것을 '혜택'이라 할 수 있다면, 사실 그 혜택이라는것의 참뜻은 진실을 왜곡한 체 거짓된 현실과의 타협을 빌미로 한 스스로에 대한 기만으로 보는것이 더 타당하다.

오세아니아라는 나라는 빅브라더라는 가상의 지도자(독재자!)를 우상시하게끔 조작된 지식과 강령들을 어릴때부터 자연스레 습득하게끔 당원의 가정에 바이러스처럼 퍼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텔레스크린은 바로 그러한 사상과 강령들에 반하는 행동이나 표정을 짓는 자들을 감시하고 통제, 색출하는 임무를 맡고있는 '몰래카메라'이며, '사상경찰'은 당원중에 당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경(?)한 생각이나 언행을 한다는 정보가 입수되거나 목격하게 되면 그자리에서 '반역자'를 구타,체포하는 임무를 띤 경찰이다. 이러한 사상경찰의 역할의 연장선은 당원들의 가정에까지 파급되는데, 심지어 딸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기막힌 상황도 연출된다.

역사도 불변의진리도 모두 거부하며 모든것을 현재 당의 취지와 사상에 부합하는것으로 변환하고 왜곡하여 또 하나의 '진리'를 만들어내는 엄청난 힘, 그리고 그 힘앞에서 뚜렷한 개성도 발전적인 의견도 상실한체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한 없이 작아져만 가는 당원들의 일상은 전체주의의 극단적 폐단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오웰의 경고에 가까운 메세지로 볼 수 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오웰 자신이 제시한 '혁명'의 가능성은 다름아닌 노동자계급이다. 그들은 비록 헐벗고 굶주린 일상을 살아가고, 당의 내규따위에 관심도 없고, 자세히 알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빅브라더를 부너뜨릴 세력은 오로지 노동자밖에 없다고 오웰은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 궐기가 그래서 무서운것이다. 때문에 오세아니아당도 노동자들에겐 '자유'를 허락했던거겠지...

소설 1984는 '현재진행형'이다. 오웰이 1946년에 예견한 1984년의 기계화된 인간의 의식과 행동은 (1984년으로부터)20년이 지난 지금에 더 의미있는 것들이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백화점을 가도, 은행을 가도, 훌쩍 떠나고 싶어 선택한 드라이브의 자유로움속에서도 우린 항상 '몰래카메라'에 감시받고 있으며 핸드폰이라는 '개인추적장치'가 없으면 하루도 생활을 할 수 영위할 수 없는 현실에 파묻혀 지내고 있다. 아직은 역사가 (그리많이)왜곡되지도 않았고, 사상이 조작되지도 않았으며, 자유가 억압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현대판 '텔레스크린'이 엄연히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다는 상황에서 오웰이 제시한 그 이상의 비극이 우리를 엄습하지 않을거란 보장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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