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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이기심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웃과 사회, 그리고 미래에 대한 관대성은 단단하고 바른 자신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나 자신을 잃고 도리나 의무에 짓눌리는 것은 진정한 배려라 하기 어렵다. 가장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딛고 선 가족의 행복은 있을 수 없고, 조직원들의 무조건적인 헌신으로 일군 조직의 성취는 비난받아야 한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갖고 자신의 삶을 추구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려면 타인에 대한 배려는 자신에 대한 배려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성경의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의 진짜 의미는 이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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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역할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래의 세대를 돌봐야 하는 것이다. 중년이 이 일을 맡지 않는 사회는 쇠퇴하여 소멸할 수밖에 없다. 한 사회의 미래가 될 청년들이 희망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그들을 제대로 키워 내지 못한 중년의 책임이다. 우리 사회의 요소요소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아저씨들은 결코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 때는 이랬는데 요즘 젊은 것들은~" 이라는 말은 스스로의 무능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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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지혜로워진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농경시대의 꿈같은 소리입니다. 늙으면 뻔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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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평균 수명이 60세를 넘기 힘들었던 시절, 사람들은 20세 전에 형성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이후 40여 년의 인생을 살았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훌쩍 넘은 지금, 청년기 초반에 그린 자신의 모습으로 60년 이상의 인생을 지속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구나 같은 시간 동안 사회 변화의 속도는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중년은 다시금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이다.
청소년기의 정체성 확립이 성인기 초반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듯이, 중년의 정체성 확립은 이후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중년의 정체성 찾기는 청소년과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시작하는 청소년기와는 달리 중년은 중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존재하는 곳은 모든 세계의 중간,
그야말로 중간계 the middle-earth다. 아저씨들은 삶과 죽음, 노년과 정년, 과거와 미래, 직장과 가정, 성공과 실패, 개인과 집단, 선배와 후배, 남성과 여성 사이의 어디쯤에서 살아간다. 그 사이에서 양쪽의 최적의 균형을 맞추어 가는 것이 중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갖는 길일 것이다. 아저씨들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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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이상적인 성취를 맛본 사람들에게도 중년의 위기는 찾아온다. 성공한 중년들에게 위험한 것은 팽창된 자아가 자기를 지배하는 경우다. 자신의 능력과 성취를 확대해석하고 자기도취에 빠지는 것이다. 개저씨의 트레이드 마크, 꼰대질이 여기에서 나온다. 나는 성공했으니 무슨 짓을 해도 항상 옳다는 생각이다. 주위 사람들의 처지나 사정 같은 것은 당연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어려움 모르는 젊은 것들의 투정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성공과 성취는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성공이며 무엇을 위한 성취인지 고민하고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성공에 갇혀 다른 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늙는다. 청년들이 빚이 있어야 파이팅한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고생을 안 해 봐서 모른다며 무시하는, 다 경험이라고 생각해야지 방법이 없다는 개저씨들은 자기도취에 빠진, 바람직하지 못한 중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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