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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메모리엄 - 2024 올해의 영국 도서상 데뷔 소설 부문 수상
앨리스 윈 지음,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평점 :
#도서제공
인 메모리엄 - 앨리스 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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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3 "전쟁이 아니었어도 내게 키스했을까?"
곤트는 엘우드의 턱을 봤다. 흐트러진 새카만 눈썹을 봤다.
매끈한 황갈색 피부에서 자란 털은 하나하나가 기적 같았다.
두려 울 만큼 유혹적인 입술의 곡선.
전쟁이 아니었어도 곤트는 그에게 키스했을까? 물론 아니었다. 절대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곤트는 겁쟁이였으니,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오직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곤트는 그처럼 무모해질 수 있었다.
"아니. 안 했을 거야."
곤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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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0 곤트가 다가와 엘우드의 허리를 잡아서 끌어당겼다.
"시드니라고 불러.” 엘우드가 말했다.
"시드니." 곤트는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말했다.
그의 손이 엘우드의 얼굴에 닿았고, 가면 가장자리 밑으로 손끝을 넣었다. 그리고 이마를 맞붙였다.
"그건 널 가진다는 뜻이야."
곤트는 경고의 뜻으로 힘주어 말했다.
엘우드가 그런 소리를 싫어 할 것이라는 듯이.
엘우드는 울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흘러야 황무지처럼 메마른 마음이 젖을 것 같았다. 그래도 눈물은 고이지 않았다.
"넌 날 가질 수 있어."
곤트에게 말하고 난 뒤 엘우드는 갑자기 숨 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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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늘 굵직하고 거대한 역사로 기록되지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결국 아주 개인적인 상실이었을 것이다.
[인 메모리엄]은 전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두 인물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끝내 다 말하지 못한 마음에 대한 소설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조차 시대와 상황 앞에서는 숨겨야 했고, 말보다 침묵이 더 안전했던 시절이었다는 점이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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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전쟁 장면 자체보다도, 전쟁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쉽게 빼앗아 가는지에 대한 감각이었다. 총성과 폭격보다 더 잔인했던 것은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는 현실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오늘의 감정에조차 충실할 수 없다는 모습이 더 슬프게 다가왔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가 너무 늦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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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곁에서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함께 있었던 시간의 전체가 통째로 멈추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나니 거창한 전쟁 서사보다도, 혼란 속에서도 끝내 누군가를 사랑했던 마음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 시대가 아무리 거칠고, 비참해도 사람은 결국 사람을, 그 사람과의 추억을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이 책에서는 유독 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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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전쟁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라 생각했는데, 읽고 나니 남은 건 전쟁보다 그 안에서 끝내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이었다.
숨 가쁜 전개 때문이 아니라,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을 붙잡아서 읽는 내내 숨을 참으며 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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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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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메모리엄 #앨리스윈 #다산책방 #영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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