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작업의 다른 한쪽 끝에서, 인간학』은 몇 가지 문헌과 동시대에씌어졌다. [인간학과 밀접한 이 문헌들은 인간학의 대략적인 도착점이나, 혹은 적어도 (인간학에 가장 새롭게 덧붙여진 작업을 알려준다. 이렇게 실마리의 양쪽 끝을 고정시킴으로써, 우리는 아마도 역사적인 동시에 구조적인 방식으로 수월하게 사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안은 문헌들의 연대기와 작업의 건축술적 체계 안에서 이중적으로 드러나는 비판철학적 사유와 인간적 반성의 동시대성이다.
칸트가 출판을 위해 인간학』 원고를 다듬던 시기에, 그의 관심사 중에서 그토록 오래되고 그의 작업에서 그렇게 깊이 뿌리내렸던, 따라서그의 고찰 중에서 중요하고도 가장 새로운 관심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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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통 이론은 고전적인 전통 영화에 관한 이론이기도 하다. 전통 영화는연극을 표절하고 모방하는 차원에서 벗어나려는 시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영화가 연극을 모방하는 일은 매우 쉬운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유혹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소설이 걸어왔던 길을 따라 영화를 만들었고, 상당수의명화가 이러한 방식을 따르고 있다. 반면 다른 종류의 영화는 새로운 시도를행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종류의 영화는 지적인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글들은 소설 - 영화에 관한 이론이다. 그 배경에는 연극과 구별되는 차이점이 언제나 깔려 있다.

영화에 관한 상당수의 책은 단순한 기삿거리 수준의 평을 내놓기 일쑤이다. 우선 영화 서적이라고 비교적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영화 비평과영화 역사에 해당하는 책들이 있다. 이외에도 일반적으로 영화와 관련된 책 중에 우리가 ‘영화 이론‘이라고 부르는 범주가 있다. 시네아스트cinéaste가 직접 집필한 책들, 비평가들이 쓴 책들 혹은 영화 애호가들이쓴 책들. 이상의 영화 이론에 속하는 책들은 영화 체제institution" 내부에속하면서 영화를 무엇보다도 예술의 한 장르로 생각한다. 

사진적인 특성을 고려하면 영화는 현실에 너무나 충실하다. 한편 편집*과배열의 특성을 고려하면 영화는 너무나 자유롭게 구성된다. 따라서 언제나 영화는 랑가주의 수준에 약간 못 미치기나 혹은 그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조금 성급하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상에서 간단하게 언급한이유 때문에 미트리의 주장은 이론가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이다.

영화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영화를 새로운 유형의 랑가라고가정하기 때문이다. 그 내부에 현실을 재생산하는 파편들을 내포하고있는 랑가주이며, 그 자체가 예술의 창작 노력으로 둘러싸인 랑가주다. 예술과 기호학의 관계를 조명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아무도 기호학의 정통성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진연구자로 에릭 뷔상스Eric Buyssens가 있다.") 영화는 이 문제에 주목하면서 정확한 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부인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말이다.

일반 언어학이나 기호학의 현재 연구 결과를 보면 영화가 현실을 유사하게 재현하는 사실이나 예술적 구성 때문에 랑가주의 다양한 형태를 포함하고 있는 영역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설득할 만한 근거가 없다. 의미작용에 관한 일반적인 연구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고자하는 의도에서 말해진 대상을 포함하는 모든 시스템을 랑가주의 현상으로서 간주할 수 있다(넓은 의미에서 대상을 관찰할 수는 있으나 특정 용어를 사용하기란 아직까지는 어려운 상황이다. 비언어 랑가주에서 이중분절이 없는 것은 중요한 특성이며, 언어학적인 분석의 영향을 받은 방법론으로 그 차이를 규명할 때까지 연구해볼 만한 주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호학자는 (미트리 본인이 스스로 그러했듯) 영화인의 작업을포함할 수 있는 폭넓은 범주에서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물 자체보다 더 유동적이고 더 조작하기 쉬운 사물의 대체어, 어떤의미에서 보면 생각과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사물을 대신하는 기호는담화적인 연속성 속에서 의도적으로 배열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랑가주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음성 랑가주와 차별되는 모든 특성도 나타난다.

미트리는 사진 효과를 가능하게 하는 복제라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지 않았다. 적어도 영화에 관해서는 말이다. 사실 사진 앨범 속사진이 동일한 결과를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핵심은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작용 전체에 있다고 보았다. 현실을 복제하려는 과정이 시작될 때 사진의 모험 역시 시작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영화에 푹 빠진 젊은이들 상당수는 미트리가 언급한 대상의 현실성을경험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어두운 극장을 빠져나올 때 느끼는 공허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혹은 치밀하게 배열되고 압축되어 있는 서사가 지닌 마력이 사라져버린 세상을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몇몇 젊은이는 ‘실제 삶은 무미건조하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무미건조 혹은 평범하다‘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아니 이 감정은 오히려 오직 한방향으로 촘촘히 짜인 구조가 부재함을 의미한다. 이 젊은이가 영화의매력만이 전파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님을 이해하고, ‘인생‘에는 종류는다르지만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몇 년이 걸릴지도모른다. 그는 아주 힘들게 혼란스러운 이 감정을 소화하는 법을 배우고스크린 앞에 앉게 될 것이다.

미트리는 사진을 복제성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그 결과물로여겼다. 이야기 속에 포함된 복제물은 항상 파톨parole이다. 구성할 수있는 다양한 담화 사이에서 주저하는 너무 순수한 대상 자체는 결국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게 된다. 미트리는 로제 뮈니에 Roger Munier의 유명한 논문 「매혹의 이미지 일부를 제법 길게 인용하면서 영화에서 대상은 언표énoncé, 오토auto-랑가주가 된다고 주장한다.

미트리가 바로 이 두 계열 간의 논쟁에 끼어들면서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는 입장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의 ‘특수한 면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매력은 영화가 재현된 세계이자 동시에 세상의 재현이라는사실이다(pp. 170~94). 스크린은 이미지로 주어진 것donné image" 과관련해서는 일종의 가리개(재현된 것이고, 이미지를 만들면서 주어진것donné imageant‘ (재현)과 관련해서는 일종의 프레임이다. 영화는 화폭으로 변한 세상이지만 동시에 여전히 세상으로 건재하다. 이 화폭은 직사각형 형태이지만 거기에 나타난 세상은 그 어떤 한계도 없다. 직사각형도 아니고 더군다나 어떤 형태라고 규정할 수 없다.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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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새롭고 놀라운 어떤 것이던 시절, 그 존재만으로 모든 관심중심이 되었던 시절, 영화 문학은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이론을 형성하는 데 주목했다. 그때는 델뤽, 엡스탱, 발라즈, 에이젠슈테인 등의 시대였다. 모든 영화 비평가는 대부분 이론가였으며 또한 ‘영화 연구가‘였다.

오늘날 몇몇 사람은 이런 종류의 글쓰기를 비웃기도 하고, 몇몇 사람은영화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당시에 충분히 말했다고 긍정적인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영화 한 편에 대한 비평 혹은 분석이 핵심 사안을 제시한 것이 맞긴 하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시네아스트이고, 우리는사랑하는 영화에 관한 혹은 사랑하지 않는 영화에 관한 사유를 통해 영화 예술을 둘러싼 일반적인 진실에 접근한다. 

 하지만 다른 접근 방식 역시 존재한다. 영화는 매우 광대한 그 무엇이다. 영화는 한 가지 접근 방식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통합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영화는 하나의 현상fait으로서 지각과 지성의 심리학, 미학, 대중 사회학, 일반 기호학이 참여할 만한 문제들을 제시한다. 마치 음악 한 곡을 감상할 때처럼, 좋은영화이건 나쁜 영화이건 한 편의 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영화 이론의 수많은 문제 중 가장 중요한 사안은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현실 효과 impression de réalité이다. 알베르 라파이 Albert Lafay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소설 한 편, 연극 한 편, 구상 회화 한 점보다영화 한 편을 보면서 훨씬 더 거의 현실 같은 공연에 직접 참여한다는감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관객이 지각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감정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을 유발시키고(사실 영화관에서 지루해하는 일은 드물다), 단번에 일종의 믿음을 조성한다(여기에서 믿음이란 물론 다른 분야에서보다 훨씬 강력하고 가끔은 절대적으로 너무 생생하기도 하다). 영화는 우리에게 분명한 어조로, "바로 이런 거랍니다"라고 하듯이 확신에찬 방식으로 말을 걸며, 언어학자가 별 어려움 없이 단정적이라고 주장할 만한 언표 형태를 이루며, 게다가 매우 종종 진지하다고 인식된다.

만약 영화가 현대 예술이 겪고 있는 예술과 대중의 괴리라는 문제에서제법 예외적인 경우라면, 만약 시네아스트가 자신의 친구들 혹은 친구가 될 만한 사람들 이외에도 다른 이들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는 많은 사람을 한 공간에 모이게 하는 현존성이라는 그리고 근접성이라는 비밀이 영화의 ‘힘‘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현실 효과를 생각하게 된다. 이는 중요한 미학적 결과를 만드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토대는 우선 심리적인 것에 있다.

있었던 그것이 맹렬히 공격하는 대상은 바로 나이다."(굵은 단어는바르트가 직접 강조) 사진은 허구의 예술, 서사의 예술인 영화와는 매우다르다. 영화는 매우 강력한 투사의 힘을 내포하고 있는데, 영화 관객은거기에 있었던 것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살아 움직이는 대상을경험하기 때문이다.

복제품은 그 내면에 많든 적든 현실 지표indice de réalité의 상당량을 포함하고 있다. 지각이라는 능동적인 행위는 완벽하든 좀 덜하든 사실주의적인 방식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요소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매우 설득력 있는 재현을 통해 관객은 감정적이면서 동시에 지각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복제품에 현실성이 부여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많은 작가가 이미 주목한바 그리고 관객 개인이 저마다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것처럼, 왜 영화 앞에서 관객이 느끼는 현실 효과가 사진에서 느끼는 것보다 그렇게 강력한지를 묻게 된다.

제일 처음 내놓을 수 있는 답은 움직임mouvement (영화와 사진의 차이점 중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들 중 하나)이다. 움직임이야말로 강력한 현실 효과를 만들어내는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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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지된바, 단지 환자들을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아니다. 이 지식은 더 확장된 범주에서 인간의삶, 사회생활의 ‘정상적‘인 측면을 조명하는 데, 그리고 문학·예술 작품을 더 잘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

요컨대 영화의 실행적인 측면은 어찌 보면 프로이트의 이론이 기여한몇몇 주요한 인류학적 문채에 기대고 있다. 영화는 이들을 작용하게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선택한다. 영화적 도구의 고유 법칙과 20세기그 사회적 사용 법칙에 맞추어서, 다양한 양태와 새로운 확장을 만들어낸다. 정신분석은 시네아스트들을 혹은 영화 작품들을 더 잘 이해하게할 뿐만 아니라, ‘영화‘ 그 자체를 더 심도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영화에 대한 모든 정신분석적 생각,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귀결시키고자 하는 견해는 라캉의 용어를 빌리면, (대상으로서의) 영화를 상상계로부터 끌어내어 상징계로 귀속시키려는 노력으로 정의될 수 있을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위치의 문제 영역적인 부분, 상징화된 진보적인측면 등의 새로운 범주를 확장시키고자 희망한다.

 다시 말해 타 분야에서처럼 영화 분야에서도 정신분석의 경로가 ‘즉각적으로 기호학적‘이게되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적 접근이, 고전적 의미의 기호학 담론과 비교할 때, 언표énoncé의 문제에서 관심을 돌려 언표 상황énonciation 쪽으로 더 근접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종종 영화가 상상계의 테크닉technique이라고 하는데, 물론 맞는 말이다. 이때 테크닉이란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시기(자본주의 시기)와 사회적 현황(산업적이라고 지칭되는 문화에 적합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의 문제가 사실상 영화 이론의 문제 내에서 더 심각해지기 때문에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 모습(개인으로서의 모습, 문화와 사회로서의 모습에서 앎을 취할 뿐이다. 정치적 투쟁에서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적군의 무기이고, 인류학에서 우리의 유일한 원전은 토착민이며, 분석 치료에서 우리의 유일한 지식은 피분석자의 지식이다(피분석자는 사용하는 말로 지식을 전달하는데, 곧 분석자이기도 하다). 

영화 이론을 그 이론이 반대하는 지점, 즉 ‘대상의 담론discours de objet (영화 기관에서 이야기되는 토착화된indigène" 담론)이 대상에 대한 담론discours sur l‘objet 자리를 은밀하게 차지하는 그 예기치 않는 지점으로 빠져들도록 계속적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선택의여지는 없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이 그 희생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몇몇 영화 기자가 하는 것처럼, 우리는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결과를 확장시키기 위해 영화 주변에 대해 잡담을 늘어놓게 될 것이다. 상상계의 힘인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결과를 너무나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그 무엇으로 말이다.

요컨대 프로이트에게서 영감을 얻어 (이 책보다 몇 달 전에 발표되었던) 이전 두 논문에서 내가 분석했던 것 혹은 분석하고자 했던 것은,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이미 능선의 여러 비탈면 중 한 면에만 해당하는 상상계에 속했다. 

첫번째 논문에서는 반(半) 몽환 상태 심급으로서의영화적 허구fiction를, 두번째 논문에서는 거울상의 speculaire 동일시라고하여 스크린 - 관객의 관계를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 나는, 내대상을 상징계의 측면에서 혹은 오히려 그 산 능선 자체로 논의하고자 한다. 오늘날 나의 꿈은 약호라는 영화적 꿈에 관해, 이 꿈의 약호에 관해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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