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보다는 덜 재미있었습니다. 아마도 너무도 생생한 지옥도가 끝이 없이 펼쳐지고 끝도 없이 독자들을 밀어붙칩니다. 책을 들면 가슴이 답답하고 책을 내려놓으면 주인공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게 됩니다. 지옥도의 끝은 어딜까? 그런데 희망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다만 아주 가늘다 가는 희망의 실마리를 던지고 맙니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도 답답한 가슴이 풀리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인간에 대한 희망과 절망. 시스템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그 틈을 메꾸는 인간의 의지가 지옥도에 펼쳐집니다. 말 그대로 장관입니다. 현란한 화자의 시선 변화는 긴장을 더욱 자아냅니다.저는 28과 왕좌의 게임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인물들의 삶과 죽음에 가차 없습니다. 독자들이 정을 붙칠만 하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작가님 무서워요.
90년대말 2000년대초 김영하 작가는 어떻게 그렇게 인기가 있었을까요? 저는 2010년대의 말미에서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기 때문인지 좀체 따라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시대를 지배했다고 하기에는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빠른 문체. 도회적인 분위기.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저는 이번 호출을 읽으면서 저와 공죄는 느낌을 발견했습니다. 87년 체제. 형식적은 민주화를 이룩하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뒤의 진공상태를 김영하 작가의 소설들이 보여준 것 같았습니다. 특히 이 호출에 그런 이야기들이 도드라졌습니다. 전태일과 쇼걸이 그랬고, 베를 가르다가 그랬으며 나는 아름답다가 그랬으며 삼국지라는 천국이 그랬습니다. 투쟁의 목표가 없어지며 생긴 진공을 김영하 작가의 특유의 솜씨로 버무려냈습니다. 제 느낌입니다.
여전히 그림은 아름답고 이야기는 천천히 달리고 있습니다. 제가 아직 긍산에 관련된 책을 읽지 못한 관계로 비교할 수 없지만 산과 사람 등산의 이야기를 이렇게 사실적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얀 설산의 만화 칸에서는 그림 자체로 칸에서 눈이 나올 듯 합니다. 가파른 절벽에서 버티는 하부 조지의 이야기에서는 등산가의 죽음같은 고독이 느껴졌습니다. 3권을 읽은 하루. 아직 그 여운을 즐기느라 4권에는 가지도 못했습니다.
1편이 유려한 산 그림이었다면 2편은 본격적인 이야기의 연속입니다. 특히 하세와 하부의 치열한 경쟁과 하부의 그랑조라스 등정중의 수기는 여느 등산가의 등정가 못지 않은 박력과 긴장을 안겨줍니다. 더욱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에 눈이 부실 정도로 묘사된 에베레스트의 설경은 이게 과연 만화인가 하는 경외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