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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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습니까? 믿습니다!>

‘미신’의 의미를 검색해보니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여겨지는 믿음 또는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별자리, 동서양의 종교, 사상을 거쳐 현재의 가짜뉴스에 이르기까지 역사 깊은 미신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면서도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나는 점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기웃거리기도 하는 편이다. 내 발로 처음 점집을 찾았던 때는 12월이었고 내 나이는 스물 여섯 살이었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미 여러 사람의 가까운 미래를 예견하여 유명해진 역삼동의 점집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같이 가기로 한 남자친구는 전날 저녁에 시작된 회식으로 날을 새고 하숙집 앞 공중전화로 “나, 이제 집 앞이야. 씻고 나서 연락할게.”하고는 잠이 들어 연락두절이었고 잔뜩 속이 상한 채로 잠실에서 역삼역까지 전철로 가서 또 택시를 타고 어렵게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두 사람으로 예약을 했으니 두 사람껄 다 봐야 한다고 했다. 융단 가운 같은 걸 입은 긴 머리의 키 큰 여자가 부채를 펼치더니 방울을 흔들며 뭐라고 한참 노래 비슷한 걸 하더니 눈을 번쩍 뜨고 나를 똑바로 보며 그 남자친구와 헤어지라고 했다. 목소리도 달라져 있었다. 궁합을 보려던 게 아니라 내 취업운을 보려던 거였는데. 깜짝 놀랐지만 말을 돌려 “저는 언제 취업이 될까요?”하고 물었더니 2월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했다. 슬프고 말문이 막혀 바로 일어서는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란다. 자기가 기도를 드리고 부적을 써주면 그 남자와 결혼해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시한 금액은 신기하게도 내 통장 잔액과 일치했다. 그런데 영빨이 끝내준다던 소문과는 달리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몇 번인가 영험하다는 점집을 찾았다. 힘든 일이 있어 결정이 필요할 때나 답답할 때 위안을 받기 위해서였다. 신을 받았다는 곳도 있었고 명리학으로 풀어주는 곳도 있었다. 좋은 얘기를 들으면 조금 더 버텨보자고 마음을 다잡았고 좋지 않다고 하는 건 피하려고 노력했다. 맞는 얘기도 있었고 반은 틀렸지만.
어차피 반은 틀리는데 왜 돈을 내고 내 시간을 쓰러 가는 걸까?
이 책을 읽다보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미신을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공감이 되는 내용이 많을 것 같다. 신화와 역사의 뒷모습도 볼 수 있어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셜록 홈즈]를 쓴 코난 도일이 아내와 아이를 잃고 강신술에 심취했던 반면, 마술사로 환상을 선보이던 해리 후디니는 오히려 믿지 않았던 것도 인상적이다. 유려한 문장에 유머까지 솔솔 뿌려져 있어서 평소 스토리가 없는 책을 재미있게 읽지 못하는 나조차도 푹 빠져서 읽었다. 뒷표지에 적힌 명리학자 강헌 님의 ‘술자리에서 아는 척하기 좋은 지식은 덤이다.’라는 말에 동감한다.

천문학과 점성술은 17세기가 지나서야 명확히 나뉜다. 지동설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점성술은 기본적을 천동설을 바탕으로 한다. 지동설이 과학적 사실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점성술은 과학과는 완전히 선을 긋고 순수 미신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p.78

역사를 단편적으로 배우면 르네상스를 유럽에 이성이 찾아온 시기로 잘못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르네상스 때는 이성과 철학, 과학이 발전했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정확한 뜻은 그리스 로마 시대로의 회귀, 즉기독교 중심의 사회에서 탈피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이성과 철학, 과학뿐 아니라 비종교적인 모든 것이 부흥했는데 그중 대부분은 미신이었다. 물질의 발전은 기존 정신(종교)을 무너뜨렸다. 종교는 모든 만물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이 사라졌으니 사람들은 새로운 해석을 해야 했고, 종교의 빈자리는 미신으로 채워졌다. p.93
그의 예언도 모호하기 짝이 없었는데 결코 정확한 시간이나 장소나 인물을 특정하지 않았다. 그는 4행짜리 시로 예언을 남겼고, 이는 해석하는 이에 따라 세상 모든 일에 대한 예언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엄청나게 성실한 예언가였다. 그는 3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하나씩 새로운 예언을 남겼고, 현재 남아 있는 시만 942편이나 된다. 그러니 세상에 사건이 터질 때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XX마저 예언했다’는 기사가 아직까지도 나오는 것이다. p. 95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대중의 사랑은 교육의 여부와 상관없이 엔터테인먼트에 능한 이들이 차지하기 마련이다. 점성가에게는 별을 보는 능력보다 말솜씨가 더 중요해진다. 별을 보고 싶다 한들 길에서 활동하는 모든 점성가가 망원경을 가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p.105

천지인은 셋 다 나름의 주체성을 갖고 있으므로 이를 이해하는 것이 동양에서는 중요하다. 그래서 천지인을 이해하고 읽어내고 나아가 예측하는 학문이 생긴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한의학, 땅을 이해하는 것이 풍수지리학, 하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명리학(사주)이다. p.141

예언은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좋다. 어차피 무속인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 모호함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틀린 답을 내리더라도 그 틀린 답은 은유나 메타포가 되지 틀린 것이 되진 않는다. 예술가보다 중요한 건 대중이며, 마술사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이듯이, 신보다 중요한 것은 신자이며, 점쟁이보다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들이다.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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