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말해, 17세기 전반기는 총체적 위기의 시대였다. 지적이고 영적인 위기가 사회경제적 위기와 결합하여 상승작용을 야기했다. 지적 영적인 위기는 특히 예전의 코스모폴리스적 합의에 대한일반적 자신감의 붕괴였다. 따라서 우리는 17세기의 철학자들이 당시의 혼란을 외면했다고 믿기보다는, 근대 철학 자체가 그 갈등의산물이라고 보아야만 한다. 갈등으로 점철된 1610년과 1650년 사이에 인간경험의 다른 여러가지 측면들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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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는 화폐 현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자세히관찰해야 한다. 이것이 탐구인 것이다. 블로크의 시론들과 나의 이 책에서는새로운 탐구를 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연구들이 이미 확립한 사실들을 이용했다. 치폴라의 고찰과 같은 이론적 고찰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는 도움이되지만, 미리 결과를 강요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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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쌓이면 어찌어찌 된다‘는 것도 안 될 말이죠.
올바른 지식이나 기술을 기반으로 해야만 비로소 경험은경험으로서 제 역할을 합니다. 섹스 파트너를 차례차례갈아치우고 어쩌다 성감이 뛰어난 여성과 만나면, 마치 자신이 잘나가는 선수나 된 것처럼 굴고 성감이 미성숙한 여성에게는 ‘넌 너무 무뎌‘라며 큰소리칩니다. 이처럼 그저되는대로 하는 반복을 경험이라 부른다면 그야말로 섹스를우습게 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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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성불안이 높은 선수들은 욕구와 능력 사이의 주관적 평가(불안 2단계)에서 주어진 상황을 필요 이상으로 위협적으로 느끼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상태불안이 더욱 높아진다고 했다. 따라서 특성불안이 높은선수들은 큰 시합일수록 시합불안을 더욱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큰 선수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선수나 지도자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은 선수의 단편적인 면만보고 그 선수는 특성불안이 높다고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스포츠심리학 전문가들도 어떤 선수는 특성불안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필자가 스포츠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특성불안과 경기력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매우 조심하는 이유는 강의를 듣는 지도자 중에서 자기 선수들의 특성불안에 대하여 의심하는 지도자를 실제로 목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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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사적 욕망의 무제한적 발휘를 경제적 발전의 원동력으로 이해하거나, 개인이 전체로서 조직되기보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개인의 인권이 더욱 존중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일본 지식인사이에서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일단 자연과학의 발달을 만능으로 보고, 그 직선적인 발달에서 인류 미래의 광명을발견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거기서 광명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줄어들기 시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자연과 도덕의 연속이라는 중국적 원리가 자연과학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서구에 비해 확실히 뒤떨어졌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연속적 사유 혹은 천인합일의 원리 자체가 그 이유만으로 ‘정체적 사유로 간주되는 데 의문을 품거나 이의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착실히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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