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귀선
콘 사토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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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와 신세대, 개발과 보존, 신비와 현실, 가능성과 안주같은 것들에 대한 많은 것들이 한 만화에 담겨있다. 콘 사토시의 ‘해귀선‘에 대한 이야기다. 콘 사토시의 만화라 하면, 나는 애니메이션으로서 ‘파프리카‘를 가장 먼저 보았었다. 파프리카는 상상력이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현실세계와 연결한 이야기였다는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있다. 나는 보통 어떤 사람의 창작물을 기억할 때면, 가장 첫 번째로 그를 접한 작품이 가장 인상깊게 기억되는 편인데 콘 사토시는 그렇지 않다. 나로서는 ‘해귀선‘이 가장 인상깊고, 생각날 때면 계속해서 읽어오는 작품이다. 몇 번을 읽어도 흥미롭고, 그가 풀어내는 바다와 인어의 이야기에 흠뻑 몰입된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읽을거리다.



시골 바닷마을인 츠나데마을에는 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마을의 신관들에게는 대를 이어 전해져오는 사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다에 사는 인어의 알을 맡아 7일간 해수를 갈아주며 돌봐주다가 알을 맡은 지 60년이 되는 날에 다시 바다에 돌려보내주면 인어의 축복으로 마을 전체가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알을 돌려주면 인어는 곧 다시 새로운 알을 바닷가에 내려보내며, 이러한 공생의 순환고리가 대를 이어 계속해서 전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 전설의 책임자가 되는 신관의 3대가 주인공이 되어 진행된다.

주인공은 3대 중 손자인 요우스케. 요우스케는 신관으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지 않으며, 인어의 알이라는 것을 매주 찾아가 돌보지만 그것을 정말 믿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요우스케에게 인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마치 부끄러운 질문을 들은 사람처럼 당황하며 ‘그런게 세상에 어디있어‘ 라고 말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알을 위해 기꺼이 뛰어드는 것을 보면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바로서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는 그저 맡겨진 임무인 7일마다 한 번 씩 인어의 알이 담긴 상자의 해수를 갈아주는 것을 이행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며, 인어의 알에 대한 이야기를 믿느냐와는 별개의 것이므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츠나데 마을에 오자키 그룹이 리조트 건설을 추진하며 갈등이 시작된다. 요우스케의 아버지인 현직 신관은 신관의 이름을 빌어 마을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오자키 그룹의 리조트 건설이 원활히 수행되도록 돕는다. 마을의 오래된 거리들은 모두 빈터가 되고, 그 자리에는 오자키 그룹의 야망이 잠식해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염원하는 사업은, 인어의 전설이 시작된 마을 앞바다의 섬, 카미지마에까지 미친다. 카미지마에 빌딩을 세우고 다리를 연결해 관광사업을 벌이려는 것이다.

요우스케의 할아버지는 이것에 극구 반대한다. 카미지마는 마을의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인어전설의 시발점이 된 섬이며, 그곳에 60년마다 인어의 알을 돌려놓는 것이 신관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곳을 헤집는다면 바다는 분노하고 마을의 풍요는 더이상 담보될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요우스케는 그 가운데에서 방황한다.




이 모든 갈등은 결국 인어의 알을 중심으로 해결되어간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장신구쯤으로 여겼던 인어의 알 주변에서 범상치 않은 기현상들이 목격된다. 인어에 대해 믿었건 믿지 않았건,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여부와는 관계 없이 갈등을 계속해서 심화시켰던 것과는 반대로 인어의 알은 모든 갈등 해결의 촉매재가 된다. 그 과정에서 현실을 벗어난 신비적인 체험들이 나타나는 장면들이 아주 흥미롭다. 특히 인어를 암시하는 그림자라던지, 기묘한 인상 같은 것들이 아주 세련된 연출로 언급될 때에는 아주 깊은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바다라는 배경에서 인어라는 생물을 아름다운 인격적 존재로 묘사하기 보다는 미지의 신적인 존재로 보여주는 것이 이 만화의 주된 흥미요소가 된다.

직설적으로 그 모든 사실들(요우스케의 과거 경험한 사건의 진실이라던지, 인어나 인어의 알이 신비적인 존재로 실제 등장하는 장면이라던지)이 얽혀들어 해소되는 시점까지 마지막 최종장은 아주 긴박하게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가장 첫 줄에서 언급한 모든 대립되는 갈등들이 아주 명료하게 대립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일소에 해소되는 장면은 작은 책의 페이지 속에서도 아주 위엄있고 웅장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가장 멋진 장면은 단연 마지막 페이지에 있다. 과거의 일로 인해 바다를 두려워하게 된 요우스케는 그 뒤 한번도 카미지마 섬까지 헤엄치는 마을의 인어축제에 참가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사건을 피하기만 하고 도피하려한 이 인물이 이 이야기의 끝에서는 어떤 존재로 변화하는가. 마지막 페이지의 탁 트인 그 화면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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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마리코 타마키 지음, 심혜경 옮김, 질리안 타마키 그림 / 이숲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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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유아기와 소년기를 함께 보낸 친구가 있다. 옆집에 살고, 어머니끼리 친분이 두터우며, 우리는 서로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모와 이모부라고 불렀다. 그 친구는 부유했고 우리집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뭐래도 가장 친한 친구였으며 함께 있으면 시간의 흐름을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그 아이와 보낸 시간들은 부유하는 꽃잎처럼 기억 속 어딘가에 아주 아련하게 저장되어 있다. 그 잎새의 세밀한 결이나 바람에 날리는 모습 같은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인생의 시작부근 어딘가에서 언제나 함께였다.

시간은 무한하지만 우리의 삶은 무한하지 않다. 시간은 연속적이지만 우리의 기억은 작은 점들의 듬성듬성한 집합과 같다. 우리의 기억을 이어 붙이면 삶이 될테지만,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꺼내어 본다면 그것들은 분명 무한할테지만, 그것은 칸토어가 정의한 무한의 크기로 본다면 우리의 삶보다는 언제나 적다. 때문에 우리는 아주 조밀한 점선이거나 아주 듬성듬성한 점선으로 삶을 기억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친구를 기억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것들이 기억나지만 그 친구와 내가 놀았던 어느 순간의 기억들은 장면과 장면의 이어달리기다. 쓰레기장에서 놀다가 친구가 던진 큰 돌덩이가 단단한 티비 유리에 부딛혀 튕겨나와 내 관자놀이를 때렸던 기억, 성에 호기심 가득한 시절 남자아이끼리 같이 샤워하며 성 역할을 나누어 이것저것 상상하며 키득거리던 기억, 그 아이의 레고 시리즈 중 정말 갖고싶었던 피규어를 인생 처음으로 훔쳐본 기억같은 것들. 그것들은 참으로 사소하고 평범하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우리들만의 특별한 기억이었다.

우리의 나날도 어느 순간 시간의 지나감 속에 단절되었다. 중학교 시절을 통틀어 한 번 그 친구를 만났다. 성년이 된 뒤로 또 한 번 만났다. 귀공가같던 그 친구의 모습은 그 작은 두 지점에서도 눈에 띄게 달라져있었다. 가장 최근에 만났을 때, 그 친구는 자신이 인생의 사건을 통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주 덤덤한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해줬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가족 사이에서 생겨난 작은 균열, 불화, 그리고 그 후 자신에게 생겨난 영문을 모를 도벽이라는 습관까지. 하지만 친구는 이제 그런 상처를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곤 피디가 되고 싶다고, 지금은 집을 나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긴 시간의 공백을 넘어 그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을 머릿속을 방황하며 황망하게 찾았다. 그 아이와의 마지막 기억은 그런 것이었다.


2.

마리코 타마키의 이 그래픽 노블에는 아주 순수한 두 소녀가 등장한다. 주인공 로즈는 매년 여름이면 부모와 함께 해변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낸다. 그리고 로즈와 같이 매년 그 해변에 오는 이웃집 소녀 윈디는 로즈와 십년 째 휴가를 함께하는 로즈의 절친이다. 매년 조금씩 자라는 그녀들의 휴가는 언제와 같이 평범할 줄 알았지만, 그해 여름은 달랐다. 소녀와 숙녀의 사이에 있는 아이들의 흔들림이 만화 전반에 걸쳐 그려진다. 아이들은 금관화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그것을 먹으면 등에서 날개가 나오리라고 믿었던 소녀이기도 했지만, 자신들이 볼 수 없는 성인영화 DVD를 제대로 볼 수도 없으면서 억지로 빌려 보는 숙녀 지망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해 여름, 로즈는 그동안 자신 주변에 늘상 존재했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여러 모습들을 한번에 목도하게 된다.

부모의 불화는 로즈의 동생이 이 해변가에서 유산되며 시작되었다. 친구 윈디는 점점 여자가 되어간다. 윈디는 자기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짝사랑하게 된 던크는 사실 나쁜놈이었다. 던크의 여자친구를 미워하게 된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년 여름에는, 나도 더 큰 가슴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3.

누구에게나 어린시절이 있고,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이 있다. 기억을 불러낼 때 우리 각자는 어떤 기분을 느낄까? 나는 내 친구를 생각하면 무언가 아련하다. 그리고 소년이 청년이 되어 내 앞에 등장해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겹쳐져서 기억 속에 부유한다. 기억속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무질서한 기억에 조금씩 질서가 생겨난다.

소녀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소녀가 청춘이 될 때 느껴지는 세계의 작은 이물감을 이 만화는 아주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그림은 감성적이고, 대사는 핍진하다. 소녀만이 할 수 있는 대사들, 생각들이 이 작은 책에 담겼다. 각자의 오래된 기억들을 소환하는 이 책은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추천할만 하지만, 나와 같이 더께 쌓인 아지랑이의 기억들을 갖고 있는 어른들이 읽어도 좋다.

나도 내년에는 더 큰 가슴을 갖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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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Oldboy 1
츠치야 가론 외 지음 / 아선미디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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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원작이 있는 영화들을 원작과 영화 모두 찾아보는 것은 아니다. 흥미가 있어서 찾아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우연적인 인과에 의해서다. 이 만화는 전자의 경우다. 영화가 워낙 강력한 탓도 있고, 종종 논쟁이 벌어지는 자리에서 가만히 들어보면 원작도 나름대로의 성과가 크다는 주장이 들려오기도 해서 찾아 읽었다.

총 8권으로, 분량상 방대한 코믹스는 아니다. 내가 딱 좋아하는 분량의, 적당한 서사구조를 가진 만화들에 속한다. 해귀선, 언더커런트, 초속 5000km같은 단편 그래픽노블을 제외하면 몬스터나 플루토, 기생수, 터치, 러프같은 만화들이 이정도 분량이다.(하지만 이정도 분량을 선호한다 뿐, 상관 없이 좋은 작품은 다 좋아한다) 아무튼.


2.

평범한 삶을 살아온 평범한 청년 고토가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떠 보니 어딘지 알 수 없는 독방에 갇힌다. 그는 자신을 가둔 자의 정체도, 목적도, 자신이 구금될 기한도 알지 못한 채 무기한의 감금생활을 시작한다. 그 생활이 10년을 지나가며, 고토는 독방에서 정신세계의 아득한 한계를 느낀다. 미쳐버렸어도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사실 앞서 말한 ‘평범한‘이라는 수사와는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티브이와 침대만이 있는 작은 방 속에서 매일 중국음식만을 먹으며(만화 속에서는 군만두만 먹진 않는다) 십 년을 버틴다는 사실은, 게다가 그 기한조차 알 수 없고 자신이 구금된 목적조차 알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범인에게는 절대 가능한 사실이 아니다. 보통은 진작 광인이나 폐인이 되어버렸겠지. 하지만 고토는 어느날 출소를 명받고, 약간의 몸싸움 끝에 기절하지만 캐리어에 담겨 독방에서 꺼내어진다. 주머니속엔 천엔, 옷은 정장 단벌뿐이지만 해방된 고토가 자유를 맞는 장면은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빛나는 달과 함께 묘사되어 있다.

고토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자신에겐 돌아갈 가족이 있고, 연락할 친구가 있고, 되찾을 자신의 삶이 있다. 하지만 고토는 그 길을 택하지 않는다. 10년 간 수 없이 생각하고 고치고 시뮬레이션한 싸움을 시작한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보고는 영화랑 다를 바 없군 할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여기서부터 고토가 역으로 자신을 구금시킨 적을 찾아가기까지의 과정이나, 상대가 어떤 기억으로 인해 악의를 갖고 고토를 가두었다는 설정 등은 영화와 상당히 유사하다. 고토는 처음 찾은 초밥집에서 한 젊은 여성을 만나고, 그 여성은 왠지 모르게 고토를 집까지 데려와 잠자리를 한다. 고토는 그에게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 뒤로 자신의 적과 싸우며 동시에 여성을 지켜나간다. 그리고 자신이 10년 간 먹어온 중국집의 맛을 추적하여 자신이 구금당한 장소를 찾아내고, 그곳에 대한 정보를 전초기지로하여 차근차근 자신의 적을 쫓는다.


3.

원작과 영화가 다른 부분은 사실 작은 설정들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 먼저 적이 품게된 악의의 동기가 된 사건이 아예 다르다. 영화에서는 알다시피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 적의 악의를 만들어내어 관객의 공감을 샀다. 10년 간의 구금과 그것에 수반되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했다는 거대한 일에 대한 동기로서 충분한 설명이 된 것이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적(카키누마)이 품게 된 악의의 동기는 아주 사소한 사건에 불과했다. 자신의 은밀하고 추악한 내면을 바라본 주인공이 자신을 비웃었다는, 그 순간의 사건으로 카키누마는 고토를 10년간 구금한 것이다. 이건 약간 의아하다. 카키누마의 병적인 캐릭터를 이해한다 치더라도, 엄청난 기회비용을 요구하는 이 거대한 사건의 시발점으로는 독자의 입장에서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동기 자체가 달라지니 복수의 방법도 달라진다. 영화에서 오대수가 겪게 되는 그 엄청나고 충격적인 비극과는 달리, 고토는 10년 간 구금된 것 외에 잃은 것이 없다. 사실 10년의 시간 동안에도 고토가 제정신을 잃지 않은 채 자신에게 도전해온다는 것 자체로도 카키누마의 복수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목적은 폐인된 고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으므로. 그러므로 만화 후반부에 전개되는 양측의 줄다리기는 굉장히 우습게 진행된다. 정작 기억의 열쇠는 카키누마가 지니고 있으나, 그것을 알아주길 바라고 안달하는 쪽 역시 카키누마인 것이다. ‘너 나에게 상처를 줬어, 기억하지 못한다고? 제발 알아줘, 제발...‘ 카키누마는 고토가 사건의 결정적 지점에서 자꾸 엇나갈 때마다 등장해 엄청난 힌트들을 직간접적으로 내어준다. 이럴거면 이 게임 왜 시작했어?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보니 카키누마가 카리스마있고 명석한 악당처럼 그려지기 보다는 열등감에 찌들어있는 하찮은 10대 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의 이우진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이는 만화 속 이해할 수 없는 연출들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내가 약간 의아했던 것은, 영화에서 캐릭터들이 종종 이상한 상황에서 긴장한 듯 땀을 흘린다는 것이었다. 카키누마의 첫 등장 씬에서, 그는 사설 감옥의 연락책을 만나는 자리에서 초조한 듯 식은땀을 흘리며 거래 조건을 묻는다. 그리고 연락책이 조건을 제시하자 선듯 거액의 액수를 언급하며 거만한 표정으로 바뀐다. 이러니 캐릭터가 모래성처럼 위태한 것이다. 그의 재력과 비정상적인 인격 수준을 생각하면 마치 복수를 꿈꾸는 소시민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소심하게 거래조건을 물을 수는 없다. 이런 뜬금없는 식은땀 설정이 작품 내내 나타나 긴장감을 어이없게 무너뜨린다.


4.

말해놓은 두 가지 어설픈 점(납득하기 힘든 동기설정과 엉뚱한 연출)만을 두고 보면 딱히 재미있는 작품은 아니었을 듯 싶지만, 사실 재미는 있었다. 난 재미없는 만화는 끝까지 잘 읽질 못하는 성격이라.. 일단은 재미를 보장한 만화들만이 나에게 읽힌다. 10년의 감금과 그 목적에 대한 미스테리를 둘러싸고 손에 쥔 것 없는 한 남자가 끈질기게 자신의 적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은 설정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종종 영화에 비교하여 이 만화의 아쉬운 점을 이야기했지만,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나름 납득했을 설정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이런 사소한 지점에서 인간 내면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니, 카키누마의 열등감과 관련된 그의 내밀한 동기는 이해 가능하다. 다만 그 동기로 인해 벌어지게 된 사건이 너무나 어설펐기 때문에 그의 악당으로서의 역할이 우스꽝스럽게 흔들렸다는 점을 이야기했을 뿐.

여러 조력자들을 통해(가장 큰 조력자는 단연 카키누마 본인이다) 진실에 다가선 두 인물, 마지막에 벌어진 사건은 결국 영화와 같다. 카키누마의 마지막 대사는 그의 본질을 무엇보다 잘 드러낸다. 나는 대사만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캐릭터를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지만, 카키누마의 마지막 대사는 그의 마지막 선택에 동반했기 때문에 더욱 진실되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뒤틀린 인물의 내면세계와 그로인해 비롯된 엄청난 사건이라는 플롯은 나비효과를 연상케 하는 심리물로서 꽤나 인상적이다. 그 인물이 벌이는 사건의 설정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와서, 그것 자체만으로도 만화를 즐겁게 읽어나가게 하는 구심점이 된다. 하지만 뒤틀린 인간이 가진 매력과 치밀하게 설계된 작전의 부재가 어쩔 수 없이 영화와 비교하게 만든다. 상당한 수작이지만 영화에 비견될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박찬욱의 올드보이가 워낙 뛰어나고 강렬한 탓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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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 양장 합본 개정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자크 로브.뱅자맹 르그랑 글, 장 마르크 로셰트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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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그래픽 노블 ‘설국열차‘를 읽었다. 출판사는 다양한 그래픽노블을 출간해서 항상 내게 신뢰를 주는 세미콜론. 찾아보니 민음사 계열의 출판사다. 나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상‘을 꽤 신뢰하는 편이라, 세미콜론에도 더욱 호감이 깊어졌다. 아무튼.

영화에 대한 흥미에 힘입어 책까지 사들고 읽어보게 되었는데, 책의 내용이 영화와 꽤 달라 놀랐다. SF의 기본이자 핵심이랄 수 있는 세계관 및 설정은 거의 같으나 이야기의 줄기가 전혀 다르다. 영화에서의 이야기가 ‘혁명적 이야기인줄 알았건만 알고보니 깽판난 사회학적 실험‘ 정도로 요악할 수 있었다면 이 책의 이야기는 ‘우연적 구원과 우연적 혁명 안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야기 세 개가 옴니버스 식으로 이어지는데, 뚜렷한 목적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이 없다. 어쩌다보니 머리칸으로 전진, 어쩌다보니 혁명의 선동자, 어쩌다보니 세계종말, 뭐 이런식이다. 세상에 대한 뚜렷한 풍자가 인상적인 것 치고 이런 이야기의 진행방식은 이상해보인다. 하지만 계속 읽다보면 진짜 세계 역시 그런식으로 굴러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혁명자는 과연 진짜 답을 알고 날뛰는 것일까? 그들이 진짜로 계획해논 유토피아가 있단 말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이 만화는 그런 물음들에 바람빠지는 답변을 내놓는다.

약간 허무주의적인 이 이야기에 그래도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역시 세상과 닮아있어서다. 그리고 이 만화가 만든 강렬한 세계관이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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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건 & 호킹 : 우주의 대변인 지식인마을 8
강태길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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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작정 서울에 올라가니 재오형이 놀아줬다. 서재페의 아무 잔디밭에나 누워 노래들으며 술이나 마실 생각이었는데, 재오형의 지인 덕분에 끝자락에나마 데미안 라이스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잔뜩 불러주었다. 개인적으로 찡했던 부분은 리사 헤니건 없이 혼자 모든 파트를 소화했던, Volcano를 비롯한 몇몇 곡들, 그리고 마지막 앵콜곡이었던 The blower‘s daughter에서 관객들이 플래시를 흔들며 리사 헤니건의 사비 파트를 따라부르던 장면같은 것들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쌀아저씨는 뮤지션으로서 참 행복하겠구나 생각했다. 좋은 밤이었다.


2.

칼 세이건과 스티븐 호킹에 관한 책을 읽었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어렵지만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칼 세이건이 묘사한 우주의 모습과 호킹이 밝혀낸 시간의 역사들은 다분히 과학적임에도 기묘하거나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읽어놓고도 정확히 이해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엔트로피의 법칙과 열역학 제2법칙을 통해 시간의 불변성을 증명하다가도 통계역학을 이용해 시간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이 꽤나 흥미로왔다. 드레이크의 방정식은 김연수의 소설에서도 읽은 바 있는데, 원더보이라는 그 소설은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주와 시간과 사랑에 관한 소설이었던 것 같다. 이 넓은 우주에 인류가 존재할 가능성은 필연적이었던 것 뿐이며, 외계존재의 여부와 조우 가능성에 지극히 회의적이었던 두 과학자를 통해 새삼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느낀다. (그 와중에 회의주의자인 세이건이 외계생명체 탐사 프로젝트인 SETI에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3.

사실 데미안라이스의 공연장에서 생각못한 사람을 봤다. 그 사람도 날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 아름다운 드레이크 방정식을 응용해 우연히 내가 아는 특정한 누군가를 그때 그 자리에서 만날 확률을 구해보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0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종종 인생에 다시 등장한다. 외계 문명을 찾으려는 인류의 갖은 노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음에도 마주치는 이 우연들이 상당히 기이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 우연들이 반복된다한들, 더이상 내 인생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회의가 날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그냥 지금까지 그래왔던대로, 어딘가에서 항상 건강하길.


4.

우리가 사는 우주는 결국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하는 우주다. 던진 돌이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오거나, 치우지도 않은 방이 저절로 어지르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내가 던진 상처의 말이 다시 내 입속으로 들어가 없어지고, 그 사람의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이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한, 결국 우주는 나를 돕지 않는다. 나는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생각하고, 말을 고르고, 지금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열심해야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중첩되어있는 상태가 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다. 호킹의 무경계 우주에 따르면 우리가 동쪽을 향해 끊임없이 걷는다면 결국 지금 이 자리에 돌아오듯,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여행한다면 결국 과거를 거쳐 현재에 오게 될지 모른다. 인터스텔라의 블랙홀 속 공간, 서가에서 원하는 책을 꺼내 읽듯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는 일도 가능할지 모른다. 엔트로피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그런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사실 물리법칙이나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따위를 모르더라도 우린 추억과 상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간다. 아마 내 인생에 빛의 속도를 따라잡아 인간의 오랜 염원을 이룰 수 있는 시점이 오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굳이 블랙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나는, 우리는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보며 과거를 여행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음으로서 그 앞날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지금 기적보다 더 희박한 확률로 이 순간 이 지구에 지금 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존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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