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86
저는 학문의 경계를 넘는 사람들이 21세기의 주인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더 이상 어느 한 개인이 문제의 답을 찾는 시대가 아닙니다. 한 학문 분야에서 해결책을 찾는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21세기는 학문이 만나야 답을 찾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자연과학을 하면서 인문 소양을 갖춘 사람, 인문학자지만 자연과학을 이해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번 세기에 살아남는 겁니다.
p.91
해양생태학자 제인 루브첸코 박사
생태학자의 비율을 계산해보셨더라고요. ... 남성 중심의 분야였던 그 당시에 미국 생태학회에 소속되어 있는 회원들의 연구 키워드를 분석하셨죠. 압도적으로 많은 남성들의 연구 주제가 경쟁인 거예요. ... 반대로, 여성 생태학자들의 약 40퍼센트가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협동을 연구하고 있더랍니다.
p.96
그렇다고 잘못 얘기하면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게 될지도 모르거든요.
자연이 이러니까 우리도 이래야 한다는 건 옳지 않죠.
p.102
공정은 가진 자의 잣대로 재는 게 아닙니다.
p.103
공평은 양심을 만나야 비로서 공정이 됩니다. 양심이 공평을 공정으로 승화시켜줍니다.
p.104
여러분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 나라 최고의 수재들입니다. ... 취업 전선에서 완벽하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그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서울대 졸업장이 ... 70대에 할 일을 찾을 때에도 지금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앞으로도 쉼 없이 배우고 일하고 또 배우고 일해야 합니다. ‘융합의 세기’ 21세기를 살아내려면 ‘통섭형 인재’가 되어야 합니다. 겸허한 자세로 평생 도전할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이제부터 살아갈 4분의 3 인생도 지금처럼 치열하게, 그러나 사뭇 겸허하고 따뜻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p.110
생명의 한계성(죽음), 이게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 유전자의 관점에서 생명을 바라보자고요.
태초에 ... 자기를 복제할 줄 알던 어떤 화학물질, ... DNA 혹은 RNA 같은 유전물질은 허구한 날 자신과 똑같이 생긴 화학물질을 계속 복제하는 일을 합니다. ... 태초부터 지금까지 생명 실험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 겁니다.
따지고 보면, 지구의 생명 역사는 DNA 혹은 RNA 일대기에 불과합니다. 태어나서 아직 죽지 않은 그 친구의 삶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얼마 있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한계성을 지닌 개체지만, 우리를 만들어낸 DNA라는 유전물질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p.112
... 이 영속성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금 지구에 존재하는 이 많은 생물은 전부 하나의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거죠. 우리가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와 개미가, 나와 은행나무가 다 한 집안에서 왔다는 겁니다.
... 지금 우리 인간이 자행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환경 파괴, 생명 파괴 현상은 결국 가족을 죽이는 일입니다.
p.116
적자생존의 영어 표현은 ‘survival of the fittest’라는 최상급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윈 선생님이 실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the fittest’라고 하면, 최고로 적응 잘한 친구 하나만 살아남았다는 뜻입니다. ... 그래도 우리나라에선 번역을 오히려 잘한 편이고요. ... 서양 사람들은 저 표현을 들을 때마다 1등이 아니면 죽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1등만 남겨놓고 모두가 죽는 세상은 절대로 아니잖아요.
p.118
제가 최근 몇 년 동안 굉장히 열심히 생각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영어로 ‘coopetition’이라고 하는데요. 경쟁competition이란 단어와 경쟁cooperation이란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경쟁하는 듯 협력하는 듯, 이런 뜻이죠.
p.119
... 참 재밌게도 기업에서는 벌써 이런 일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더라고요. ... 분명히 다 경쟁하는 항공사들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손을 잡을 줄 안다는 거죠. 같이 손을 잡음으로써 아직 손잡고 있지 않은 다른 경쟁사들을 누르는 겁니다. 손을 잡는 자들이 성공하고 있다는 겁니다.
p.120
어떻게 경쟁과 협력이 기가막히게 조화를 이루느냐, 이게 결국 우리의 삶 아닌가요?
p.123
우디 플라워스 교수
“전문인들이 사는 21세기에 진정한 전문인은 치열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일한다. 그냥 놀고먹으면서 성공하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를 존경하고 따뜻하게 대하면서도, 치열하게 일하고 공부해서 이기는 거다.”
... 함께 가면서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성공할 겁니다.
p.124
‘호모’ ‘최’
‘사피엔스’ ‘재천’ 같은 것
스스로 ‘현명한 인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피엔스가 ‘wise’라는 뜻입니다.
이렇게까지 자화자찬을 해도 되는 건지….
p.125
굉장히 똑똑한 동물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헛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진짜 현명했으면, 이렇게 미세먼지 만들어놓고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살겠습니까? 모든 물을 다 더렵혀 놓고 개울에서 물도 제대로 떠먹지 못하면서 현명하시다고요?
p.128
지구는 완벽하게 포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이곳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건 우리 유전자에 없습니다.
우리 본성이 아닙니다.
이건 우리가 배워서 실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열심히 배워야 하는 겁니다.
p.129
제임스 왓슨 교수(1953년 DNA 구조를 밝힘)
“인간은 DNA의 존재를 알아버린 유일한 동물이다.”
p.131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보면, 모든 자연 현상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면서도 아주 기 막힌 표현을 씁니다.
“유전자의 폭력에 항거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p.132
... 유전자가 모든 걸 다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미 유전자의 존재를 알아버린 우리는 유전자가 폭력을 저지르는 것에 항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유전자의 관점에서 원천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을 착취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 착취하는 것보다 자연과 손잡고 사는 게 유리하다는 걸 발견한 것도 인간입니다.
p.145
(내시경 협찬 에피소드)
“우리가 개미 연구를 통해 너희 제품을 평가해줄 테니 보내봐라” ... ‘이게 말이 되나.’ 그런데 세 회사에서 자기네 제품을 보내오더라고요. ... 친구는 또 편지를 쓰더라고요. 세 회사 제품을 비교한 표를 하나 만들어서 “너네 회사는 이런 면이 부족했고, 너네 회사는 이런 면이 부족했다”라고 써서 보내니까 ... Fedex가 정글까지 배달해주는데 참 기가 막혔어요.
p.161
이런 개미들의 희생정신 때문에 한 마리만 놓고 보면 미약하지만 힘을 합하면 어마어마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겁니다.
p.174
제일 재미있는 차이점은 ‘후대에 어떻게 유산을 물려 주느냐’라고 생각해요.
개미는 유산을 물려주지 않아요. ... 그런데 꿀벌은 확실하게 물려줍니다.
p.175
분봉 때 보면 나뭇가지에 벌들이 잔뜩 매달려 있잖아요.
그게 엄마 여왕벌이 하는 일이에요.
사회 경험도 없는 딸이 집을 마련하고 나라를 건설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에요.
그러니까 엄마가 당신의 나라를 딸에게 물려주고 경험이 있는 당신은 일벌의 절반을 데리고 나가서 새로운 터전을 발견하고 또 시작하는 거예요.
... 여왕벌께서는 당신이 살던 아파트를 딸에게 아예 내어주고 당신이 길바닥으로 나갑니다.
p.176
개미나 꿀벌의 사회성을 ‘진사회성eusociality’이라고 부르거든요.
누군가가 홀로 번식하고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번식을 포기한 채 그 한 존재의 번식을 돕는 형태로 진화하는 걸 진사회성이라고 불러요.
p.177
하여간 저는 평생 정말 재밌는 연구(개미)를 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인간의 삶과도 계속 비교하게 되고,
관찰하면서도 이 곤충은 이 동물은 어떻게 이런 식으로 진화했을지,
우리는 왜 이렇게 진화하지 못했는지 고찰하는 게 되게 재밌어요.
p.184
한국에 왔는데 저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이 이 대한민국 땅에 한 명도 없는 거예요. ...
제가 무슨 얘기를 해도 주변에 제 얘기를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죠. 저는 여왕개미처럼 내 일개미를 키워서 그 일개미들과 같이 해야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제자 키우는 일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를 키워서 동료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게 이제 삶이 되어버린 건데, 그 와중에 저 혼자서 제자를 키울수가 없잖아요. 이들을 보내야죠. 보내서 훈련시켜야죠.
... 그 책을 만들 때 제가 참 잘한 일이 있어요. ... 아직 대가 반열에 오르지 않았지만 뜨고 있는 친구들에게 맡기면 참신한 글들이 나올 것 같고, ... 비교적 젊은 학자들로 모았어요. ... 여기에 총동원된 학자가 한 60명 정도 돼요. 한국에 왔는데, 이게 어마어마한 네트워크가 된 거죠. ... 그래서 제자들 중에 누가 무슨 연구를 하고 싶다고 하면, 그 동료들에게 연락해서 연결시켜줬어요. ... 이 책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대부분 대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학계에서 제가 해외 네트워크가 가장 막강한 사람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벌레 박사 학위논문으로 미국곤충학회의 젊은 과학자상을 받음 - 프린스턴대학 출판부의 책 출판 제안을 받음 – 박사 논문 말고 곤충의 진사회성 진화 관련 주제를 제안함 – 저자를 왕창 모음 – 분량 방대해 짐 – 결국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에서 출판)
p.199
여왕개미는 현장에 나와 진두지휘하지 않습니다.
여왕개미는 그저 알을 낳을 뿐이죠. 그리고 여왕 물질이라는 걸 분비해서 개미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만 할 뿐, ...
그래서 실제로 개미 사회의 작업 현장에는 리더가 없습니다.
... 없는데도 저렇게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겁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p.200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 연구소 – 통섭을 시작한 연구소, 복잡계 연구
p.201
산타페 연구소에서 ... 몇 년 전에 잠정적인 답이라고 하면서 발표하더라고요.
... 셀프 오거니제이션Self-organization, 쉽게 얘기하면 일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각자 알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많은 경우에 일을 시켜서 합니다.
그런데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찾아서 각자 그리고 함께 푼다는 겁니다.
p.208
선택과 집중이 적중하면 참 좋은데, 적중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 나라는 100퍼센트 선택과 집중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이런 거 해서 뭐가 나와’ 하는 연구도 챙겨줘야 한다는 겁니다.
p.224
박쥐는 기본적으로 열대에 사는 포유동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그런데 이 열대 박쥐들의 분포가 온대로 넓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 올라옵니다. ... 몇몇 거점 지역이 새롭게 탄생 ...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곳이 중국 남부랍니다.
... 박쥐 한 마리가 대체로 코로나바이러스 두세 종류 정도를 갖고 다녀요.
p.225
이 코로나19 팬데믹의 배후에는 기후변화가 있습니다.
... 기후변화 외에도 생물다양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p.238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 자연계의 다양성이 일단 확보되면 그게 유지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러다보면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습니다.
p.254
그런데 지금 우리는 멧돼지를 죽이고 있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우리가 가축을 기르는 방식이 문제잖아요.
p.256
“Nature abhors pure stands.”
...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 여기서 ‘순수’라는 건 다양성이 쏙 빠져 그저 한두 개 남았으니까 그걸 순수하다고 하는, 약간의 빈정거림이 섞여 있는 표현인 거죠.
... 다양성이 중요합니다.
p.261
가끔 어떤 분들이 지구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하면, 제가 웬 오지랖을 부리시냐고 해요.
지구는 좋아요. 인류의 미래가 걱정되는 거죠.
p.263
이런 와중에 곤충이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 곤충계가 완전히 붕괴된 건 아니라도 계절이 서로 안 맞아서 자꾸 삐걱거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걸 저는 생태 엇박자라고 부릅니다.
p.267
지금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요.
곤충이 특별히 엇박자의 핵심에 들어 있어요.
곤충들이 한창 번식할 때 다른 동물들도 거기에 번식기를 맞췄는데,
이게 안 맞아떨어지니까 아주 치명적인 거죠.
p.275
프란체스코 교황님이 2019년 11월에 ‘생태적 죄’를 인류의 원죄에 포함시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
이 세상 모든 걸 하느님이 창조하셨다. 그러면 이 세상 모든 건 하느님의 피조물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그 피조물들 중에서 어떤 하나가 자기가 힘이 좀 세다고 ... 하느님이 만드신 다른 피조물들을 마구 유린하며 죽이고 있는데, 하느님이 그걸 내려다보시면서 심히 흡족하다고 하실 리가 있느냐.
p.276
답은 아주 간답합니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의 문제, 그리고 이런 엄청난 팬데믹, 이런 걸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는 길은 자연을 보호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자연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이런 일들은 끊임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