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기 직전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더 이상 지금처럼 살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 도달했구나, 한 발 제껴 디딜 곳이 없구나………. 나름대로 잘 살아 왔다고 믿고 있었는데 문득 둘러보니 막다른 지점에 도달해 있었어요. 삶이 자연스럽게 흘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폐쇄적인 자기 복제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죠. 그러니까 의식이 어딘가에 갇혀 있는 듯하다는 표현이 옳을거예요. 의식이 확장되려면 삶의 형태가 바뀌어야 할 것 같고, 삶의 형태가 바뀌려면 의식의 지평이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 없었어요. 심지어는 왜 방법조차 모르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고요.」 - P73
「등산할 때 해발 오백 미터짜리 산도 오르려면 숨이 가쁘고 힘들어요. 그렇지만 히말라야 산도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아니죠. 한발 물러나서 보면 그래요. 여기서 하는 작업은 그때로 돌아가 그 시절의 감정을 고스란히 되살려 내는 겁니다.」그렇게 해서 그 시절에 외면한 고통과 슬픔을 다시 체험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사건을 기억해 내고, 그 기억에 얽혀 있는 슬픔이나 분노의 감정을 체험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으면 그것과 관련된 억압이나 신경증은 해소된다는 것이다. 모든 신경증은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 고통, 외면하고 회피한 예전의 고통이 뒤에서 다가와 뒤통수를 치는 현상이라고 책에서 읽은 적은 있었다. 그럼에도,
그토록 고스란히 감정이 살아나는 일은 놀라울 뿐이었다. - P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