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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드 아파트
에스토 에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2년 10월
평점 :
에스토 에무의 만화를 잘 알지 못하는데, 전에 읽었던 책 하나가 꽤 마음에 들어서 이번 책 쇼핑 때 두 권을 더 사버렸다. 곧바로 읽어내려간 책이 ‘해피 엔드 아파트‘인데, 생각보다 좋았고, 그 전에 읽은 커피 시간과 형식상의 유사성이 있어서 편하고 재밌게 읽어내려갔다.
책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여러 주인공들을 내세우지만 사실 이야기의 중심에 서는 인물은 이 이야기들을 써내려간 화자인 소설작가인 ‘나(루카)‘이다.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쫓겨난 루카가 새로운 거처를 찾아 정착한 곳이 바로 행복의 거리 막다른 곳에 위치한 아파트, 그래서 ‘해피 엔드 아파트‘라고 불리는 이 곳이다. 이 곳에서 소설작가인 루카는 새로운 작품을 써서 재기할 계획을 갖게 되는데, 그 소설의 소재는 바로 이 아파트에 사는 매력적이고 독특한 입주자들의 사연이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면 어떤 이야기로 흘러가는지 예상이 가능할 것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 이야기들은 소설가의 시점에서 결국 저마다의 사랑 이야기로 치환된다. 사랑은 모두 하나이되, 세상 모든 사람의 사랑은 저마다의 단 하나뿐인 서사다. 그러니까 이 아파트에는 아파트의 입주민 수만큼의 사랑 이야기가 존재할 것이고, 그 내용을 추적해 서사화하는 것이 주인공의 목적인 것이다. 과연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있었다.
어느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집안에서 나체로 지내며 외출을 단 한번도 하지 않은지 3년이 되는 아티스트와 그의 남자친구, 쌍둥이를 동등하게 사랑하게 된 노에, 변성기를 맞아 말을 하지 않게 된 성가대의 소년과 과거를 간직한 인형깎이 장인,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돌아 결국 이야기는 루카와 루카의 새로운 동거인 하비에게로 향한다. 꽤 설득력 있는 근사한 메타포와 유려한 그림체, 그리고 새롭진 않지만 이런 길이의 이야기에 걸맞는 이야기의 형식까지, 모두가 어우러져 이렇게 괜찮은 작품을 만들었다. 다양한 사랑이야기에 대한 여러 시선은 꽤나 흥미롭기도 했다. 동시에 두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하는 일이 가능한가? 누군가를 상실하게 되는 두려움으로 생기는 극단적인 선택을 존중하거나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책장에 넣어두고 종종 꺼내 읽을 것 같다. 아, 혹시 사랑 이야기에 성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읽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남자니까, 그러니까 사랑의 주체가 되는 인물들에 여성이 없다는 뜻이다.
+ 나중에 알아보니 에스토 에무가 보이즈 러브 장르의 확고한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 내가 처음 읽었던 책은 ‘우동 여자‘, 보이즈 러브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