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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마포구 사람인데요?
다니엘 브라이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8월
평점 :
작년 1월에 글쓰기 강좌에 등록했었다. 마지못해 꾸역꾸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휴식 겸 보상의 느낌으로 신청했던 터라, 글을 써서 뭔가 이루겠다는 목표 같은 건 없었고 막연히 글쓰기를 배워볼까 싶어서였다. 수강생이 16명이었는데 나를 빼곤 다 젊은 사람들이었다. 2,30대의 멋진 사람들이 세련된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걸 보고 적잖이 주눅이 들었다. 하루는 강의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해서 얘기를 나누다가 수강생 중 한 명이 외국에서 오래 일했고 3월엔가 또 이스라엘로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몇 사람이 “오, 멋있어요.”라고 하자 그분은 “이주 노동자의 고충은 어디에나 있죠.”라던가 그 비슷한 말을 했다. 그 말조차도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아, 거기선 이방인이지, 참.’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유튜브 ‘단 앤 조엘’의 크리에이터 다니엘 브라이트가 만난 사람들과 음식에 대해 우리말로 쓴 책이다. 한국에서 살고 있기는 해도 외국인인데 우리말로 책을 쓰다니.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최근 제목만 보고 책을 선택했다가 몇 번이나 낭패를 본 나로서는, 웬만한 우리나라 사람보다 오히려 문장력이 낫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리고 은근히 재미도 있다.
한국에서 충분히 재미있게, 희망차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유튜브 영상을 만든다는 그의 사람을 대하는 진지하고도 진솔한 태도가 마음에 울림을 준다. 수준급의 사진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많이 쓴 표현은 ‘겸손하다’라는 형용사인 것 같다. 누구 님은 참 겸손해서 좋았다, 누구 형은 겸손한 사람이다 등등. 심지어는 식당도, 책표지까지도 겸손하게 생겼단다.
나는 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남의 나라에서 생활하면서 얼마나 교만하고 무례한 사람들을 많이 겪었을까? 유튜버로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많은 거절과 냉대를 경험했을 것이다. 책 제목인 “저 마포구 사람인데요?”는 그가 들은 수많은 “Where are you from?”에 대한 재치 있는 답변이 아닐까 싶다. 소확행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성실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긴 하지만, 같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 따뜻한 악수를 건네고 싶다. 언젠가 마포를 걷다가 마주친다면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도 싶다. 은모든 작가님 북토크에서 전해 들은 마포 어느 식당의 제주도 흑돼지 두루치기에 소주 한 잔 나눴으면 좋겠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든 태어날 때부터 고향에서 살아온 사람이든 누구나 자기만의 힐링 장소와 쉼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찾았으면 한다. p.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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