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사회는 도래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우라고 예기』 「예운 편에서 시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유가의 이리의 대답은 단연코 부정적이다. 그러한 사회는 현실적으로 실재한 것skutopia도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수도 없는 그야말로 그 어디에도 없는 유토= no where)이다. 진보와 해방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던 계몽의 이념이 야누스적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판명된 포스트모던시대에 사는 이 시대 우리들에게 그런 인간적인 사회는 인간의 현실사회를 규제하는 이념적 지표는 될 수 있을지언정 현실 인간 사회로다가오지 않는다. 아니 그런 사회가 있었다는 주의 주장과 그런 사회가도래할 것이라는 권고-설득은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표현에 따라 현실의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이른바 범주착오라고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는 실로 "구세주가 재림할 것이다"라는 말과 그 의미상 조금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구세주가 재림할 것이다"라는 명은 만일 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오늘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셨다면, "오늘 저녁에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실 것이다"라는 명본질적으로 그 유를 달리하는 언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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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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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를 둘러싼 모든 논란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그러니까 그 모든시비와 논란을 종결짓고, 비극적 사태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일도 나의 몫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집권욕심 때문에 최규하 대통령을 비롯 내각과 군수뇌부를 강박해 계엄령을 선포케 하고, 군병력을 투입하기 위한 명분을 위해 과격시위를 방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시민의반발과 폭력시위를 유도하려고 강경 진압을 지시했다는 정반대의 주장을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광주사태의 원인과 그 결과가 모두 나의 잘못임을인정하고 내가 사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5.18 사태 이후 3개월여만에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내가 청와대를 향해 달려가는 어느 길목에 광주사태라는 장치를 설치해놨던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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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군지휘관회의나 국방부를 연두순시할 때 지휘관들에게 여러가지지 당면사항을 지시하게 되지만,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강조한 것은 북한각종 기습도발에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전격적인 전면남침은 물론 각종의비정규전에 대한 대비태세를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내가 비정규전에 철저히 대비하도록 지시한 것은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구조나 생활상의 행태가 비정규전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도 취약점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비정규전 요원을 후방 깊숙이 투입시켜 게릴라전을 감행하도록 전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정보분석 결과 북한은 당시 10만 명의 유격특공병력을 양성해놓고 있었다. 따라서 이에 대비한 전후방 일체의 총력 방위체제가 요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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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건이 터지고 내가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그 어른의 죽음에 얽힌 배신과 역모의 진상을 파헤치고 단죄해야 할 책임이 나에게 지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속으로 "아, 이 어른이 당신의 최후와 그 뒷수습을 나에게 맡기려고 그렇게 일찍 보안사령관에 임명하신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인연의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보안사령관에 임명되당시에는 그 어른이 가급적 나를 가까이에 두려고 하신다는 느낌만을 갖고 있었다. 사실 1사단장으로 나간 지 1년 만에 보안사령관에 임명되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까지의 관례에 따르면 나는 아직 계급과 경력이 한참 모자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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