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억압할 수 없었던 또다른 형태의 혁명이 있었다. 발명이었다. 루다의 반란은 그전에 독일의 마인츠에서 일어난 조용한 혁명이 아니었더라면베르크에 국한된 채 남았을 것이다. 1430년대에 은세공사인 요하네스간츠플라이슈(또는 요하네스 구스플레슈, 후세에는 그의 어머니 쪽의 성인 구텐베르크로많이 알려져 있다)는 저렴한 《성경》을 제작하는 계획을 실험했다. 중세의 수도시들은 필사본에 머리글자를 찍기 위한 용도로 목재나 연질 금속에 글자를세계 인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구텐베르크는 황동 틀에 글자를 주조하는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각각의 글자를 빼내기 위해서는 틀을 깨야했고 그러면 더이상 그 틀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이 방법의 주된 문제였다.
그는 틀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 서로를 스프링으로 연결시켜 손상 없이 분리될수 있도록 만들었다. 1440 년대에 그는 더 나아가 이동식 틀을 사용해 《성경》을 인쇄했다. 이러한 발명들이 그를 부자로 만들어주었어야 마땅했으나 그의동업자 중 한 사람이 투자금 회수에 안달이 난 나머지 이 발명자를 몰락시켰다. 구텐베르크는 1468년에 맹인인 채로 죽어 잊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