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지된바, 단지 환자들을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아니다. 이 지식은 더 확장된 범주에서 인간의삶, 사회생활의 ‘정상적‘인 측면을 조명하는 데, 그리고 문학·예술 작품을 더 잘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
요컨대 영화의 실행적인 측면은 어찌 보면 프로이트의 이론이 기여한몇몇 주요한 인류학적 문채에 기대고 있다. 영화는 이들을 작용하게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선택한다. 영화적 도구의 고유 법칙과 20세기그 사회적 사용 법칙에 맞추어서, 다양한 양태와 새로운 확장을 만들어낸다. 정신분석은 시네아스트들을 혹은 영화 작품들을 더 잘 이해하게할 뿐만 아니라, ‘영화‘ 그 자체를 더 심도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영화에 대한 모든 정신분석적 생각,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귀결시키고자 하는 견해는 라캉의 용어를 빌리면, (대상으로서의) 영화를 상상계로부터 끌어내어 상징계로 귀속시키려는 노력으로 정의될 수 있을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위치의 문제 영역적인 부분, 상징화된 진보적인측면 등의 새로운 범주를 확장시키고자 희망한다.
다시 말해 타 분야에서처럼 영화 분야에서도 정신분석의 경로가 ‘즉각적으로 기호학적‘이게되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적 접근이, 고전적 의미의 기호학 담론과 비교할 때, 언표énoncé의 문제에서 관심을 돌려 언표 상황énonciation 쪽으로 더 근접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종종 영화가 상상계의 테크닉technique이라고 하는데, 물론 맞는 말이다. 이때 테크닉이란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시기(자본주의 시기)와 사회적 현황(산업적이라고 지칭되는 문화에 적합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의 문제가 사실상 영화 이론의 문제 내에서 더 심각해지기 때문에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 모습(개인으로서의 모습, 문화와 사회로서의 모습에서 앎을 취할 뿐이다. 정치적 투쟁에서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적군의 무기이고, 인류학에서 우리의 유일한 원전은 토착민이며, 분석 치료에서 우리의 유일한 지식은 피분석자의 지식이다(피분석자는 사용하는 말로 지식을 전달하는데, 곧 분석자이기도 하다).
영화 이론을 그 이론이 반대하는 지점, 즉 ‘대상의 담론discours de objet (영화 기관에서 이야기되는 토착화된indigène" 담론)이 대상에 대한 담론discours sur l‘objet 자리를 은밀하게 차지하는 그 예기치 않는 지점으로 빠져들도록 계속적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선택의여지는 없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이 그 희생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몇몇 영화 기자가 하는 것처럼, 우리는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결과를 확장시키기 위해 영화 주변에 대해 잡담을 늘어놓게 될 것이다. 상상계의 힘인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결과를 너무나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그 무엇으로 말이다.
요컨대 프로이트에게서 영감을 얻어 (이 책보다 몇 달 전에 발표되었던) 이전 두 논문에서 내가 분석했던 것 혹은 분석하고자 했던 것은,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이미 능선의 여러 비탈면 중 한 면에만 해당하는 상상계에 속했다.
첫번째 논문에서는 반(半) 몽환 상태 심급으로서의영화적 허구fiction를, 두번째 논문에서는 거울상의 speculaire 동일시라고하여 스크린 - 관객의 관계를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 나는, 내대상을 상징계의 측면에서 혹은 오히려 그 산 능선 자체로 논의하고자 한다. 오늘날 나의 꿈은 약호라는 영화적 꿈에 관해, 이 꿈의 약호에 관해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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