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우리 엄마를 비롯한 동네 아주머니들의 헤어스타일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비슷한 짧은 뽀글머리였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오래 유지되는 스타일을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그 또래의 주부들에게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졌던 듯하다. 지금은 나이가 좀 있어도 각자 개성에 맞게 다른 스타일을 선택한다. 그런데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할테지만 나이가 들수록 뭔가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서 말이야.""내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말이지."그러면서 본인은 꼰대가 아니라고 우긴다. 안타깝다.김원희 작가님, 김원희 할머니의 책은 잔소리가 없어서 참 편안하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젊다고 우기지도 않고 건강을 과신하지 않는다. 조금 불편한 상태를 노화의 과정이라고 인정하면서 영양제와 관절약, 파스, 찜질팩을 캐리어에 챙겨 넣을 뿐이다. 책을 읽다가 여행지를 선택하시는 걸 보고 동질감이 들었다. 유명한 장소거나 천하절경일 필요도 없이 딱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고즈넉함, 평화 등등을 맘껏 누리시는 모습이 소녀 같기도 하다. 작은 것들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을 수수한 문장으로 그려내셔서 읽는 내내 즐겁고 편안하고 설렜다.나는 나이 든 강아지 걱정에 1박 2일 넘게 집을 비우지 못하지만 가까운 곳에 잠깐 나들이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나에게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이 들면 여행이고 뭐고 못한다고, 지금 아니면 못한다고.아니, 나는 나대로 현재를 즐기고 있거든. 더 나이 들어도 원희할머니처럼 멋진 할머니가 될거다. 나이가 더 많다고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가꾸며 즐기는 찐할머니 말이다.나이들어 여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내가 살아온 세상과 내가 지나온 시간을 보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p.25)늙은이의 시간이 그런 것 같다.나이들어 혼자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낯선 나라로 여행을 떠나 좌충우돌 다른 세상을 체험하는 것은 지난 시간을 확실히 깨닫게 되는 시간인 것 같다. 그토록 무료하고 힘들고 짜증났던 그 시간과 그 자리가 그래도 내가 가질 수 있는, 나에게 가장 편안한 것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거다.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