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포악한 성격을 지녔고 남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결론을 내린 그녀는, 이제 자기 자신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그녀는 남편이 미워졌다. 남편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들었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랄 수도 없었다. 남편이 죽어버리면 남편이 벌어들이는 수입도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이 남편에 대한 그녀의 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조차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그 사실 때문에 자신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집은 사실, 실제로는 대단한 부자가 아니면서 대단한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그래, 그 친구는 죽었는데, 나는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군.’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반 일리치와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이른바 이반 일리치의 친구라는 이 사람들은, 이제 예의상 도의적인 의무를 수행하고, 추도식에 참석하고, 미망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조의를 표명해야 할 일들이 자신도 모르게 귀찮아지는 것이었다.
동료인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접한 이들이 맨 먼저 보인 반응은, 저마다 속으로 그의 죽음으로 발생할 자신들의 자리 이동이나 직위 변경에 대해 미리 계산하고 따져보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들은 그와 동시에, 가까운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듣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절친했던 동료가 죽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친구가 죽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함께 느꼈던 것이다.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옆집에 사는 이웃을 사랑하기는 몹시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