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 모멸에 품위로 응수하는 책읽기
곽아람 지음, 우지현 그림 / 이봄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순간흔들려도매일우아하게

 

#모멸에품위로응수하는책읽기 라는 부제의 #독서에세이 다.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고 내가 빨리 읽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이틀간의 출퇴근길에 다 읽었다. 게다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몰입했던 적이 있었나 스스로 놀랄 만큼 흠뻑 빠져들었다. 견고하고 안전하면서도 쾌적한 이글루 안에 나 혼자만 있는 것처럼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20여권의 책에 등장하는 20여명의 여성들이 고난과 모멸의 순간에 어떻게 품위 있게 대처하는지를 볼 수 있다.

 

독서로 쌓은 교양이 가장 힘든 순간에조차 품위를 잃지 않도록 하는 무기가 된다. p. 29

 

적힌 책 중 반 정도는 읽고 소장했으나 처음 알게 된 책도 있다. 내게 없는 책들을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탐욕스럽게 쓸어담았다. 다만 양이 방대한 유리가면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릴 적 남에게 얻어온 문학전집에 있었던 소공녀, 어린 요코보다는 불륜을 저지르던 나쓰에가 더 선명하게 남은 빙점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20대에 날을 새며 읽고 30대에도 다시 구입해서 읽었지만 화자의 시선만을 쫓았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얼마 전 1,0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으로 독파한 작은 아씨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의 영향으로 한동안 빠져 있던 전혜린도 떠오른다. 뜻밖에 마스다 미리도 등장해서 반가웠지만 그의 철학적인 저술들을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은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대학시절 친구에게 빌려 읽던 10권짜리 빨간 머리 앤7권까지 읽고 멈췄는데 마저 읽지 못해 아쉽고 출판사가 어디였는지 새삼 궁금하다.

작년에 실수로 두 권이나 구입하고도 아직 읽지 못한 배움의 발견의 타라 웨스트우드와 우리 도서관에도 소장한 비커밍의 미셸 오바마도, 그간 요망한 허영덩어리로 오해했던 마리 앙투아네트도 알고 싶은 여인들이다.

중학교때 단체로 관람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에 대해 묘사한 문장에 웃음이 터졌다.

 

여자 작가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은 대개 먹물인 작가 자신을 투영해 책 좋아하고 지적인 데다 생각이 복잡한데, 스칼렛은 다르다. 시쳇말로 얼굴에 이 없고, 본능과 감정에 지극히 충실하다. p.127

 

나는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든다. 정갈하고 명료하면서도 다정한(?) 문장을 따라가는 독서 여행이 즐겁고 의미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삿되고 부박한 단어로 투명하게 이 좋음을 표현하고만 싶다. 이 책이 겁나 대박 좋다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엄과 품위를 지켜온 여성들을 보며 독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는 예민하고 지랄맞고 미성숙하지만 그나마 독서를 통해 이만큼이라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부정당하거나 공격 당하면 상처 받고 속이 상하지만 무논리로 주장하며 나를 설득하려고까지 드는 사람에게 똑같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말을 아낄 줄 알게 되었다.(정직한 표정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지만) 앞에선 듣기 좋은 말을 쏟아내지만 뒤에서는 어떻게든 내 흠결을 찾아내고 광고하는 사람을 알아보게도 되었고, 의리라는 허울로 구질구질하게 이어가던 인간관계도 깔끔하고 당당하게 정리할 줄 알게 되었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 참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