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도 그들과 달리 생긴 인간들을 파리 취급도 하지 않던 식민제국주의자들이 이제 와서는 먼 나라 보신탕용 견공의 운명까지 염려하는세하고 애틋한 ‘인도주의자‘로 둔갑하거늘. 무차별 착취와 남획으로 온세상 천지와 인성을 한꺼번에 싸잡아 황폐화시킨 그 자들이 언제부터 해양오염 방지니, 오존층 보호니 하는 ‘환경 십자군‘으로 둔갑하여 그 황당한 기세로 개발 후진국의 기반산업마저 질식시키는 수작인가?
그래, 기름만 짜고 내버리는 고래잡이는 되는 짓이고, 고기는 먹고 찌꺼기까지 알뜰살뜰 챙기는 고래잡이는 안 되는 짓이라니. 이것이 에이허브 선장의 배짱이여, 백경의 광기여? 아니면 그 거꾸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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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속적인 세계에서 옛날의 종교적 이상을 실현하고자하는 시도는 계속해서 충돌을 낳았다. 중세의 종교적 이상은 영원한 신의 왕국에서 그의 무한한 힘의 도움을 받아야만 실현될수 있는 무한한 완전 이상(理想)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이상은유한한 인간 세상에서는 성취될 수가 없다. 그래서 대담한 르네상스기의 시도는 유한과 무한, 순간과 영원, 인간과 신 사이의 일련의 풀릴 수 없는 변증법적 충돌을 낳고 말았던 것이다. 옛 이상과 새로 각성된 세계와의 이러한 피할 수 없는 충돌은 역설의유행 (paradoxia epidemica)이라 불리는 독특한 중세의 정신적 유행을낳았다. 220) 따라서 패러독스와 아이러니와 같은 감각이 크게 확산되면서 르네상스기의 의식 저변에 깔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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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슬라브인의 세시풍속과 민담 속에 자주 등장하는 신화적 인물인 ‘꾸빨라‘는 ‘물‘과 연관이 깊은 존재여서, ‘목욕하다‘ 라는Kupat‘라는 동사에서 파생하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꾸빨라‘의 기능은 ‘물‘과 ‘불‘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정화작용을 하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꾸빨라‘는 일년에 한번만 ‘꾸빨라‘ 축일에 나타난다. 구력으로 6월 24일 하지 축제이기도 한 ‘꾸빨라‘
축제 때가 되면, 전야에 사람들은 강가에 해를 상징하는 모닥불을피워 놓고, 그 위를 뛰어 넘으면서 자신의 오래된 죄과를 정화하고자 한다. 비잔틴으로부터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동슬라브-러시아신화의 ‘꾸빨라‘는 ‘성 요한과 결합하게 되면서, ‘이반 꾸빨라‘
가 된다. 요한의 러시아식 발음은 ‘이반‘이 되기 때문인데, 그래서
‘이반 꾸빨라‘ 축제는 ‘이바노프의 날‘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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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공은 산에서 야생 원숭이처럼 생활하던 아이였고, 베지터도나메크성에서 지구로 피해 왔을 때는 몸뚱이 하나뿐인 우주인이었습니다. 그들의 머리에는 격투밖에 없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거나유명해지고 싶다거나 하는 세속적인 욕망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지막은 결국 어떻게 끝났나요. 오공 일가는 아들 오반이 상당히유복할 것 같은 미스터 사탄의 딸 비델과 결혼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게 되었고, 베지터는 캡슐 코퍼레이션의 외동딸 부루마와 결혼해서 넉넉하게 살고 있습니다. 한편 야무차나 천진반은 수련하면서검소한 방랑 생활을 보내고 있겠지요. 오공, 베지터와 목표로 하던 건동일한데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에 의해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과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격차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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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꿈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유에프오 현상은 역사적으로언제나 누미노제의 표상들에서 표현되어 무의식의 깊은 속을 건드린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사건에 해석을 내리며 그존재를 의미 있게 조명한다. 의미 있다 함은 문제가 단지 배경의역사적 회상이나 비교심리학적 확인에 그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실제적인 정감情感과정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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