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억압할 수 없었던 또다른 형태의 혁명이 있었다. 발명이었다. 루다의 반란은 그전에 독일의 마인츠에서 일어난 조용한 혁명이 아니었더라면베르크에 국한된 채 남았을 것이다. 1430년대에 은세공사인 요하네스간츠플라이슈(또는 요하네스 구스플레슈, 후세에는 그의 어머니 쪽의 성인 구텐베르크로많이 알려져 있다)는 저렴한 《성경》을 제작하는 계획을 실험했다. 중세의 수도시들은 필사본에 머리글자를 찍기 위한 용도로 목재나 연질 금속에 글자를세계 인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구텐베르크는 황동 틀에 글자를 주조하는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각각의 글자를 빼내기 위해서는 틀을 깨야했고 그러면 더이상 그 틀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이 방법의 주된 문제였다.
그는 틀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 서로를 스프링으로 연결시켜 손상 없이 분리될수 있도록 만들었다. 1440 년대에 그는 더 나아가 이동식 틀을 사용해 《성경》을 인쇄했다. 이러한 발명들이 그를 부자로 만들어주었어야 마땅했으나 그의동업자 중 한 사람이 투자금 회수에 안달이 난 나머지 이 발명자를 몰락시켰다. 구텐베르크는 1468년에 맹인인 채로 죽어 잊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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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대화의 낭만적 풍경을 연출한다. 대안이 마련되면 ‘분쟁‘은화려하게 종료되고, 대립 없는 사회, 그리하여 평화로운 사회로 갈것이라는 예감 속에서, 사람들은 합의의 미덕을 사랑한다. 긴장과대립을 싫어하는 까닭에 대안 없는 비판에 대해 우리의 열정적 비관은철저하고, 간혹 이는 비판 그 자체의 의미를 폐기 처분하는 근거가되기도 한다. 대안 없는 비판은 의견이 아니며 고려 대상도 아니기에
‘의미 없는 의견‘이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란 말들에 의해 탈거 당하고쉽다. 비판이 대안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의 목적이 대인마련이라 심판할 수는 없다. 실현 불가능한 대안을 마련하다가 비판.
적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대안이 비판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유포하는 지휘자들 중 다수는, 비판이 거북한 세력들이기도 하다.
비판은 대안을 넘어선다. 비판 자체가 대안이다. 비판의 목적은 대인마련이기도 하나 그것이 비판의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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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성공한 사랑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사랑을 실험하는것이다. 내 위에 나 자신을 세우는 것이고, 나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다른 길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사랑은 타인의 욕망이 만들어 낸편견들로부터 벗어나 단독으로 구축될 수 있다. 편견은 세속의 입담에서건설되고, 사랑은 그 편견들로부터 자유로울 창조의 과정 위에 있다.
그 힘은 과감함과 근성이 받쳐진 단단한 수련과정에서 시작된다. 단발이아니라 연발이다. 사랑은 편견을 깨는 가장 탁월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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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없지. 개인적 욕망은 없다고 했잖아. 너만 알고 싶은 게 아니야.
남들과 차이를 만들어 내는 무언인가를 욕망하는 것이지.
차이를 향한 이 욕망이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이야. 차이를 향한 저돌적감정 에너지가 욕망인거지. 때문에 욕망은 사회 질서를 깨트리는나쁜 감정으로 이해될 때가 많아.
금욕이 도덕의 근본이고, 욕망을 줄이는 수련활동이 인간적인 것으로 이해되곤하잖아. 모범적인 인간은 욕망을 조절하고 인내할 수 있는 인간을 뜻하니까.
그런데 이렇게 욕망의 부정성만을 바라보는 관점은 감정을 오해한 거야.
감정이 양가적이듯 욕망 또한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품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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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은 자신의 운동 종목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에 대한 원리를 확실하게 이해해야 자신의 기술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상대 선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혼자 기술을 구사하는 폐쇄 종목에 해당되는 양궁, 사격, 골프, 역도, 체조, 피겨스케이팅 등의 선수들은 더욱 더 자신의 기술에 대한 원리를 명확하게 이해를 해야만 기술을 구사하는 데 일관성을 가질 수 있고 일관성이 있는 기술 구사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자신의 기술에 대한 역학적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시합 상황이나컨디션에 따라서 기술을 구사하는 방법이 달라지면서 매번 변하기때문에, 그는 자신의 기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없고 그결과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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