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한 가지 점만은 명확하다. 눈앞의 것의 지각되어 있음이란 이 눈앞의 것 자체에 눈앞에 있는 방식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존재에속해 있는 방식으로 있다. 그러나 이 현존재에 속해 있다 함이 주체와 주체의 내면적인 영역에 속해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지각되어 있음이란 지각하는 지향적인 행동관계에 속해 있다. 이 행동관계가 눈앞의 것을 그 자체에서 만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지각함은 눈앞의 것을 발견하며, 이 눈앞의것을 특정한 발견함의 방식으로 만나도록 해준다. 지각이 눈앞의 것에서 그가리워져 있음을 제거하여, 이 눈앞의 것이 그 자체에서 자신을 내보일 수있도록 이 눈앞의 것을 자유롭게 내어준다. 이 점이 어떤 것에 대한 개개의모든 자연스러운 둘러봄과 자연스러운 방향잡음의 의미이다. 그 이유는 지각함 자체에, 그것의 지향적 의미에 상응하여 발견해냄이라는 이러한 양태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큰 이야기와 대항하기 위해 더 큰 이야기가 발명되는 시대는 끝났다.
큰 이야기를 보충하고, 그 곳에 대안을 구성하려는 숭고한 희생이 사회를변화시키려는 유일한 실천도 더는 아니다. 어떤 시도도 세상을 바꿀 수없을 때, 절망이 마치 체질처럼 확고부동할 때, 하나의 이념이 모든생각을 대신할 수 없는 시대일 때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톺아보고새로운 삶의 양식을 실험하며, 이 세계를 촘촘히 살펴볼 비판적 삶이출현할 순간이다.
리오타르는 "신의 침묵에, 절망의 시대에, 사물들이 이루는 다수의통일성이 사라진 시대"에 철학이 시작된다 했는데, 이 철학의 시원이작금에 필요한 대안을 넘은, 비판적 삶의 장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 -칸트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감정에서 이성의 문제의 중요성을구체적으로 다뤘던 최초의 근대 철학자였기 때문이지. 이를 관념론이라고 하관념은 이성을 극단까지 추상화시킨 거야.
이성이 정치적 맥락을 띄면 이념이나 이데올로기가 되고,
아주 기술적인 맥락을 띄면 과학이 되거든.
칸트는 이성이 무엇보다 순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나 - 어떤 점에서 순수해야 된다는 거예요?

산 - 과학도 아니고, 정치, 경제도 아니어야 하지. 세속적인 건 다 안 돼.
오로지 순수한 생각을 언어로 표현한 철학이어야 해. 세속의 규칙은편협한 생각을 생산할 수 있으니까. 칸트는 왜 관념을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감각을 창안하거나 제 감각을 확장시키는 행위는 예술가들만의몸이 아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함으로써 존재와 세계를개선시킬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문제, 성적소수자들의 합법화문제, 농촌 어르신들의 살림살이 문제, 도시 빈민들의 가난 문제 등이우리들의 감각 내부로 침투하면, 그들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자신들의옷을 배달받는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몫 없는 자들‘에게 몫을챙겨주려면, 그들을 우리들의 감각 내부에 침투시켜야 한다. 그들을느낄 때,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에게 제 안정과영화만이 존재의 유일한 문제이나, 세심한 감각의 소유자들에겐 먼 역사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고통까지도 자기 문제다. 그 감각의깊이를 다듬고 세공하는 내적 경쟁은 사악한 속성을 지닌 경쟁이 아니다.
존재의 확장을 도모하는 극기다. 자신의 감각을 확장시켜, 새로운 사회를실현코자 하는 이타적 사투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나 작품 한가운데에서 신화의 부분과 문학의 부분은 분리될 수 없고 대립될 수 없다. 그것들은, 공동체가 작품들을 다른 방식으로 즉 때로는 신화의 방식으로, 때로는 문학의 방식으로 분유하거나 함께 분유한다는 의미에서 두 부분이다. 후자는 전자의 단절로부터 따라나온다. ‘문학(또는 글쓰기)은, 문학에서, 즉 작품들의 분유또는 소통에서 어떠한 신화도 갖지 않으며 가질 수도 없는 공동-내 존재에 목소리를 부여하면서-신화를 단절시키는 그것이다. 또는 차라리, 공동 내 존재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드러날 수 있는 신화적 장소에 존속하지 않기 때문에, 문학은 공동 내 존재에 목소리를 부여하지 않지만, 바로 공동 내 존재가 문학적 (또는 글쓰기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