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82
그러나 부(夫)가 구체적인 경우에 처의 사정과 의사를 무시하고, 자기의 주장을 심기 위한 수단으로, 또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굴복시키기 위해, 성행위 이후에는 자신의 뜻대로 갈등이 해결된다는 망상에 빠지는 등 여러 가지 불순한 의도와 잘못된 판단으로 처를 강간하는 것은 상대를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당한 욕구충족과 의사관철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물화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부부의 성은 저주가 된다. 성적 결합이 부부 사이를 유지하는 중요한 용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는 정신과 영혼의 긴밀한 결합이 두 사람의 삶을 받쳐줘야 하며, 결합은 두 인격체의 깊은 사랑과 신뢰에 그 뿌리를 둬야 한다.
 
p.83
성적 자기결정권은 그 권리의 성격상 특정인에 대해 이를 포괄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우에 매번 개별적으로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남편의 성적 교섭 요구는 처의 소극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멈춰야 한다. 이때 남편은 현안으로 대두된 갈등 해소를 위해 대화와 설득 등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도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동거의무의 불이행을 전제로한 이혼 청구의 방법으로 사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국가가 명백하게 불법으로 규정한 폭력적인 방법 등을 동원해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시도를 부부 사이라고 용인할 것은 아니다.
 
... 부부강간의 인정이 처에 의해 오용되거나 남용될 가능성이 있거나 입증곤란의 사정을 들어 그 같은 해석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견해가 있으나, 이는 수사와 재판 등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사실인정 문제다. 이를 내세워 폭력을 수단으로 한 부부강간을 부정하는 구실로 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p.88
호칭에 담긴 사회적 평가를 무시하고 기능만 담아 표현하자면 법관도 판결공이나 재판공에 다름 아니다. ... 재판이나 판결문 작성에는 전문가라는 의미가 담여 있는 것으로 읽힌다.
 
 판사는 왜 판결공이 아닌가
 
p.94
오래전 연구지만 산재사고에 관한 유명한 연구가 있다. 1931년 보험사에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재 사례분석을 통해 통계적 법칙을 발견했다. 산재가 발생해 중상자가 1명 나왔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1대29대300의 법칙이라고도 부르는 하인리히 법칙이다.
 
p.95
죽음조차 비용과 편익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기업의 비정함에, 그 많은 전조를 깡그리 무시하는 그들의 대범함에, 그 비정을 무정하게 규율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무력하고 성긴 법을 들고 정의의 쪼가리라도 찾아보려는 내 한심한 한계에 신물이 났다.
사람의 생명을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의 숫자로만 파악하는 부도덕한 기업에게는 손해배상과 더불어 징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p.96 제너럴모터스가 수년 전부터 연료탱크가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제품회수보다는 재판으로 해결하는 쪽이 비용이 덜 들 것으로 판단, ... GM의 내부 보고서가 공개
 
p.97
위험을 외주화하고 하루 평균 노동자 다섯 명이 사망하는 나라, .... 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옴에 가장 적확한 단어는 퇴근이나 귀가일 수 없다. 생환이다.
 
p.115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깊은 고통에 빠질 때 우리는 기꺼이 그 고통과 슬픔에 동참한다. 그리고 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우리를 정의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이다(영화 <공각기동대>).
 
p.133
아이들을 사회적으로 완전하게 출생시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고, 이 아이들을 완전히 태어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꾸준한 관심과 지지였다.
그 후로 나는 ‘사랑과 훈계, 위로와 독려의 효과가 즉각적이지 않다고 실망하지 말자,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거듭 다짐했다.
공허한 희망과 충고의 말도 그만뒀다. 대안 없는 충고와 희망이 아이들에겐 오히려 독이었다.
더 나은 삶을 현재와 대비해 고통을 키운다는 점에서,
변화할 수 있음에도 이런 진창에 머무는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식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비하하고 학대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동시에 아이들의 처지가 아무리 암담하고 변화가 미미해도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는 사실 역시 깨달았다.
 
p.168
당시 재판장은 “내 기억은 ‘내가 그것을 했다’고 한다. 내 자존심은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고 말하며 요지부동이다. 결국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한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그의 심리상태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설명했다.
 
p.224
법원에 온 이후 한동안 세상이 아름다운지 추한지, 평화로운지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곳인지, 살 만한 곳인지 지옥인지 헷갈렸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무엇이 진짜 세계인지 현실감마저 떨어졌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의 종착점이 권태와 무료함이듯, 재판도 무덤덤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살인도, 강간도, 피고인도, 피해자도 그저 활자로만 보이고, 이 흉측한 사건들조차 오직 법원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만 일어날 뿐 내 현실세계에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한다고 인식한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온 세상이 평온해졌다. 나는 매트릭스와 현실세계를 분리함으로써 겨우 그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두 세계를 떼어놓고 분리된 인격으로 살아가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착시이자 도피였다. ... 두 세계는 분리할 수 없고, 가상의 매트릭스도 아니다. 서로의 현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분리된 채 살 수 없다.
 
p.225
... 최선의 길은 사제와 공무원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다. 끊임없이 단련하고 노력해야 한다. 구도의 길은 멀고 험하지만, 항상 그 길 위에 있어야 한다. 매번 길을 벗어났다 다시 복귀할 수도 없다. 그건 위선적인 삶이다.
 
p.232
나는 사법농단을 야기했다는 동료 법관들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행동이 나빴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악행도 처음엔 다 선의고, 끝까지 선의일 수 있다. ... 문제를 제기한 법관들이 사법부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냈다고 탓해서는 안 된다.
 
p.233
조직의 논리를 내세워 그들이 순진하다고 욕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 누군가의 순수함이 정의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배를 띄웠다면, 고루한 반대편은 격랑 속에서 배의 균형을 잡는다.
 
p.238
상황이 아무리 터무니없는 결론을 요구해도, 시절이 아무리 암담해도, 자신의 실수가 아무리 끔찍해도, 그들은 단일대오에서 벗어나 꿋꿋이 혼자만의 길을 갔다. 앞서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너무 외로워서,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을지언정(오르텅스 블루, <사막>), 그들은 잘못된 길을 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엇이 바른 길인지 알기 어려워 적극적으로 길을 떠날 수 없다면, 적어도 필경사 바틀비처럼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1999)라며 저항해야 한다.
 
p.243
과연 무엇이 바르고 곧은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한 본성’이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주는 것’이라 했고,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 했고, 존 스튜어트 밀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칸트는 ‘도덕적인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라 했고,
존 롤스는 ‘모든 시민에게 기본적 자유를 평등하게 주되, 사회적·경제적으로 불평등이 있을 때는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가장 많은 이익을 주는 것’이라 했고,
마이클 샌델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라 했고, 로널드 드워킨은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p.266
병원에서처럼 법정의 언어 역시 삶의 고통을 표현하는 통증언어다. ... 그러나 내가 치아와 허리통증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듯,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 노련하고 성의 있는 의사가 되어 통증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단지 언어만이 아니라 그의 태도와 표정, 주변환경과 행동을 종합해서 통증을 눈치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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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수레바퀴의 교체 가능한 부품이 아니라 수레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린치핀)과 같은 존재, 중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중요하기 때문’이란 식의 전개여서 납득이 쉽지 않다. 중간중간 보이는 오타도 몰입을 떨어트릴 뿐만 아니라 린치핀에게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부분은 조금 황당하기도 하다. 굳이 날 서거나, 불필요한 불친절은 자제하는 것이 낫다 정도로 선해 했고, 이는 나의 일상에도 조금 도움이 됐다. (이 책을 읽은 효용이 있긴 했음ㅎㅎ) 그리고 그의 결론이 결국은 린치핀이라는 뛰어난 부속품이 되라는 것인지 수레바퀴의 주인이 되라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참고 도서에 관한 짧은 코멘트를 남겼는데, 놀랍게도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과 같아 인용해 본다.
 
p.456
애덤 스미스, 국부론
이 책을 읽어본 결과, 완독할 이유는 전혀 찾지 못했다. 요약본만 읽으면 충분하다.
 

 
이하는 메모


p.239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너그러움과 인간성이다.
 
p.260
영감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지 않는다.
저항과 맞서 싸우고 일을 마무리한다.
완벽한 핑곗거리가 되고, 저항을 끌어들이는 이상적인 방법이 되는 수많은 일들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런 업적을 쌓았다.
 
p.343
남을 가르치려는 순간 우리는 진다.
 
p.348
집착과 열정이 결합하면 엄청난 에너지의 낭비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태롭게 만든다.
p.371
내가 설정하지 않은 행동지침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이끌어 주지 않는다.
p.373
이곳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p.391
성공은 너그럽게 행동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길을 보는 데 있다.
 
p.392
상황이나 습관이 자신의 선택을 지배하도록 두지 마라.
 
p.396
그렇게 계속해서, 언제나 고양이처럼 난관을 사뿐히 헤쳐나갔다.
(랄프 왈도 에머슨)
 
p.396
그러한 생각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p.401
뉴미디어는 사람들 사이에 공명하는 아이디어에 보상한다.
뉴미디어는 그 아이디어가 퍼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p.405
어떤 사람의 관심을 선물로 받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준다.
(1분도 채 안 되어 그들은 적에서 열광하는 팬이 되었다)
 
p.406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경쟁력
 
p.417
린치핀은 조직을 위해서 두 가지 일을 한다.
감정노동을 아끼지 않고 발휘하는 것과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p.422
조직은 뉴턴의 법칙을 따른다. 정체된 팀은 정체된 채로 남아있으려 한다.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기본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러하다. 냉소적인 태도, 정치적인 태도, 적절한 타협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서서히 멈추고 만다.
 
p.423
린치핀은 이러한 상황을 바꾼다.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할 줄 안다면,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끌 줄 안다면
 
p.432
린치핀이 되기 위한 기회를 잡으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계획에 상사를 참여시키고, 상사가 그 위의 상사에게 욕을 먹지 않게끔 처신하며,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최대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p.449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마무리해서 세상에 내보낼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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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7
처음에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벅찼다. 그러더니 현실이 그녀를 옆으로 세게 밀치며 지금까지 그녀가 달려왔던 선로에서 벗어나게 했다.
 
p.50
생각해보면-요즘에는 점점 더 그랬다-노라는 자신이 되지 못한 사람, 이루지 못한 일들의 관점으로만 자신을 보았다.
 
p.57
“이건 어떨 때는 후회하다가 어떨 때는 후회하지 않는 후회지. 그런 게 몇 개 있어.”
 
p.58
하지만 불현 듯 그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엄마처럼 될까 두려웠다. 부모님 같은 결혼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 노라는 부모님이 서로를 사랑한 적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결혼 적령기가 되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하고 결혼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음악이 멈출 때 가장 옆에 있는 사람을 붙잡는 게임처럼.
 
p.59
노라의 슬픔에는 우울과 불안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기분이 뒤섞여 있었다.
 
p.63
실망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면 넌 계속 거기 남아서 행복하게 살 거야. 실망감이 없는 상태가 곧 행복이니까.
 
p.74
사람은 도시와 같아서 마음에 덜 드는 부분이 몇 개 있다고 해서 전체를 거부할 순 없다.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이나 교외 등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다른 장점이 그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p.100
어떤 후회는 전혀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단다.
 
p.124
어쩌면 자살마저도 너무 활동적인 행위일 것이다. 그냥 둥둥 떠다니며 달리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채 변화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인생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인생이 그럴지도 모른다.
 
p.127
누군가 제게 어깨가 남자 같다고 그랬어요. 한심한 말이지만 세상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나이에는 그런 말을 다 사실로 받아들이죠.
 
p.203
노라는 차들로 붐비는 교차로에서 차량이 줄어들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운전 연수생이 된 심정이었다.
 
p.391
사귀지 않은 친구들, 하지 않는 일, 결혼하지 않은 배우자, 낳지 않은 자녀를 그리워하는 데는 아무 노력도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날 보고, 그들이 원하는 온갖 다른 모습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건 어렵지 않다. ...
또 다른 삶을 사는 우리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지 못한 삶들이 진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도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p,392
모든 것이 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무한하기 때문이다.
 
p.402
모든게 달라진 이유는 거의 죽을 뻔했다가 이제는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살기로 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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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
‘사회계층은 무엇이고, 교육시스템은 왜 이러는가’, ‘나는 이 사회에서 어디쯤에 놓여 있고,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p.35
사마천은 단지 ‘친구’의 유형이라고 한정했지만 나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고 인연을 맺는 수많은 인간관계로 확장해서 해석하고 싶다.
첫 번째 친구 ‘적우’는 도적 같은 친구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걱정거리나 나쁜 일은 책임을 떠넘기는 기회주의적인 사귐이다.
두 번째 친구 ‘일우’는 즐겁게 노는 일에만 어울리는 사귐이다. 어렵거나 힘든 일은 함께 하지 않고, 달콤할 때만 만난다.
세 번째 친구 ‘밀우’는 비밀이나 어려운 이야기까지 함께 하면서 친밀한 마음을 나누는 사귐이다. 즐거운 일뿐 아니라 힘든 일도 서로 돕는다.
네 번째 친구 ‘외우’는 서로 존경하면서 우러러보는 사귐이다. 서로 북돋우며 배우고, 허물은 나누어 잘못을 바로잡으며, 큰 의리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최고 경지에 이른 사귐이다.
...
한 사람에게 네 가지 유형의 모습이 섞여 있기도 하고, 상대에 따라 흐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p.72
공자의 학설을 따르고 연구하는 유가에서는 서민 계층을 위로 올려 귀족처럼 ‘예’로써 다스리자 했다. 도덕보다 법을 중요하게 여겨 형벌을 엄하게 해야 한다는 법가에서는 귀족 계층을 아래로 내려 서민과 마찬가지로 ‘형’으로써 다스리자 했다.

p.106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입니다. 여기에 앉아 계신 배심원 여러분들처럼 사회적 경험도 있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들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약자에 대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볼 대목입니다.

p.139
인간미 없고 차가우며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입무에만 충실한 사람이다. 불의에 찬 시대이고 모순투성이 사회일지라도 사회질서가 무너져 혼란해지는 것보다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우직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자베르는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실종된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p.140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자베르가 살아간 삶의 방식과 철학에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생각이 다른 사회구성원을 인정할 수 있는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모습이다. 법의 가치를 상징하는 자베르는 자신의 과오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로 사표를 제출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상황에서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다. 사법시스템에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음에도 ‘인간적인 가치’와 함께 사회에서 ‘법의 가치’와 ‘법의 존재이유’를 경시할 수 없는 이유를 자베르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다.

p.141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에서는 프랑스대혁명 이후 1870년 공화정이 제도적으로 정착되기까지의 수십 년 동안의 현실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있지만 위 혼란의 격변기에 노출된 민중들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비참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레 미제라블>의 시대적 배경인 19세기는 수많은 장발장과 팡틴과 코제트가 거리를 배회하는 시대였다.

p.142
‘자비로 완화된 정의’ 문형섭 변호사

p.145
간절함은 진정성을 내뿜고, 그 진정성은 무엇보다 가장 논리적이다.

귀족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자들은 겉으로는 대의를 내세우고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기득권자들은 스코틀랜드 왕좌가 비어있는 권력공백기에 권력만을 탐하고, 잉글랜드의 침략으로 국가가 위기인 순간에 협상이라는 명분으로 제일 먼저 기득권을 챙기기에만 정신을 쏟는다. 급기야 귀족들은 피난행렬의 선봉에 서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만 확인되는 사실이 아니고, 나라마다 국난의 시기에 보였던 사회 지배층의 일반적인 행태다. 우리 역사에서도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양반들이 백성을 버리고 가장 먼저 도성을 떠나 피난행렬에 앞장섰다.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사회지도층들이 앞 다투어 벌이던 친일행태, 한국전쟁 당시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피난을 떠났던 이승만 대통령과 사회지도층의 장면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사회지도층이 아니라 사회지도 ‘충蟲’의 모습이다.

p.147
롱생크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다만 무엇을 위해 죽느냐가 중요하다.
... 정의가 몸에 배면 어떤 순간에도 정의를 따른다.

p.190
조광조, 이이 등이 주장했고 임진왜란 때 군량미를 확보하려고 유성룡이 일시적으로 시행했다. 광해군 때 이원익의 건의로 경기 지역에 처음으로 실시되었고, 1708년 숙종 때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전국 확대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는데 가진 자들의 반대가 워낙 격렬했기 때문이다. ... 국가재정이 궁핍해지고, 세금을 내야 할 농민들이 몰락하니까 시행하게 된 측면이 있다.
기득권의 저항은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들이 무너진 다음에서야 누그러졌다.
기득권은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들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때도 있다.

p.192
1215년 마그나카르타 귀족이 지켜오던 관습을 국왕이 침범하지 말라 ‘귀족문서’
1688년 명예혁명
1689년 권리장전 귀족의 권리를 일반시민에게도 보편적으로 확대 ‘시민 문서’

p.214
역사의 무지함을 핑계로 배울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 일은 또 다른 범죄가 아니냐고.
... 왜곡된 사실을 진실처럼 믿으며 역사적 과오를 재생산하는 사람들

p.219
아무리 변론주의와 입증책임이 민사재판절차 제도라 하더라도 변론주의에 있어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관철보다는 보완과 수정 논의가 필요하다. 입증책임 또한 진위불명에 따른 재판 불가능 상태를 막으려는 보완책일 뿐이라는 사실을 사법부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소송의 스포츠화를 막고 ‘실제적 진실 발견’이라는 목표에 다가가야 한다.
...
재판부는 변론주의와 입증책임의 법리에 기대어 사건을 쉽게 해결하려는 태도보다는 충실한 소송절차의 안내, 소송구조제도의 활용을 통한 본인소송의 보완, 적절한 석명권의 행사, 입증촉구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p.239
‘거짓말을 처음 들으면 아니라고 말하고, 다시 들으면 의심을 하고, 거짓말을 계속해서 들으면 결국 믿게 된다’ - 나치 선동가 괴벨스

‘어제의 죄악을 오늘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은 관용으로만 건설되지 않는다’ - 알베르 카뮈

p.240
교각살우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침

p.252
‘그냥 대세에 순응하는 삶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라는 기회주의적 가치관을 미래 세대에 물려줄 수는 없다.

p.257
1986년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 보도

p.261
그동안 결과지상주의는 학력 위조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성공만 하면 이를 합리화할 수 있다는 편법과 불량을 양산해 왔다.

‘양심’이라는 말이 아직 사회화가 덜 된 철없는 사람들의 순진함 정도로 평가되어서도 안 된다. ‘정의’란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만 울려 퍼져서도 안 된다.

p.263
자신이 몸담았던 역할에서 가지고 있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 ...
다른 역할에 몸담게 되었을 때 ...
발전적으로 승화

p.280
진보주의는 목적의식적 지향이기 때문에 ... 쉽게 단결하지 못하고 작은 오류만으로도 쉽게 무너진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옛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렸던 사람들이 개혁자에게는 적대적이 되는 반면
새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 지지자로 남는다.

p.282
교조주의 이성적 비판 없이 무조건 믿어야 하는 신앙 같은 독단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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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8
변함없이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곡예이고, 어쩌면 오직 하나뿐인 진짜 미술인지도 모른다.

p.121
˝나는 할 수 없어. 바깥세상에 나가서는 잘 안 될 거야. 나는 모두가 말하는 시설 속에 갇힌 인간이 되고 말았어. 여기서 나는 확실히 물건을 조달해 주는 사람이지만, 바깥세상에 나가면 누구라도 그 일을 할 수 있어. ... 어떻게 해서 손을 대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나는 몰라.“
“그건 자기를 너무 업신여기는 말이야. 자네는 혼자서 배운 사람이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낸 사람이야. 난 자네가 보통 사람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해.”
“농담하지 마.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어.”
“그런 건 이미 알아. 그러나 종이 쪼가리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감옥이 인간을 망치는 것만도 아니고.”

p.128
막 교도소 문을 나간 전과자가 애초에 성공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렇게 해서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오려는 것이다. 그곳이라면 살아갈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앤디는 그렇지 않았지만 나는 그랬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것은 멋있게 들리지만 실제로 그곳에 가면 엄청나게 넓은 것 때문에 죽고 싶을 정도로 두려움에 떨 것이다.

p.154
돈을 걸지 않으면 잃을 것도 없다. 그에게 잃어버릴 것이 뭐가 있었겠냐고? 하나는 도서관이다. 다른 하나는 감방생활에 익숙해진다는 그 해로운 평화다.

p.155
이것은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것이다.

p.187
강제수용소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런 것들과 차고의 계단 아래에 있던 낡은 잡지에서 본 것의 차이는 세균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실제로 현미경을 통해서 살아 움직이는 세균을 들여다 본 차이와 같았다.
... 그 속은 차고가 아니라 어딘가 시간의 교차점으로 들어가 녀석들이 정말로 이렇게 했구나, 정말로 이런 일을 한 인간들이 있었구나, 그 인간들이 명령해서 이런 일을 하게 했구나. 라고 이해하고 있으려니까 혐오와 흥분으로 머리가 아파왔으며 눈이 뜨거워지며 어찔어찔해졌다.

p.206
우리들의 지도자는 분명히 미치광이였지. 그리고 그 누가 미치광이와 토론한단 말이니?
그것도 특출한 최고의 미치광이가 악마처럼 행운을 가진 경우에는 어떻게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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