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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가 필요해? - 당신의 로맨스를 해결해 드립니다
린다 그라임스 지음, 우진하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3년 9월
평점 :
카멜레온처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 능력을 가졌다면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가? 란 질문에는 무궁무진한 답변이 있을 수 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 혹은 범죄와 복수에 사용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양날의 검이다. <해결사가 필요해?>에선 어댑터(변신능력자)인 시엘 할리건이라는 여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시엘 할리건은 변신능력자인 점을 활용해 '라이프 코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의뢰인으로 변신해 문제를 해결해 준다. 문장을 단순히 생각하면 어렵지 않은 일 같지만, 난 이 부분에서 미국과 한국의 인식차이,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어떤 곤란한 일이 닥쳤을 때, 우리는 종종 누군가 날 대신해서 문제를 대신 처리해 주길 바란다. 연애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서 정말 가능하다고 한다면 과연 실제 상황에서 연애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길 진정 원할까?
만약 사귀는 사람과의 이별선언이라면 말을 전하기가 어렵고, 고민스럽기에 시엘 할리건과 같은 '해결사'가 현실에도 있다면 이용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애인과 다시 볼 사이도 아니니까. 그러나 <해결사가 필요해?>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스토리는 일반적인 상식선이라고 보기가 어려웠다. 부잣집 딸이자 젊고 아름다운 '미나'라는 여성이, 현재 남자친구인 트레이와 결혼하고 싶은데, 그의 청혼낼 받아낼 자신이 없어서 그에게 청혼을 받으라는 목적으로 시엘 할리건을 고용한다. 시엘은 만능이 아니다. 만약 트레이가 미나에게 원래 호감이 없었다면 일주일의 짧은 휴가에서 청혼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미나란 인물도 이해할 수 없다. 트레이와 결혼한다면 프러포즈는 늙어가면서 추억거리가 될 텐데.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소중한 추억을 스스로 포기하다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다른 여자의 남자와 막 재미를 보려는 찰나 쾅 하고 뭔가가 폭발했다. 사실 이렇게 바로 일이 터지지 않았다면 나는 벌인지 뭔지도 잘 몰랐을 것이다. 일과 관계된 남자와 재미를 보는 것은 업무의 일환으로 의뢰인과 이미 합의한 계약 사항이지만, 하느님은 조금도 사정을 봐주실 생각이 없으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면 이게 보통 기회가 아니라는 점은 다들 인정할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계약 내용에 대해 심각하게 의견을 조율하고 나면 "저기, 당신이 내 모습을 하고 있을 거니까 그이가 진짜로 바람 피우는 거라고는 할 수 없겠죠? 그렇죠?" 하고 묻는 의뢰인이 있다.┛ (14P 발췌)
시엘의 시점으로 1인칭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책을 읽으면서 위 부분에서 가장 놀랐다. 아무리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남자친구와 스킨십이나 성관계를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겐 못할 것 같다. 이 부분이 문화적 차이에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초반부분의 몰입이 상당히 힘들었다.
그리고 이 소설과 일반적인 한국로맨스소설과 가장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남자주인공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독자가 애정을 가지고 빠져들 수 있는 남주가 있어야 반사적으로 여주인공에 몰입도 잘되고 재미있을텐데……. 중심격인 남주가 뚜렷하지 않기에, 여주인공 시엘 할리건의 마음은 계속해서 변한다. 그 변화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처음엔 마크를 좋아했다가, 닐스란 인물에게 흔들렸다가, 결말부분에선 빌리에게 정착한다. 사랑은 변하는 거라지만, 어느정도의 일관성도 필요한데 말이다.
<해결사가 필요해?>는 판타지와 로맨스의 결합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니 판타지적인 면에서도, 로맨스적인 면에서도 만족감이 들지 않았다. 사건위주로 진행되고, 어댑터 능력이 로맨스에 필수불가결인 것도 아니라서 판타지와 로맨스가 섞이지 않고, 물 위의 기름처럼 분리되는 느낌이었다.
판타지적인 관점으로 보면, 어댑터(타인으로 변신하는 능력)에 대한 설명도 불분명하다. 비교하자면 '데스노트'는 현실에 불가능한 허무맹랑한 공상이지만 노트의 규칙과 법칙을 세부적으로 조정함으로써 현실성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어댑터 능력에 대한 의문은 책을 읽어도 풀리지 않는다. 어댑터는 한번 A란 인물로 변신하면 그 후엔 A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변신가능한데 어댑터가 A로 변신하고 있는 사이에, 불의의 사고로 본래의A가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면 어댑터에겐 어떤 영향이 있는지? 과거에 한번 변신한 인물은 이후 에너지를 흡수할 필요없이 자유자재로 변신이 되는지? 어댑터끼리도 서로 변신했을때 자신임을 밝히지 않으면 상대방이 어댑터인 것을 알 수 없는데 이를 범죄적으로 이용하는 어댑터가 있을 것 같고, 또 해리포터에서 마법세계는 머글들과 다르게 운영되는 것처럼 어댑터끼리의 사회와 네트워크망이 존재할 것 같은데…? 그밖에도 계속 수많은 의문이 들었다. 판타지적인 초능력을 설정했으면 그것에 대한 세부설정이 더 필요할 듯싶다.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미나로 변신한 시엘이 납치되었던 장면이다. 여기서 시엘은 닐스에게도 흔들리게 되는데, 닐스는 네오바이킹이라는 나쁜 집단 소속이지만 시엘에게 나름 잘해준다. 스톡홀롬 신드롬이 떠오르고 재밌었다. 후반부로 가면 닐스에게도 다른 반전이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는 네오바이킹의 목적... 샴푸와 바디워시가 무슨 관련인지? 스테로이드를 첨가해서 만든다는데 무슨 내용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검색해보니까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이 큰 운동능력향상보조물이라는데. 네오바이킹이라는 집단의 목적이 책에선 스웨덴의 남성들의 마초화? 바이킹화? 라는데 그 정확한 개념을 모르겠다.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기대를 했는데 전반적으로 지루하다. 결말 부분의 네오바이킹과의 대치상황에 시엘의 활약에서도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표지만큼만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으면 좋았을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