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가 없으면 우리 모두가 자유주의 낙원에서 살 거라고 상상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오히려 부족의 혼돈 속에서 살 가능성이 높다. 스웨덴과 독일, 스위스 같은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자유주의 국가들은 모두 민족주의 감정도 강하다. 민족적 유대감이 부족한 나라의 목록을 보면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 콩고, 그리고 다른 실패한 국가들 대부분이 들어가 있다.
문제는 선의의 애국심이 국수주의적 초민족주의로 변질될 때 일어난다. 내 민족은 독특하다 — 사실 모든 민족이 그렇다고 믿는 차원을 넘어, 내 민족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우월하고, 내 모든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이며,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내가 져야 할 중요한 의무는 없다고 느끼기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은 폭력적 갈등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세대를 거치면서 민족주의에 쏟아진 비판의 기본 요지는 그것이 전쟁으로 나아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민족주의와 폭력을 연결한 비판에도 민족주의의 과잉은 별로 수그러들지 않았다. 각 민족국가는 이웃 나라의 책동에 맞서 자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군사적 팽창을 정당화했다. 국가가 국민 대부분에게 전례 없는 수준의 안전과 번영을 제공하는 한, 국민은 피로 그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도 민족주의식 접근법은 대단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비록 민족주의가 전례 없는 규모의 참혹한 갈등으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동시에 근대 민족국가는 대규모 의료보장 및 교육, 복지 체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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