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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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나오는 엄마를 보며,
'어? 우리 엄마가 여기에 있네~!'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국인은 드물 것 같다.^^
내 엄마도 그렇다. 가슴에 화수분같은 사랑만 가지고 있는 듯한 분.

이 소설을 럿셀이나 미숙님이 읽었으면,

이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집착이고 자기애일 뿐이야~
라고 말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라는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 고골리나 여자친구 맥신 못지 않게,
맥신의 부모님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딸의 삶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딸에게 강요하는 것이 전혀 없으면서도
자신들의 삶도 완벽히 누리는 듯한 부부 제럴드와 리디아.
딸이 남자친구를 데려와 집에서 살게 해도
눈감아주는 수준이 아니라,
같이 즐겁게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한 뒤,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자리를 피해줄 정도이고,
본인들도 여름이면 칼같이 집과 딸을 내팽겨치고(?) 몇 달씩 별장에 다녀온다.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었기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벵골 남자 '고골리'만큼이나 나도 '문화적' 충격을 받았었다.
럿셀이나 미숙님은 이런 쿨~~~한 사랑을 권장하실 것 같다.

이런 부모님, 이런 사랑에 비하면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엄마, 그리고 우리네들의 어머니들
그리고 그녀들의 사랑은 너무나 끈적끈적하다.
그 끈적끈적함은 '원죄의식' 비슷한 마음의 짐을 가져올만큼 무겁고 무겁다.
나도 한 때는 그 버거움에 헉헉거렸고,
차라리 미움이 더 가벼운 것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그렇게 살지 마시라고 엄마에게 화도 냈었고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그래도 이 끈적끈적하고 무거운 사랑을 우리가 외면해 버릴수 없는 것은,
그 끈적끈적한 땅에서 내 현재가 자라났기 때문이리.
나도 한 번은 언어를 통해 이것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가벼워지리라 결심한 적이 있었으나

마음의 생각을 정리하는 솜씨도, 언어 부리는 솜씨도 없어서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내가 한번은 꼭 해보고 싶었던, 했어야 할 작업을
신경숙님께서 해주시니 감사하다.
사람 울리는 소설에 점수를 짜게 주는 편인데,
고마운 마음에 별을 다섯 개나 줘버렸다.

이 글의 '엄마'는 남편의 걸음이 빨라서 못따라 온 것이 아니라,
지하철을 타기 전에 일부러 걸음을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선산에 묻히기 싫어하는 그녀였잖는가.
죽음을 예감했으되, 선산에 묻히지 않는 방법은
가족들이 없는데서 죽은 것이었으리라.
엄마의 희생이 아니라, 엄마의 욕망이 사람을 더 울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원죄의식'을 가진 자식들이 다들 그렇듯이

갱년기의 우울증을 참고 있는 듯이 보이는 쉰다섯의 엄마가 막내딸에게 밍크를 사달라고 하는 장면이나
엄마가 죽어서나마 마음의 의지처로 삼아온 이은규라는 분을 찾아갔던 장면이나
아내의 말을 들어줬어야 했었다며 후회하는 아버지의 회한을 듣는 장면
........ 

울음을 참느라고 여러 번 독서를 멈춰야했다.


그러나, 다음 대목에서는 도무지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찾아가서 내뱉는 고백말이다.


"엄마는 알까...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254쪽)



'엄마. 나는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참 좋아. 그런데 이런 엄마가 없는 엄마가 참 가여워.

할수만 있다면 엄마에게도 엄마를 만들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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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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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연암'이라는 단어만 보고 무조건 주문했던 책인데, 받아들고 보니
이 책 타이틀 옆에 보면 작은 글씨로 '인문실용소설'이라고 쓰여 있다.
하마터면 이 6자 때문에 읽지 않을 뻔했다.
올해 들어서 나를 버려보자는 마음으로 갑자기 '소설'이라는 장르를 손댔지만,
원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이다.
게다가  '실용'이라는 단어는 '글쓰기'를
기술적인 면으로 접근해보겠다는 인상마저 풍겼다.
'연암'을 글쓰기 기법이랑 연결시켜보겠다는 상업적인 의도로 만들어진 무엄한 책?
대낮부터 한잔 마신 와인 때문에 집중력이 흐리니까
가볍게 실용소설이라도 보면서 버텨보자....
이런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그런데, 웬걸

그다지 가볍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글쓰기의 기초체력은 글읽기인데,
소설속 연암은 제자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푹 젖는 것이 귀하다'라고.
히라노 식으로 말하면 '슬로 리딩'하라는 것이다.
다 아는 소리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충고잖는가.
 소설 속의 '지문'은 이 조언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만
아들 종채는 그렇지 못한다. 마치 나처럼.T.T
소크라테스도 자기를 쫓아다니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간단한 체조를 가르쳐주면서
하루에 300번씩 하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1년 뒤에도 그 간단한 체조를 여전히 하고 있던 제자는 플라톤 하나였다고 한다.
무언가를 이뤄내는 사람들은 간단한 진리라도

반드시 실천하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책을 무지무지 빨리 읽어대는 나도 반성해야 할 대목이니, 이 책이 어찌 가볍게 넘어가지랴.
책을 덮고, 빨리 읽는 버릇부터 고치고 와야할 터이다. 

그런데 소설이라는 장르의 매력이란 흡입력이다.
손을 뗄수없게 하는 그 궁금증 때문에,
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실용소설이라고 해서,
한 번에 읽고 끝낼 책은 결코 아니다.
아는 이야기라고 무시하지 않고,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가 반성해보자..라는 태도로 이 책을 읽어가보면,
중간중간에 멈춰서 나를 돌아봐야 할 데는 많았다. 
'책 속에 갇히지 말아라. 천지만물이 다 책이다.'라는 충고가 그러했다.

이 대목에서는, 글읽기나 글쓰기 같은 '앎'이

'교만'이나 '지적 허영'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내공'으로 연결되는 것이라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 사람 중에 글을 잘 읽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공명선이요, 옛사람 중에 글을 잘 지은이가 있었으니 한신이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공명선이 증자에게 배울 때 3년 동안이나 책을 읽지 않기에 증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공명선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가 선생님께서 집에 계실 때나 손님을 응접하실 때나 조정에 계실 때를 보면서 그 처신을 배우려 하였으나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닏다. 제가 어찌 감히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문하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병법에 물을 등지고 진을 치는 배수진은 나와 있지 않다. 여러 장수들이 불복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신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병법에 나와 있는데 단지 그대들이 제대로 살피지 못했을 뿐이다. 병법에 '죽을 땅에 놓인 뒤라야 살아난다'고 나와 있지 않던가.'(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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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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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나오는 엄마를 보며,
'어? 우리 엄마가 여기에 있네~!'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국인은 드물 것 같다.^^
내 엄마도 그렇다. 가슴에 화수분같은 사랑만 가지고 있는 듯한 분.

이 소설을 럿셀이나 미숙님이 읽었으면,

이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집착이고 자기애일 뿐이야~
라고 말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라는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 고골리나 여자친구 맥신 못지 않게,
맥신의 부모님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딸의 삶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딸에게 강요하는 것이 전혀 없으면서도
자신들의 삶도 완벽히 누리는 듯한 부부 제럴드와 리디아.
딸이 남자친구를 데려와 집에서 살게 해도
눈감아주는 수준이 아니라,
같이 즐겁게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한 뒤,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자리를 피해줄 정도이고,
본인들도 여름이면 칼같이 집과 딸을 내팽겨치고(?) 몇 달씩 별장에 다녀온다.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었기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벵골 남자 '고골리'만큼이나 나도 '문화적' 충격을 받았었다.
럿셀이나 미숙님은 이런 쿨~~~한 사랑을 권장하실 것 같다.

이런 부모님, 이런 사랑에 비하면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엄마, 그리고 우리네들의 어머니들
그리고 그녀들의 사랑은 너무나 끈적끈적하다.
그 끈적끈적함은 '원죄의식' 비슷한 마음의 짐을 가져올만큼 무겁고 무겁다.
나도 한 때는 그 버거움에 헉헉거렸고,
차라리 미움이 더 가벼운 것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그렇게 살지 마시라고 엄마에게 화도 냈었고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그래도 이 끈적끈적하고 무거운 사랑을 우리가 외면해 버릴수 없는 것은,
그 끈적끈적한 땅에서 내 현재가 자라났기 때문이리.
나도 한 번은 언어를 통해 이것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가벼워지리라 결심한 적이 있었으나

마음의 생각을 정리하는 솜씨도, 언어 부리는 솜씨도 없어서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내가 한번은 꼭 해보고 싶었던, 했어야 할 작업을
신경숙님께서 해주시니 감사하다.
사람 울리는 소설에 점수를 짜게 주는 편인데,
고마운 마음에 별을 다섯 개나 줘버렸다.

이 글의 '엄마'는 남편의 걸음이 빨라서 못따라 온 것이 아니라,
지하철을 타기 전에 일부러 걸음을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선산에 묻히기 싫어하는 그녀였잖는가.
죽음을 예감했으되, 선산에 묻히지 않는 방법은
가족들이 없는데서 죽은 것이었으리라.
엄마의 희생이 아니라, 엄마의 욕망이 사람을 더 울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원죄의식'을 가진 자식들이 다들 그렇듯이

갱년기의 우울증을 참고 있는 듯이 보이는 쉰다섯의 엄마가 막내딸에게 밍크를 사달라고 하는 장면이나
엄마가 죽어서나마 마음의 의지처로 삼아온 이은규라는 분을 찾아갔던 장면이나
아내의 말을 들어줬어야 했었다며 후회하는 아버지의 회한을 듣는 장면
........ 

울음을 참느라고 여러 번 독서를 멈춰야했다.


그러나, 다음 대목에서는 도무지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찾아가서 내뱉는 고백말이다.


"엄마는 알까...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254쪽)



'엄마. 나는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참 좋아. 그런데 이런 엄마가 없는 엄마가 참 가여워.

할수만 있다면 엄마에게도 엄마를 만들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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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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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한 번 잡으면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장까지 덮고야 마는 내가
절반쯤 읽다가 너무 아파서 도무지 못 견디고
책을 덮고 다른 공연을 보러 가버렸다.

다음 날 다시 나머지를 읽었을 때도

내내 마음이 아팠다.

 

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데다가

특히 황석영 작가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바리데기>가 그와 첫만남이었는데,
그 소설은 어떤 인상이었느냐 하면?
임권택 감독이 국제영화제 수상을
목표로 만들었다던 영화가 떠오르면서,
이 작가도 비슷한 목표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간단한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여자를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따라서 그와 사랑에 빠질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책은 나에게 Y염색체에 대한
나의 낯설음을 조금 달래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준이가 남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또 남자의 전형이기도 하다.
그 요란스러운 성장통이라니...
그 놈의 성장통은 진하게 겪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겪기 일쑤이다.
게다가 준이가 보여주는 성장통에 가득한 위악은

정말 낯설고,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힘겹게 했을지 우울해진다.


하지만
그 진한 성장통에
자기를 내어던진 것에는 박수를 보내주어야지.
나는 성장통을 겪을 나이에
내 내면을 억누르고 억눌러서
사람이 자연스러운 정신 연령을 갖추지도 못했는데,
지금 몸만 이렇게 다 늙은 후에,
질질 삐져나오는 마음의 고름 때문에
품위도 없고, 힘겹단 말이다.


지금이라도 실컷 아프고 나면,
좀 나아지려나?
내가 성장통을 겪을 수 있도록
그들은 나를 참고 바라봐 줄 수 있을까?
준이 어머니처럼?
준이 어머니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해 보았다.





283~285쪽(작가의 말) 아마도 이는 개인의 내면적 성장이나 변화 등을 다루기에는 근대회 기간 동안 현실이 그만큼 급박했따는 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사회 속에서의 개인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보다 주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 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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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년 수능기출문제 총정리 언어영역 - 2008
시사대입이그잼뱅크 편집부 엮음 / 시사외국어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난 수험생도 아닌데 이런 책을 종종 산다.쯧쯧^^

요사이는 인터넷을 뒤지면 금방 출력할 수 있지만,
여기저기 두고 보기에 편하니까 꼭 책으로 사게 된다.

말 그대로 잡지같은 가벼운 읽을거리처럼 손닿는데 여러 군데 두고 심심하면 읽는다.
(잡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미용실이나 까페에 가면 널려있는 잡지책도

다 이런 책들로 바꿔주고 싶다.^^ - 이 견해에 대해서는 미용실 주인도, 언어영역 출제위원도 모두 성질낼지도 모르겠다^^ )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 문제가 발표되면,
온나라가 그 문제를 토론하느라고 재미있어진다지만,
그런 의식에 비하면
이런 짓은 조금 멋없는 의식이긴 하다.
수능시험 자체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험이 끝나고 나면, 
무슨 기다리던 신간서적을 구입하듯 이런 책들을 사주고 싶어진다.
물론 문제집 만드는 출판사에서는
저작권료를 내지도 않고, 

공공사업이라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는 원작자들에게 고마워하지도 않으면서
돈 돈벌려고 만든 책이지만

내 딴에는  거기에 실린 언어영역 지문들을 겨냥한
'가여운 성형미인 사랑하기'이다.^^

수능 언어영역 지문을 읽노라면,
'성형미인'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좀 섬뜩한 단어를 사용하자면,
'칼질(?)'을 많이 당하기 때문이다. 
칼질 솜씨가 너무 훌륭한지라
정교하고 깔끔하다 못해 정레미가 뚝 떨어질만한 글.
피천득이 그의 글 '수필'에서 말했던 '약간 옆으로 꼬부라진 연꽃잎'같은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은 살아남지 못하는 글.
흠이나 파격을 인정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탄생단계부터 출제위원 수십 명이 달려들어 고쳐대기 때문에
원저자가 내뿜었던 독특한 문체도, 은밀한 의도도 온전히 살아남아 있지 않은 글.
바로 그런 글이 수능 언어영역 지문 아니던가.....
게다가 오지선다형 문제 서너 개가 업보처럼 매달려,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이한 글.
그 철저한 목적성 때문에 차라리,
몇 사람의 천재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 '사이버미녀'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이 '사이버 미녀'라고 할만한 글들이
세상에 출시(?)되는 순간부터는 더욱더 가여워진다.
원래 의도되었던 독자인, 수많은 고등학생들은
점수라는 것이 주는 긴박감 때문에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고,
쑤욱~ 읽고 아주
서둘러 문제를 푼다.
다시 읽는 경우라도 문제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서지
이 글을 붙잡고 다시 대화하고 어루만져보기 위함은 아니다. 
수많은 학원 선생들은 흠이 없나 잡아내려 안달이다.
그리고 비슷한 것들을 복제해 내느라고 또 안달이다.
또 부분부분 분해를 해서, 이게 이럴 수밖에 없는 조합이야...라고 학생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목적으로 대하는 일은 드물고, 수단으로 대한다.

그러니...
누구 하나 순정을 가지고 사랑해 주지 않는 사이버미녀랄밖에...^^


내 인생의 여러 부분을 망치게 한 것 중의 하나가
나의 무분별하고 과도한 동정심이지만,
그 동정심 때문에  이 사이버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기획자들이 엄선한 좋은 지문들이 재료인만큼
사랑할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해야겠다.

우선,

이 사이버 미녀는 철저하게 논리적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고 이성적인 말투와 정보 흐름들이
나같은 감상적인 인간들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또, 이 사이버미녀는 인문, 사회, 과학, 기술, 예술, 언어 다방면에 아는 것이 많아서,
'우와~ 세상에 이런 것도 있었어?' 라는 기쁨을 준다.
이번 수능 시험 지문에는 공룡 발자국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과거의 정보들이 소개되어 있는 지문도 있었다.^^ 이런 데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로서는 이 사이버미녀의 박학다식이 아니고서는 접할 수 없는 세상사들이다.
견문이 넓은 친구는 공자님께서도 좋은 친구라도 하지 않으셨던가^^


보통.... 지식인들은 아는게 힘이라서 그런지 늘 자신만만하시던데,
이 미녀는 아는게 많다고  해서 신랄하지도 않고,
인생사를 깊숙하게 다루어서 상대방을 기죽이지도 않는
다. 못한다고 해야겠지. 
특정 견해를 좀 깊이 다루기라도 할라치면
사이버인간
의 입에서 '인간성이란 이런 겁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이버인 주제에 인간에 대해서...뭘 안다구 난리야...'라고 벌떼처럼 일어나는 현상에 버금가는 소란이 생기테니까 말이다.
'여러분~~ 이런 것들도 있답니다'라고 말한 뒤에
대부분이 사람이 인정할만한 수준의 선에서 입을 다무는 과묵함은
목적론적으로 탄생된 그녀 입장에서 보면
타당한 겸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미녀와의 대화가 무미건조 일색은 아니다.
행간을 잘 읽어보면, 이 미녀가 입을 다무는 그 표정에서 뭔가를 읽어내는 기쁜 부담(?)을 맛보기도 하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올해 지문에는
개별자 수준과 집단 수준의 인과의 관계가 개연적이냐 필연적이냐
의 문제를 다룬 글이 실렸다.
나는 철학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철학사에는 심한 논쟁거리였던 모양인가 보다. 
사이버미녀는 역시 그녀답게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정도에서 언급하고 만다.
"둘 사이의 관계가 필연적이라는 견해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견해도 있어요."
이렇게만 말하고 끝이다. ^^
그 다음은 독자의 몫이다. 
사이버미녀가 스트레스와 병의 원인을 예로 든 것은
이 논의가 '특정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님 말구...^^
하긴 어떤 두 현상을 단순 상관관계로 볼 것이냐, 인과관계로 볼 것이냐의 문제는
철학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흡연과 폐암의 관계 때문에 대형 소송까지 생겨나곤 하는 마당에,
이것이 어찌 이론만의 문제겠는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두 개의 팽팽한 견해가 있구나...까지만 생각하고
이 글을 덮어버린다면,
이 가엾고 아름다운 사이버미녀를 사랑하는 소이가 아닐테다...
이 사이버 미녀는 눈빛으로 늘 말한다.
'당신의 사고를 좀더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만들어보세요'라고.
그녀의 눈빛을 기억하면서, 이 글을 읽고 나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어떤 제도만 고치면 어떤 현상이 당장 좋아질 것이라고 떠벌이는 단순무식한 짓을 좀 덜하기는 할텐데 말이다.




수능 언어영역 지문에서 발췌하는
문학 작품들에 대해서도 참...할 말이...많다...


나는 문학 작품에 대해서 거의 경외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문학은 생명체이다^^)
문학 작품에 오지선다형 문제를 매달아 놓는 것에 대해 서글픈 심정을 가지고 있다.
문학과 오지선다형 문제의 결합이란 정말이지...
결혼하면 안 되었을 두 사람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는 듯하다.
서로의 잠재력을 충분히 살려주지 못하는 사이. 최소한의 생활만 영위하는 사이.T.T 

그러나, 그런 결혼 생활도 본인들의 극도의 노력과 양보, 주위 사람들의 섬세한 도움이 있다면, 뛰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가 가진 미숙과 허물은 감추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수능 지문에서는 김광규님의 '나뭇잎 하나'라는 시가 실렸다.
읽으면서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를 읽을 때처럼 쿵 울렸다.
그러나 고등학생들이 이런 느낌을 이해할지는 의문이었다.
아이들은 저 시에 나오는 '연록색으로 부풀어 나오는 신록'에 더 가까울테니 말이다.
'어느 정도 인생을 산 다음에야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훈련된 대로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겠지....
'과거의 상황을 환기하며 화자의 정서를 드러낸다'에 동그라미를 하겠지.
하지만 인생 본연의 고독을 절감하고 있었던 아이들 중에
이 시가 그냥 마음에 들어 좀더 자세히 읽고 싶었다면,
32번 문제의 도움을 좀 받았을게다.






       크낙산 골짜기가 온통
      
연록색으로 부풀어 올랐을 때
       그러니까 신록이 우거졌을 때
      그곳을 지나가면서 나는
       미처 몰랐었다




뒷절로 가는 길이 온통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고 나뭇잎들
무더기로 바람에 떨어지던 때
그러니까 낙엽이 지던 때도
그곳을 거닐면서 나는
느끼지 못했었다




이렇게 한 해가 다 가고
눈발이 드문드문 흩날리던 날
상한 대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하나
문득 혼자서 떨어졌다




저마다 한 개씩 돋아나
여럿이 모여서 한여름 살고
마침내 저마다 한 개씩 떨어져
그 많은 나뭇잎들
사라지는 것을 보여 주면서

- 김광규, 「나뭇잎 하나」 -

32번 문제 (나)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①1연, 2연에서 유사한 구조의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대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화자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1~3연에서 ‘골짜기’→‘길’→‘대추나무’→‘나뭇잎 하나’로 시적 대상이 바뀌면서 화자와 대상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③1~4연에서 ‘그러니까’, ‘문득’, ‘마침내’와 같은 부사는 독자로 하여금 화자의 인식에 주목하게 하고 있다.
④4연에서 ‘저마다 한 개씩’이라는 시구를 반복함으로써 세상과 화합할 수 없는 존재의 고뇌를 강조하고 있다.(적절하지 않은 진술)
⑤4연에서 화자는 생성에서 소멸에 이르는 자연물의 변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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