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가지각색의 부조화스럽고 독립적인 개체들이 모인 조직체라고 추측했다. 나는 성격상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절대 옳다면 오직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내가 인간의 근본적이고도 완전한 이중성을 인지하게 된 것은, 나 자신 안에 내재된 도덕적인 측면을 통해서였다. 내 의식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 두 가지 성격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나지만 그것은 단지 내가 철저하게 양쪽 모두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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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특정한 성격적 결함이라기보다는 성공을 위한 엄격한 기준들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선과 악의 영역을 극명하게 나눈 이유도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엄격한 삶의 법칙에 대해 깊이 천착하는 버릇이 생겼다. 삶이란 종교의 뿌리이자 가장 거대한 고통의 원천 중 하나이다. 나는 이중인격자이기는 하나, 결코 위선자는 아니다. 내 이중성 어느 쪽이든 극도로 진지하기 때문이다. 절제심을 버리고 치욕 속으로 뛰어드는 나 또한, 밝은 빛 속에서 지식을 넓히거나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나만큼이나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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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께서는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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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다른 호화 가구들, 맛있는 요리 또는 그리스식이나 고딕 양식의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집을 마련하고 나서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생활필수품을 마련한 다음에는 여분의 것을 더 장만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바로 먹고사는 것을 마련하는 투박한 일에서 여가를 얻어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들은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수많은 원시적인 즐거움의 면에서는 가난하기 짝이 없다.

왜 우리들은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 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내일의 아홉 바늘 수고를 막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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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지만 대체 어떤 흔적과 영향을 남기고 있을까요? 무엇이 옳다는 걸 증명하고 있는 것일까요? 일에 지나치게 몰두 하는 사람들은 지우개와 비슷해집니다. 앞으로 끝없이 나가지만 그들이 지나온 길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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