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인간혐오자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5
몰리에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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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너무 많은 불의와 모순이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말은 너무 많이 읊어져 진부하게 마저 들릴 정도다.
그러나 우리의 불완전함에 대한 지적을 단순한 클리셰로 치부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교훈이 너무 무겁다.

'인간혐오자'는 불완전한 우리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준다. 주인공 알세스트는 세상의 모순에 분노한다. 아첨과 가식, 기만이 가득한 도시와 궁정은 그에게 말그대로 '분'한 곳이다. 알세스트는 타인을 위한 꾸밈과 가식에 반기를 드는데, 바로 솔직함이야말로 그가 생각하는 미덕이기 때문이다.

다만 알세스트가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 역시 일반적이지 않다. 그는 노골적인 표현을 내뱉으며 타인을 비판하고, 심지어는 조롱한다. 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를 가장 근본적인 질서로 삼는 사교계에서 알세스트는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된다. 마치 모두에게 외면받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처지다.

그럼에도 알세스트는 세간의 평가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살롱에 남은 이유는 오직 셀리맨 때문이다. 그녀는 알세스트가 혐오하는 꾸밈과 가식, 그 자체인 인물이지만 알세스트의 열렬한 추종을 받는다.

알세스트의 셀리맨을 향한 구애를 담은 희곡 '인간혐오자'는 꽤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알세스트는 현시대 살롱, 즉 지금의 사회에 있는 가식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그 속에서, 그리고 그 글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우스운 존재처럼 보인다. 보통의 이야기에서 웃긴 존재, 우스운 존재는 우리가 비판할만한 대상에게 부여된다. 가령, 레미제라블의 주인 부부와 같이 속물적인 태도가 비웃음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알세스트는 알송달송한 인물이다. 알세스트는 우리가 전형적으로 비판하는 가식적인 사교계를 향해 대항하는 주인공임에도, 그의 날 선 공격성 역시 우리에게 불편함을 준다. 타인을 향해 노골적인 비판을 늘어놓는 알세스트에게는 쉽사리 정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몰리에르의 희곡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혐오자'는 프랑스 고전 희곡의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몰리에르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 이유는 단연 알세스트의 이중적인 모습에 있을 것이다.

희곡 '인간혐오자'는 단순히 비판할 대상과 긍정할 대상을 이분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적인 주인공과 주변 환경이 끊임없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게 '친절의 탈을 쓴 가식'과 '날 선 진실' 사이의 나만의 경계선을 그려보게 된다.

희곡의 1장과 5장은 똑같은 말로 마무리 짓는다. 바로 친구 필랭트가 혼자의 삶을 좇으려는 알세스트를 붙잡는다.

"아무리 빈정거려도 나는 자네를 떠나지 않을 거야. P.38 - 1장 마지막"
"부인, 그가 마음 속에 품은 계획을 포기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동원해 봅시다. P.141 - 5장 마지막"

알세스트를 사교계, 즉 우리의 곁에 머물게 해야한다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간 문장이 아닐까. 당황스럽게 별난 주인공은 날서다 못해 공격적인 진실함을 의미한다. 알세스트를 붙잡는 필랭트의 대사는 진실을 우리 곁에 두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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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질 떨어지는 알랑거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아무리 최고의 영광을 쏟아부어도 결국 싸구려 잔치에 불과해.
우리가 전체라는 영역 안에서 함께 뒤섞이는 순간 특혜라고 생각했던 존중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거야.
모두를 존중한다는 건 아무것도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거든
P.13

인간 본성에 대한 혐오를 조금 거두어 봐. 무조건 발톱을 세우고 살펴보려고 하지 말고 조금 여유를 가지고 인간들의 결점을 바라보려고 해 봐.
요즘 세상에서는 너그러움도 미덕이야. 지나치게 따지고 들면 비난받기 십상이거든.
완벽한 이성을 지니고 싶다면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절제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해.
...
사람들에게 완전무결하기만 바라면 안 돼. 아집만 내세우지 말고 시대에 유연해져야지.
세상을 고쳐 볼 생각만 하고 관대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미쳐 날뛰는 광기에 불과해.
P.18

자네처럼 화가 날 때도 있어.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
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해.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려고 해.
내가 도시에서든 궁정에서든 자네처럼 화내지 않는 건 침착함이야말로 진짜 철학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야.
P.18

이  타락한 시대 속에서 그녀의 영혼은 나의 사랑을 통해 깨끗해질 수 있을 거야
P.23

우정이라는 이름을 너무 쉽게 사용하면 진정한 참뜻을 퇴색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정으로 맺어지려면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이 있어야 하죠.
우리가 친구가 되기 전에 먼저 서로를 잘 알아야 해요.
P.27

점잖은 사람은 글을 쓰고 싶은 욕망에 몸이 근질거려도 절대적인 힘으로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글을 쓰는 데 너무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요.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너무 안달이 나면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보일 거라고도 말했답니다.
P.31

지금처럼 인간 사회 여기저기에 악덕이 만연해있는 건 당신들처럼 곁에서 잘한다고 추켜세우는 사람들 때문이에요.
P.57

세상이 변하려면 사람들이 아예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할걸.
그런데 사람들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이 사회를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어?
인간은 살아가면서 결점으로 인해 철학을 수행하는 방식을 깨닫게 되거든.
미덕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이거야.

모두가 정직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모두가 정직하고 정의롭고 온순하다면 대부분의 미덕은 쓸데없겠지.
왜냐하면 미덕이라는 건 타인의 불의가 우리의 권리를 파고들 때 우리가 꼿꼿하게 감내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거거든.
P.122

  • 출판사지원 리딩투데이 서평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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