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귀선
콘 사토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기성세대와 신세대, 개발과 보존, 신비와 현실, 가능성과 안주같은 것들에 대한 많은 것들이 한 만화에 담겨있다. 콘 사토시의 ‘해귀선‘에 대한 이야기다. 콘 사토시의 만화라 하면, 나는 애니메이션으로서 ‘파프리카‘를 가장 먼저 보았었다. 파프리카는 상상력이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현실세계와 연결한 이야기였다는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있다. 나는 보통 어떤 사람의 창작물을 기억할 때면, 가장 첫 번째로 그를 접한 작품이 가장 인상깊게 기억되는 편인데 콘 사토시는 그렇지 않다. 나로서는 ‘해귀선‘이 가장 인상깊고, 생각날 때면 계속해서 읽어오는 작품이다. 몇 번을 읽어도 흥미롭고, 그가 풀어내는 바다와 인어의 이야기에 흠뻑 몰입된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읽을거리다.



시골 바닷마을인 츠나데마을에는 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마을의 신관들에게는 대를 이어 전해져오는 사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다에 사는 인어의 알을 맡아 7일간 해수를 갈아주며 돌봐주다가 알을 맡은 지 60년이 되는 날에 다시 바다에 돌려보내주면 인어의 축복으로 마을 전체가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알을 돌려주면 인어는 곧 다시 새로운 알을 바닷가에 내려보내며, 이러한 공생의 순환고리가 대를 이어 계속해서 전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 전설의 책임자가 되는 신관의 3대가 주인공이 되어 진행된다.

주인공은 3대 중 손자인 요우스케. 요우스케는 신관으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지 않으며, 인어의 알이라는 것을 매주 찾아가 돌보지만 그것을 정말 믿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요우스케에게 인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마치 부끄러운 질문을 들은 사람처럼 당황하며 ‘그런게 세상에 어디있어‘ 라고 말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알을 위해 기꺼이 뛰어드는 것을 보면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바로서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는 그저 맡겨진 임무인 7일마다 한 번 씩 인어의 알이 담긴 상자의 해수를 갈아주는 것을 이행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며, 인어의 알에 대한 이야기를 믿느냐와는 별개의 것이므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츠나데 마을에 오자키 그룹이 리조트 건설을 추진하며 갈등이 시작된다. 요우스케의 아버지인 현직 신관은 신관의 이름을 빌어 마을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오자키 그룹의 리조트 건설이 원활히 수행되도록 돕는다. 마을의 오래된 거리들은 모두 빈터가 되고, 그 자리에는 오자키 그룹의 야망이 잠식해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염원하는 사업은, 인어의 전설이 시작된 마을 앞바다의 섬, 카미지마에까지 미친다. 카미지마에 빌딩을 세우고 다리를 연결해 관광사업을 벌이려는 것이다.

요우스케의 할아버지는 이것에 극구 반대한다. 카미지마는 마을의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인어전설의 시발점이 된 섬이며, 그곳에 60년마다 인어의 알을 돌려놓는 것이 신관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곳을 헤집는다면 바다는 분노하고 마을의 풍요는 더이상 담보될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요우스케는 그 가운데에서 방황한다.




이 모든 갈등은 결국 인어의 알을 중심으로 해결되어간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장신구쯤으로 여겼던 인어의 알 주변에서 범상치 않은 기현상들이 목격된다. 인어에 대해 믿었건 믿지 않았건,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여부와는 관계 없이 갈등을 계속해서 심화시켰던 것과는 반대로 인어의 알은 모든 갈등 해결의 촉매재가 된다. 그 과정에서 현실을 벗어난 신비적인 체험들이 나타나는 장면들이 아주 흥미롭다. 특히 인어를 암시하는 그림자라던지, 기묘한 인상 같은 것들이 아주 세련된 연출로 언급될 때에는 아주 깊은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바다라는 배경에서 인어라는 생물을 아름다운 인격적 존재로 묘사하기 보다는 미지의 신적인 존재로 보여주는 것이 이 만화의 주된 흥미요소가 된다.

직설적으로 그 모든 사실들(요우스케의 과거 경험한 사건의 진실이라던지, 인어나 인어의 알이 신비적인 존재로 실제 등장하는 장면이라던지)이 얽혀들어 해소되는 시점까지 마지막 최종장은 아주 긴박하게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가장 첫 줄에서 언급한 모든 대립되는 갈등들이 아주 명료하게 대립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일소에 해소되는 장면은 작은 책의 페이지 속에서도 아주 위엄있고 웅장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가장 멋진 장면은 단연 마지막 페이지에 있다. 과거의 일로 인해 바다를 두려워하게 된 요우스케는 그 뒤 한번도 카미지마 섬까지 헤엄치는 마을의 인어축제에 참가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사건을 피하기만 하고 도피하려한 이 인물이 이 이야기의 끝에서는 어떤 존재로 변화하는가. 마지막 페이지의 탁 트인 그 화면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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