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듣는 사람 사이에서는 예의가 중요하다. 읽고 쓰는 사람 사이에서는 윤리가 중요하다.
예의와 윤리는 다르다. 예의는 맥락에 좌우된다. 윤리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한다. 나에게 옳은 것이 너에게도 옳은 것이어야 하며, 그때 옳았던 것은 지금도 옳아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괜찮은 것이 너에게는 무례할 수도 있고, 한 장소에서는 문제없는 일이 다른 시공간에서는 모욕이 될 수도 있다.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나 그 가족 앞에서 ‘암 걸리겠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무신경하거나, 무례하다. 그러나 그것을 비윤리적이라고 여겨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예컨대 인터넷 공간의 모든 사람에게, 앞에 없고 그가 모르는 암환자 가족이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암 걸리겠네’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돌겠네, 미치겠네, 죽겠네’라는 표현은 어째서 허용하는가? 신경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과 그 가족, 최근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족들의 상처는 왜 살피지 않는가?
예의는 감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이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비윤리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비판 의식을 키워야 한다. 전자도 쉽지 않지만 후자는 매우 어렵다.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윤리에 대해서는 보편 규칙을 기대해볼 수 있으며, 온갖 암초 같은 딜레마를 넘어 우리가 어떤 법칙을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의는 끝까지 그런 법칙과는 관련이 없는, 문화와 주관의 영역에 속해 있을 것이다.
어떤 종이책 애호가들은 독자가 전자책을 읽을 때에는 종이책을 읽을 때와 달리 텍스트에 집중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글자를 넘기게 된다고 주장한다. 전자책과 종이책을 읽을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분 자체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들이 전자책과 웹문서를 혼동하고 있다고 본다.
전자책은 웹문서와 다르다. 그리고 둘의 큰 차이점 중 하나가 하이퍼링크가 있느냐 없느냐다. 전자책은 시작과 끝이 있는 단행본이며, 모든 문장과 문단에 맥락이 있다. 전자책을 볼 때 우리는 저자가 정한 순서에 따라 그 글줄을 차례로 받아들이고 다음 문장, 다음 문단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