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통 이론은 고전적인 전통 영화에 관한 이론이기도 하다. 전통 영화는연극을 표절하고 모방하는 차원에서 벗어나려는 시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영화가 연극을 모방하는 일은 매우 쉬운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유혹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소설이 걸어왔던 길을 따라 영화를 만들었고, 상당수의명화가 이러한 방식을 따르고 있다. 반면 다른 종류의 영화는 새로운 시도를행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종류의 영화는 지적인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글들은 소설 - 영화에 관한 이론이다. 그 배경에는 연극과 구별되는 차이점이 언제나 깔려 있다.
영화에 관한 상당수의 책은 단순한 기삿거리 수준의 평을 내놓기 일쑤이다. 우선 영화 서적이라고 비교적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영화 비평과영화 역사에 해당하는 책들이 있다. 이외에도 일반적으로 영화와 관련된 책 중에 우리가 ‘영화 이론‘이라고 부르는 범주가 있다. 시네아스트cinéaste가 직접 집필한 책들, 비평가들이 쓴 책들 혹은 영화 애호가들이쓴 책들. 이상의 영화 이론에 속하는 책들은 영화 체제institution" 내부에속하면서 영화를 무엇보다도 예술의 한 장르로 생각한다.
사진적인 특성을 고려하면 영화는 현실에 너무나 충실하다. 한편 편집*과배열의 특성을 고려하면 영화는 너무나 자유롭게 구성된다. 따라서 언제나 영화는 랑가주의 수준에 약간 못 미치기나 혹은 그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조금 성급하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상에서 간단하게 언급한이유 때문에 미트리의 주장은 이론가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이다.
영화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영화를 새로운 유형의 랑가라고가정하기 때문이다. 그 내부에 현실을 재생산하는 파편들을 내포하고있는 랑가주이며, 그 자체가 예술의 창작 노력으로 둘러싸인 랑가주다. 예술과 기호학의 관계를 조명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아무도 기호학의 정통성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진연구자로 에릭 뷔상스Eric Buyssens가 있다.") 영화는 이 문제에 주목하면서 정확한 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부인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말이다.
일반 언어학이나 기호학의 현재 연구 결과를 보면 영화가 현실을 유사하게 재현하는 사실이나 예술적 구성 때문에 랑가주의 다양한 형태를 포함하고 있는 영역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설득할 만한 근거가 없다. 의미작용에 관한 일반적인 연구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고자하는 의도에서 말해진 대상을 포함하는 모든 시스템을 랑가주의 현상으로서 간주할 수 있다(넓은 의미에서 대상을 관찰할 수는 있으나 특정 용어를 사용하기란 아직까지는 어려운 상황이다. 비언어 랑가주에서 이중분절이 없는 것은 중요한 특성이며, 언어학적인 분석의 영향을 받은 방법론으로 그 차이를 규명할 때까지 연구해볼 만한 주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호학자는 (미트리 본인이 스스로 그러했듯) 영화인의 작업을포함할 수 있는 폭넓은 범주에서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물 자체보다 더 유동적이고 더 조작하기 쉬운 사물의 대체어, 어떤의미에서 보면 생각과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사물을 대신하는 기호는담화적인 연속성 속에서 의도적으로 배열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랑가주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음성 랑가주와 차별되는 모든 특성도 나타난다.
미트리는 사진 효과를 가능하게 하는 복제라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지 않았다. 적어도 영화에 관해서는 말이다. 사실 사진 앨범 속사진이 동일한 결과를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핵심은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작용 전체에 있다고 보았다. 현실을 복제하려는 과정이 시작될 때 사진의 모험 역시 시작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영화에 푹 빠진 젊은이들 상당수는 미트리가 언급한 대상의 현실성을경험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어두운 극장을 빠져나올 때 느끼는 공허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혹은 치밀하게 배열되고 압축되어 있는 서사가 지닌 마력이 사라져버린 세상을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몇몇 젊은이는 ‘실제 삶은 무미건조하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무미건조 혹은 평범하다‘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아니 이 감정은 오히려 오직 한방향으로 촘촘히 짜인 구조가 부재함을 의미한다. 이 젊은이가 영화의매력만이 전파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님을 이해하고, ‘인생‘에는 종류는다르지만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몇 년이 걸릴지도모른다. 그는 아주 힘들게 혼란스러운 이 감정을 소화하는 법을 배우고스크린 앞에 앉게 될 것이다.
미트리는 사진을 복제성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그 결과물로여겼다. 이야기 속에 포함된 복제물은 항상 파톨parole이다. 구성할 수있는 다양한 담화 사이에서 주저하는 너무 순수한 대상 자체는 결국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게 된다. 미트리는 로제 뮈니에 Roger Munier의 유명한 논문 「매혹의 이미지 일부를 제법 길게 인용하면서 영화에서 대상은 언표énoncé, 오토auto-랑가주가 된다고 주장한다.
미트리가 바로 이 두 계열 간의 논쟁에 끼어들면서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는 입장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의 ‘특수한 면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매력은 영화가 재현된 세계이자 동시에 세상의 재현이라는사실이다(pp. 170~94). 스크린은 이미지로 주어진 것donné image" 과관련해서는 일종의 가리개(재현된 것이고, 이미지를 만들면서 주어진것donné imageant‘ (재현)과 관련해서는 일종의 프레임이다. 영화는 화폭으로 변한 세상이지만 동시에 여전히 세상으로 건재하다. 이 화폭은 직사각형 형태이지만 거기에 나타난 세상은 그 어떤 한계도 없다. 직사각형도 아니고 더군다나 어떤 형태라고 규정할 수 없다.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