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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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의 원작을 읽어본 후 든 생각은. 지금까지 에피쿠로스는 거의 기만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를 볼 때 흔히 우리는 '쾌락'을 떠올린다. 고등학교 시절 기계적으로 암기한 탓일까, 에피쿠로스와 쾌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보인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통용되는 '쾌락'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도리어 그의 철학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점에서 노자, 마음의 평정인 아타락시아를 향해간다는 점에서 불교와 유사하다. 에피쿠로스의 글에는 인간의 말초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듯한 '쾌락'이라는 말보다,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찾는 '수도승'이라는 표현이 어울려 보인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단순한 신체적, 감각적 만족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단 결핍으로 인한 고통이 제거되면, 육체적인 쾌락은 증가하지 않고, 단지 형태만 바뀐다.
반면에 정신적인 쾌락은 우리 지성이 쾌락과 정신에 가장 큰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했을 때 그 한계에 도달한다.
p.127

그가 정신적인 쾌락을 지향한다. 육체가 고통에서 벗어난 아포니아와 정신적인 만족감을 뜻하는 아타락시아 중에서, 아타락시아는 고통이 제거된 이후에도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원인을 이해함에 따라 계속해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피쿠로스는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으로 죽음에 주목한다. 철학사를 조망할 때 죽음에 대한 사유가 그 큰 줄기를 이룬다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유한한 인간으로의 생애를 생각할 때 죽음을 조망하는 에피쿠로스의 방향성은 타당해 보인다. 독특한 점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에 대한 이해가 역설적으로 우리를 가장 행복한 쾌락의 상태로 이끌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가장 끔찍한 것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궁극의 행복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행복, 그 자체를 탐구하는 일 역시 멈춰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선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에피쿠로스는 감각을 통해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신화와 같이 신을 추앙하는 일은 옳지 않다. 도리어 스스로의 감각을 통해 선과 악을 판단해야 한다.

이런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수 천년이 지난 아직까지 수많은 이가 강력한 신에 의존하는 세태를 살펴볼 때, 꽤 놀랍다. 그리고 그 위에는 신에게 구원을 바라지 말고, 스스로의 수양에 전념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아른거린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에피쿠로스의 인식은 원자론적인 사상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원자에 의해 세상이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에피쿠로스 쾌락>의 상당한 전반부가 그의 원자론, 자연론에 할애되어 있다. 이는 에피쿠로스의 자연과 과학에 대한 인식이 결국은 인간과 도덕을 바라보는 그의 철학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원자론을 거쳐 귀결된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를 향한 사랑은 불교의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책을 읽게 되는 다른 독자들은 자연과 원자에 대한 부분 역시 주의 깊게 읽어보면 좋을 듯싶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크지 않아 다소 어렵게 책장을 넘겼던 부분이었지만, 도리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그의 과학과 자연론적 사고관에 관심이 생겼을 정도였다.)

말초적이고 단편적인 속된 쾌락이 만연한 오늘날,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그가 외쳤던 육체적인 만족은 보다 참된 선을 찾는 과정에서 물리적 고통이 영향을 미치지 않게 위함이었다. 육체적 만족을 넘어서 욕망을 다스리는 정신적인 궁극점을 향한 그의 철학은 지금의 우리에게 진정한 '쾌락'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행복을 좇아야 하는가를 되묻는다.
  • 출판사지원 리딩투데이 서평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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