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계광의 적대는 변장에 걸터 앉아 있는 모습처럼 보이는데, 그 모한다. 「공심적대(空心臺)」라고 불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가운습이 달에 오른 모양과 닮아서 ‘기장적대(騎墻敵臺)‘라고 불리기도데에 벽돌로 만든 방이 있기 때문이다. 적대 위에 망루를 건설한 예는 지금까지도 보이지만, 대(臺) 자체를 돌이나 흙을 겹쳐 쌓은 것은공심적대가 나온 후에는 구별하기 위해 실심대(實心臺)라 불렀는데,
이것은 단순한 높은 대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그 가운데를 비워둠으로써 백층(百絶)이라 불리는 소대장(小隊長)에게 병기나 식량 등의관리를 하는 부관(副) 2명, 그리고 병사 30~50인을 배치한 것이다. 이로써 종래의 변장과는 달리 병사의 주둔이나 병기의 보관, 그리고 파수대의 기능을 겸하고 있는 돈대나 보의 역할을 겸비하는 것이가능하게 되어, 일선의 벽으로서의 변장 기능이 보다 충실하게 되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공심적대의 발안(案)은 장성수축에서 여자준의 변장을 주체로 하는 제안과 필적하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