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감각 - 21세기 지성인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의 정석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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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The Sense of Style을 역자가 글쓰기의 감각이라고 번역한 것은 문체라는 문학적인 용어에서 벗어나 글쓰기라는 대중적인 관심사를 수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지과학과 심리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핑커 교수는 왜 하필이면 글쓰기에 대한 책을 썼을까? 첫번째는 자신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다. 명료한 글쓰기는 불필요한 오해와 낭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잘 쓴 글은 그 자체로 두터운 신뢰를 얻는다. 정확하고 일관된 글쓰기는 내용에 대한 믿음을 준다. 마지막으로, 잘 쓴 글은 무엇보다 인생에 아름다움을 더해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 이나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처럼 글쓰기의 힌트를 얻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든 독자는 잠시 고민해봐야 한다. 대학교 영문학과 한 학기 교재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양이다. 또한 절, 구, 단어 순으로 분해해서 해설하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라면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고대 수메르 점토판에는 당시 젊은이들의 작문 실력이 형편없다는 글이 남이 있다고 한다. 어느 시대나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퇴보를 걱정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누구나 글을 쓰는 SNS시대에 살고 있기에 짤막한 문장에 대한 이해와 가치는 더욱 커진 듯 하다. 인터넷 게시물에 달린 댓글에서는 보석같은 통찰과 위트가 넘침에도 불구하고 정작 A4 한 장을 채우는 개성있는 에세이를 쓸 때는 어쩔 줄 모르는 아이러니가 모니터에 잔상처럼 남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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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헌법을 읽어라 - 흔들릴 때마다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기준에 관하여
이효원 지음 / 현대지성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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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잣대로 내 삶을 규정해 본 적이 있을까? 흔한 교통범칙금 마저 내 본 지 오래된 평범한 인간은 높디 높은 신전 제사장이 읊조리던 신탁의 제문같은 헌법을 곁에 두지 못하고 살았다. 그저 눈에 보이는 자잘한 습관과 관례의 울타리에 묶여 근시안적 삶을 살아온 것 뿐이니 이 책은 적어도 대한민국 헌법이 존재하여 그동안 우리 삶에 유구한 영향을 미쳤음을 깨닫게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내 손으로 뽑는 선거의 자유와 일하고 세금내는 근로와 납세의의무, 교육을 받고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모든 권리와 의무가 한 줄 혹은 두 줄의 조문으로 헌법에 박혀서 우리 삶을 관장한다. 하지만 메마른 법조문을 읽는 건 별다른 감흥이 없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정도는 읽어야 불끈 솟는 애국심이 절로 나겠지만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 혹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는 대목에서는 머리를 갸웃거리게 될 지도모른다. 헌법학자인 저자 이효원은 이 책을 영문대역처럼 조문을 왼쪽에 배치하고 설명과 감상을 오른편에 배치해서 메마른 화분에 물조리개로 물을 주듯 헌법 조문에 생명력을 더했다. 특히 감상의 마지막 단락마다 저자의 감상이 각별해서 헌법학자 보다는 에세이 작가로서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명문장을 선사한다.

"너는 아느냐? 궁중이 적막하기에 바깥 백성들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궁중이 바깥처럼 즐겁다면 백성들은 곧 적막할 수밖에 없다." - 송 인종(중국 송나라 제4대 황제)

이 책의 최대 수확은 장 사이에 배치한 인용문중 이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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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설계자
경민선 지음 / 북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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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뇌를 보존해서 가상현실 혹은 대체현실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한다는 공상은 장르소설의 매력적인 소재중 하나일 것이다. 죽었는데 가상현실에서 계속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작가가 후기에서 고백하듯 한밤 중 불현듯 죽음의 현실적 두려움에 몸서리쳐 본 사람들은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종교를 믿거나 인문학적 유산을 탐구하거나 아니면 나이가 들어 무던해진 감정을 추수릴 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혜택으로 사후 세계를 온라인게임의 서버에서 게임을 하듯 살아간다는 설정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작가는 지옥서버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온라인게임의 방식을 차용하므로써 게임하듯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풀어 나가길 원했는 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미 영화와 드라마에서 가상세계와 대체현실은 잘 팔리는 소재이기에 신선한 맛은 떨어진다. 단적으로 말하면 단행본으로 장르소설을 쓴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웹소설과 웹툰 혹은 영화와 게임이 경쟁하는 공상과학장르는 온전히 책 한 권으로 고집 센 독자를 마지막장까지 이끌기에는 힘이 너무 부치는 일이다. 숏폼과 게임에 중독된 우리의 뇌는 아주 친절하게 인도하는 문장의 배려에서도 쉽게 싫증을 내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으로 죽은 사형수의 뇌를 되살려 상상하기도 힘든 지옥의 세계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한다는 통쾌한 자극은 지금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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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순간, 치트키 독서 - 실패의 순간에 나를 일으켜준 것은 언제나 ‘책’
이혜주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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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별로 없었던 사람이 이런 제목을 달고 책을 내는 건 반칙이다. 편집자 입맛대로 뽑아냈겠지만 실패의 순간과 치트키의 효용을 포기 못한 저자도 한 몫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세상에서 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네이버에서 도서 인플루언서로 활약한다는 저자가 솔직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네들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독자들에게 전염성 강한 영향을 주는 지 말이다. 그녀의 문체는 너무 얌전하고 정갈해서 뭐라 트집 잡을 것도 없다. 상황에 맞춰 책을 추천하는 대목이 거슬리긴 하지만 소소한 자기만의 개성이 담긴 독서 신앙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에세이를 읽을 때면 그럼 나는 어땠지 하고 살며시 고개를 들곤 한다. 이곳 카페에서 한정하면 재작년 후반기에 와서 크레마 관련 정보를 얻고자 어슬렁거리다 덜컥 서평 이벤트를 하게 됐고 간간히 읽고 쓴 게 그동안 팔십 꼭지 정도다. 공란 제외 사백자를 쓰는 건 쉽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예전에 일간신문에 천자 컬럼이 유행할 때 원고지 너댓장을 휘리릭 쓰는 게 글쓰기의 정량으로 생각했었던 그때처럼 말이다, 팔십여 권의 공짜 책을 읽고 마감일을 지켜 서평 비스무리한 걸 써 내는 건 정말 좋은 훈련이었다. 마감 없는 글쓰기는 빚쟁이 없는 채무와 같아서 한없이 늘어지고 나태하게 만든다. 또한 독후감이든 서평이든 나중에 몇 자라도 기록하기 위한 독서는 카페인처럼 정신을 환기 시킨다. 여하튼 독서라는 행위는 남의 문장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확인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아닐까. 타인의 시선으로 따라 가다 보면 결국 자기에게 도달하는 순간이 오게 되니 말이다.

읽으면 쓰고 싶고 쓰게 되면 읽어야 한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각자의 독서 신앙 고백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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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공학 진화하는 인간 -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들이 들려주는 첨단 기술의 오늘과 내일
KAIST 기계공학과 지음 / 해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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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기는 한자 틀 기를 쓴다. 베틀, 형틀 등 사람이나 가축이 동력에 관여한 장치가 전통적인 기계의 의미다. 우스개소리로 가정에서 화투를 기계라고 불렀는데 동음이의어로 그릇 기를 쓰는 기계가 또 있는 모양이다. 기계적이라는 형용사는 판에 박은 듯한 사람이나 혹은 자기뜻이 아닌 남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부를 때도 흔히 쓴다. 그동안의 어감으로는 기계는 우리 생활에 차갑고 융통성 없는 무생물의 대표적인 상징이 된 것 같다. 그런 기계를 연구하고 발전시켜서 기계공학이라는 첨단 학문으로 성장시킨 사람들이 카이스트의 기계공학과 교수들이다. 이 책은 연구분야가 다른 여남은 명의 교수들이 한 꼭지씩 자신의 전공분야와 연구방향을 소개하고 있다.

산업현장의 공작기계, 건설기계 등 전통적인 제조업에 기여했던 기계공학은 학문간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해 인공지능, 반도체, 의료, 소재 등 과학과 산업 전반에 걸쳐 해당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기계공학의 연구는 광범위하다. 4차 산업혁명시대는 기계공학의 성과없이는 굴러가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들은 일반적인 과학교양서와는 달리 일상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첨단기술에 대한 설명을 눈높이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제는 기계적이라는 형용사가 최첨단을 이끄는 유행의 선도자라는 의미로 전환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당신은 정말 기계적이야. 어쩜 그렇게 기계적인지 깜짝 놀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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