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혜는 권인경을 만나 광고와 권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광고는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권력을 팔았다. 소비자가 왕이고 소비 행위가 권력 행사라고 부추기는 것을 넘어 권력에 대한 환상까지 팔았다. 이 상품을 소비하기만 하면 당신은 매혹적으로, 부자로,
자유롭고, 힘 있게…… 뭐 그런 어떤 것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속삭였다. 광고는 끊임없이 인간들의 결핍감을 자극하고, 욕망을 창출하고, 그 욕망으로 하여금 권력을 향해 달려가도록 부추겼다. 그리하여 광고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권력으로 등극했다. 사람들은 이제 광고 속 음식을 먹고 광고 모델처럼 입고 카피처럼 말했다. 소비의 시대가 아니라 바야흐로 광고의 시대였다.
권인경은 광고뿐 아니라 인간의 삶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권력이라는 사실을 피력했다. 인간들이 사랑에 씌워 놓은 환상을 걷어 내고, 인간의 삶에 씌워 놓은 휴머니즘과 삼강오륜을 걷어 내면, 모든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뼈대는 욕망이었다. 그리고 욕망은 정확하게 권력을 지향하고 있었다.
사랑도, 우정도, 의리도, 충성도 한 꺼풀만 벗기고 보면 결국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허망한 권력 지향일 뿐이라고 했다.
권인경이 정의하는 권력은 아주 포괄적이었다. 무엇이든 그 당사자에게 매혹적인 것, 그 당사자의 생존에 필요 불가결한 것, 당사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이 곧 권력이라고 했다. 정치 권력뿐 아니라 경제력, 지식, 재능, 미모, 재미, 노하우….… 그 모든 것이 다 권력이 될 수 있었다. 그날 인혜는 권인경의 열린 태도, 순발력있는 기획, 자유로운 상상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결국, 권력이 성적 충동까지 유발한다는 데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