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 같으면 우리는 누구나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세상에 완전한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우리의 사랑이 보잘것없다는 것도 다소나마 침착한 태도로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추억이란 더 까다로운 것이다. 그리고 매우 당연한 결과지만, 외부에서 우리에게 달려 들어와 도시를 맹타했던 그 불행은 우리가 격분할 수도 있던 그 부당한 고통을 주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괴롭히며 그 고통을 감수하도록 만들어버렸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고 불화의 씨를 뿌리는 이 질병의 상투적인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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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캐스팅, 멀티태스킹, 미니소딩 등은 기대사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자 특징이다. 기회의 문이 모두 열려 있고, 어떤 제품이든 살 수 있으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온라인상에 계속 머물지 않으면 뭔가를 놓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상에 머문다는 것은 그저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기대사회에서는 무엇이든 그것에 따른 기회비용을 산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포기할 것도 점점 많아진다. 햄버거 하나, 자동차 한 대, 신발 한 켤레를 산다는 것은 단순히 그 품목을 구매한다는 의미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모든햄버거, 피자, 자동차, 신발 그리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을 사지 못한다는 의미가 된다. 온라인으로 1달러짜리 팝콘을 주문한다는 사실은 27만 하고도 9,999가지나 되는 다른 팝콘 선택지를포기한다는 뜻이다.
기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손해가 발생한다. 시간은 귀하다. 아무리 멀티태스킹과 미니소딩의 덕을 보더라도 모든 것을 다 할 시간은 없다. 혹은 모든 것을 다 품을만한 용량이 부족하다. 물리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아무리 옷이 많아도 옷장에 담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고 집이 아무리 넓어도 그 안에 모든 것을 다 들여놓을 수는 없다. 생산할 수 있는 자동차 대수에도 한계가 있고 운송이 가능한 맥주캔의 수도 정해져 있으며 팔 수 있는 꽃의 양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한계 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을 때는 선택이라는 것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럴 경우에는 제품을 사거나 기회를 잡아야 할 때, 최상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가 기회 혹은 선택지가 여러 개 주어지면 그제야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회의 수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 선택지의 수가 많아지면 우리의 만족도는 오히려 급속히 줄어든다.
수많은 연구 결과 사람들은 의사결정 상황에서 선택지가 많은 쪽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다다익선多多益善‘
의 원칙에 따라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들이 한 선택에 대한 만족도를 측정했을 때 그 결과는 아주 분명했다. 즉, 선택지가 많을수록 그 선택에 대한 만족감이 줄어드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다다익선이 아니라 ‘다다익악‘이 지배하는 것 같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최상의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실제로 우리의 대뇌계산기는 선택지의 수가 단기기억 용량의 최소 단위인 5개를 넘어가면 그 기능을 상실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선택지의 수가 증가할수록 더 많은 기회와 선택지를 포기해야 하기에 거기에서 더 큰 상실감을 느낀다. 또한 우리가 최상의 결정을 내렸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어떤 제품을 사지 않거나 기회를 잡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매기는 경향을 보였다.


인간의 본질적 특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보다 한 행동을 더 많이 후회한다는 점이다. 행동을 하고, 무언가를 사고, 기회를 잡는 등의 행위를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놓치게 된다. 그러고 나서는 그렇게 놓쳐 버린 것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만약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들은 여전히 가능성의 범주에 머물러 있게 된다. 즉, 어떤 행동이나 선택을 하기 전까지는 그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굳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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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방식은 이랬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굉장한 제품에 대한 소문을 퍼트린다. 그런 다음 바로 그 제품이 정말 출시된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그것을 손에 넣기는 쉽지가 않다. 그리고 마침내 제품이 출시된다. 물론 이것은 이전보다 성능이 개선된 버전일 뿐 완벽한 제품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완벽한 제품이 아니라 성능이 조금씩 개선된 제품이 계속해서 출시되면서 이러한 과정은 반복될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기발한 마케팅 기법, 바로 ‘넥스토피아 마케팅‘이다.

기대사회에서 ‘다음‘과 ‘지금은 동일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약 4년 후에 개봉될 영화가 ‘지금 당장‘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해낸다. 심지어 기대사회에서는 광고판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기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이미 했거나, 벌써 일어난 일에는 흥미를 잃는다. 대신 곧바로 다음 할 일에 더 주목한다. 어제 기대했던 그날이 오늘이었듯이, 이제 오늘의 새로운 관심사는 바로 ‘내일‘이다. 명성은 과거의
‘성과‘가 아니라 ‘기대‘ 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적 특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보다 ‘한 행동‘을 더 많이 후회한다는 점이다. 행동을 하고, 무언가를 사고, 기회를 잡는 등의 행위를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놓치게 되는데 그러고 나서는 그렇게 놓쳐 버린 것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만약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들은 여전히 가능성의 범주에 머물러 있게 된다. 즉, 어떤 행동이나 선택을 하기 전까지는 그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기대사회의 모순paradox은 기다리는 시간이 짧을수록 기다림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 바로바로 쩍쩍 붙여서 가져오는 우리의 ‘끈끈이 손가락‘ 탓이다. 늘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있기만 하다면 언제든 이 끈끈이 손가락을 뻗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손에 붙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어떨까? 바로 이럴 때 당신의 고통은 더 심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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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기록 작가란 사람이 그러한 모순을 참작할 수는 없다. 그의 임무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끌었으며, 따라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의 진실성을 자기들의 마음속에서 인정해줄 수 있는 목격자가 몇천 명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단지 ‘이런 일이 생겼더라’고 말하는 것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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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뜻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화 과정 그 자체이고, 둘째는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화 과정을 문자로 쓴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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