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전날의 섬......그후 바우돌리노. 움베르토 에코는 독보적인 위치를 가진 작가이다. 지식인들에게는 감탄을 일반인에게는 좌절과 동경을 안겨준다. 박학다식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며 중세적인 분위기와 특유의 지적인 유머감각을 자랑한다. 최근작 바우돌리노는 성배,동방박사,사랑등 환상적인 거짓말의 집합이다. 그 집합은 단순히 모인 것이 아니다. 에코교수의 숙제를 숨기면서 한 번 풀어보라고 한다. 이건 거짓말일까 이건 어떤걸까 여기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안 보인다. 어느새 찾다보니 끝났다. 그래도 재미있었지? 그가 말하는 것 같다. 굳이 알 필요 없이 그냥 느껴도 괜찮지 않을까? 에코는 장난치는 것같다. '이렇게 하면 헷갈리겠지'라고
에코의 소설은 소설이 아닌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의 창고이다.그만큼 난해하기도 하고 읽고 나면 자괴감과 더불어 읽었다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다. 에코 교수의 두번째 소설인 푸코의 진자는 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지를 보여준다. 마치 허공에 흔들리는 진자처럼 하나의 거짓말에도 그렇게 혼란에 빠지는 것을 보여주면서. 솔직히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이해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중세역사를 잘 알고 있지 않다면 이 작품은 고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작품을 수작이라하고 읽는 이유는 재미를 위해서인 것이다. 재미.그의 소설은 어렵지만 그만큼 넘어가는데 희열을 느끼게한다. 고통(?)뒤의 해소감이랄까 전날의 섬을 앞두고 심호흡을 한다. 다시 한 번?
여기 상당히 두꺼운 책의 묵직한 느낌이 있다. 외양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용 또한 실하다. 보기만 해도 포만감이 든다. 책의 구성은 1,2부로 나뉘며 1부는 유럽의 역사,철학,음악,미술,문학을 차례대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며 2부는 '교양인들의 모임'에서 멋지게 데뷔하는 법,'쪽팔리지않는'법을 설명해준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잘 짜여진 구성으로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저자의 유머감각 또한 단단한 한 몫을 하는데 특히 2부에 이르러서는 절정에 이르는 듯(?)하다. 하지만 그네들의 사고 방식이나 문화를 잘 알려준다는 미덕도 있지만 이 책이라고 장점만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씌어진 이유가 독일인을 위한 책이라는 것이다. 독일인을 위한 독일인의 책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한다. 그러므로 책머리에 독일의 교육현실을 소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책의 일관성을 떨어뜨린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지나치게 치우쳐져있는 사관이라든가 유럽중심의 사고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그들은 자신이 가장 빼어난 고급 문화를 향유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구성이라든지 내용의 충실함,재미등의 책 자체는 보기드문 수작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왜 많이 읽히는 것일까? 물론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상실의 시대'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하루키와 친구가 되기 위함은 아닌지. 상실된 청춘의 주인공과 공감을 하고 싶어서? 각설하고. 이 작품만을 놓고 본다면 씁쓸한 기분을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희열을 준다. 쉽게 표현할 수 없는 희열.흔히 우리가 비극적인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느끼는 고통,하지만 그 뒤에서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직접 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말하자면 우리는 관객의 입장이기때문에 안심하고 관람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황폐한 정신과 그 대안으로 물질에 파묻힌 등장 인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것도 생생하게 말이다. 에클버그의 눈동자는 그로테스크하게 익살스럽게도 보인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결과적으로는 버림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이 소설은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슬픔이 희망의 매개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국 푸른 빛을 향해 끝없이 달려간다.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서양 철학은 언제나 그리는 원같다. 계속 그리고 있지만 어느새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또 그리고 있는 것처럼 그 사유도 또한 자신에게 돌아간다. 즉 타자가 아닌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는 것,그 것이 서양 철학이라 저자는 말한다. 물론 모든 것은 절대인 것,즉 보편 진리는 유행 지난 옷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속에서는 부정되고 말았다는 것조차도 이미 해묵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금에 이르러는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인식조차도 갖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비춰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자는 역설한다.우리는 한 번도 우리 것을 갖지 못했다. 그 것은 부정할 수도 부정되어서도 않되는 것이다. 철저한 자기 인식을 우리는 해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것을 갖지 못했기에 다른 것을 가져야만 했다. 그렇게 받아들인 서양 철학의 자기 반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지금,우리는 또 다시 찾아야 한다. 다른 것을.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서양 철학을 이해하고 넘어서며 우리만의 것을 지향해야만 하는 것이다.그것을 이 책에서는 슬픔이라 한다. 한 없이 낮은 자의 눈으로 인식하라 한다. 가지지 못했기에 그러기에 슬프고 한 없이 낮은 눈으로. 참으로 아스라하고 눈물나는 철학. 하지만 그러기에 높은 곳을 올려다보던 우리가 낮은 곳을 보지 못했던 한계를 극복한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우리에게도 이런 철학의 씨앗이 발아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