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온의 연인 - Navie 264
김수지 지음 / 신영미디어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고, 여운이 강하게 맴돌아 한동안 멍하게 느껴질 만큼 묘한 느낌의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평범한 로맨스 이상의 뭔가가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 작가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쾅, 하고 내게 박혀왔다.

 

후기에서 말하는 작가의 집필의도가 인상적이었다. <미녀와 야수>에서 미녀의 사랑으로 야수는 왕자로 변한다. 그러나 동화 속 미녀는 흉측한 야수의 모습을 사랑했는데, 그 괴의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졌는데 그거야말로 정말 감동적인 게 아닐까하는 의문. 장애를 극복하는 기적과 같은 사랑이 아니라, 그러한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 함께 있는 것. 부족한 모습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 야수가 왕자로 변하지 않는다 해도.   

 

<미온의 연인>은 1부, 남주인공 지수혁 시점의 '미온의 연인'편과 2부, 여주인공 김유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얼굴 없는 연인'편으로 이어진다. 섬세하고 복합적인 감정선이 감동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서술과 로설에선 드문 약간 건조하게 느껴지는 문체가 좋았다.  

 

김유민은 선천적 안면인실증을 앓고 있다. 그녀의 세상에는 얼굴 없는 사람들뿐이다. 부모도, 친구들도, 남편마저도. 그래서 그녀는 두렵다. 상대방이 원하는 만큼 자신의 감정을 줄 수가 없어서. 일상생활에선 그것을 표현하는 법이 없지만 그녀의 작품세계, 화폭에만은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쏟아내듯 표현해 낸다.

 

수혁과는 정략결혼을 한 관계. 첫만남에서 수혁은 다른 애인이 있고, 너와는 아무런 감정이 없을 것이라고 못 박는다. 사업상의 이윤을 위한 수혁과, 감정에 지쳐버린 유민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관계였다. 큰 키에 매력적인 마스크를 가진 수혁인데, 유민은 두번째 만남에서 수혁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 여자 어딘가 이상하다. 수혁의 시점에서 유민의 괴의함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난다.

 

유민은 정말 독특한 캐릭터였다. 다른 건 미적지근하면서 집착하는 게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냉장고 다른 하나는 그림이다. 그녀 말에 냉장고는 신성한 것이라고. 충격의 빨주노초파남보 냉장고 정리법.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 불가이다. 그리고 그녀는 '싫어한다'라고 말하는 그림 그리는 행위. 그건 아마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방법을 모르는 그녀의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 방법 아닐까? 진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그래서 거북한, 그런 것.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수혁은 지독히도 고통스러워진다. 사랑하는 만큼의 고통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감정을 아무리 퍼부어도 밑빠진 독처럼 흘러갈 뿐이다. 그 고통 속에서도 끝끝내 유민을 놓지 않는다. 악착같이 붙들고, 그녀에게 매달리는 수혁이 절절했다. 유민 역시,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수혁을 점차 사랑해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녀를 붙잡고 가지말라고 처절하게 애원하는 그의 앞에서 유민의 그 마음이,

 

『그녀는 자신이 울고 있기를 제발 바랐다. 남자와 같이 울고 있기를.』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는 그녀의 얼굴 역시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라서 처절하게 우는 수혁 앞에서 혹시나 자신이 웃고 있을까, 걱정이 된다. 웃는 표정과 우는 표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그녀이기에..

 

유민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엔 그를 사랑한다는 표현은 없지만,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포기했었던,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룰 수 없는 소망이 그 때문에 되살아나고 있었다.  비록 사랑의 힘으로 기적처럼 안면인실증이 치유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수혁과 유민은 계속 행복할 것이다. 고통을 동반하는 행복이라 해도.

 

평이 좋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에 빠지게 하는 좋은 작품이다. 사람에 대한 생각, 사랑에 대한 의미를 작가님이 많은 고찰 속에서 써 내려갔다는 것이 느껴진다. 김수지 작가의 판타지 로맨스 '봉루'가 출간 된다는데, 연재분에서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진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힘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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