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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평점 :
#당신을이어말한다
이길보라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영화감독, 글을 쓰는 사람, 차별과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 그게 다였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는 그가 그저 주장하는 사람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주변을 빈틈없이 살펴 본질을 꿰뚫어 보고, 질문을 던지고, 세심하게 듣고, 무엇보다 행동하는 사람이다. 목표를 향해 꺾이지 않고 차곡차곡 나아가는 사람이다. 유난스럽다거나 예민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한쪽 눈을 감고 지나친 것들, 안위를 위하여 슬그머니 내려놓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길보라 작가는 코다(KODA)이다.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자로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뜻한다. ’농문화와 청문화 사이의 교집합‘인 코다로서 그녀가 가지는 자존감, 코다 자긍심은 솔직히 뜻밖이었다.
농인을 접할 일은 많지 않았다. 1990년대 말에 통신사 광고로 화려하게 TV에 등장한 한 여배우의 부모님이 농인이라는 기사를 읽고 ’저런, 안됐다‘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유명해졌으니 부모를 부양할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몇 년 전에 장애인 수영심판 자격을 취득하고 수원에서 열리는 장애인 수영대회에 심판 실습을 나갔다. 비장애인보다 두 배, 세 배의 노력으로 스스로를 연마하고 대회에 참가했을 선수들과 끊임없이 선수들을 다독이며 격려하는 지도자들에게 감동했다. 농인 선수가 출발대에 섰을 때 한 여자 코치님이 출발심판 옆에서 수어를 하고 출발신호를 보내는 것을 보고 “멋있어요.”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 그 자체의 답답함보다도 편견과 제도의 허점으로 알 권리에서 소외되는 것이 더 큰 불편함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수어통역이 제공되는 방송에서 귀퉁이에 조그맣게 등장하는 수어통역사의 표정과 손짓이 크나큰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다.
몇 년 전, 2년 넘게 광화문역에서 내려 출근하면서 장애인 단체가 이동권 보장을 주장하며 역내에서 어렵게 투쟁하는 것을 보고도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무지했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 것, 그러면서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눈과 귀를 크게 열어야겠다는 것을 그리고 미력하나마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무겁게 깨닫는다.
#이길보라 #동아시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