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북스] 개미 2
「사람이 죽으면 파리들이 몰려듭니다. 그러나 아무 파리나 오는 것은 아니고 아무 때나 오는 것도 아닙니다. 날아오는 순서가 정해져 있어요. 대개 청파리Calliphora가 제일 먼저 도착합니다. 그래서 제1군 파리라고 부르죠. 청파리들은 사람이 죽은 지 5분이 지나면 날아옵니다. 청파리들은 더운 피를 좋아하지요. 땅이 쉬를 슬기에 좋지 않다 싶으면 그놈들은 살 속에 쉬를 깔기고 시체에서 역한 냄새가 나자마자 날아가 버립니다. 청파리의 뒤를 이어 날아오는 것이 제2군 파리인 금파리Muscina 입니다. 금파리들은 조금 썩은 고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놈들이 고기를 먹고 알을 슬고 나면 다음엔 쉬파리Sarcophaga가 찾아오지요. 제3군 파리입니다. 쉬파리들은 더 많이 썩은 고기를 먹습니다. 마지막으로 치즈 파리Piophila와 침파리Ophira가 옵니다. 그런 식으로 다섯 무리의 파리가 우리의 시체를 차례차례 거쳐 가는 겁니다. 각자 자기 몫에 만족하고 다른 파리들 몫은 건드리지 않아요.」

개미 2 |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세욱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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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 개미 2
사자 숭배

어떤 문명이 지혜로운 문명인가 아닌가를 가름하는 첫 번째 요소는 〈죽음의 의식〉이다.

인간들이 시신을 쓰레기와 함께 버렸던 시절은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인간들이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기 시작한 것은 문명사의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자(死者)를 돌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 위에 놓인 눈에 보이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상정하는 것이다. 또 사자를 돌본다는 것은 인생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 가는 과정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종교적인 행동은 거기에서 유래한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사자 숭배가 가장 먼저 행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7만 년 전인 구석기 시대 중기의 일이었다. 당시에 몇몇 부족들은 시신을 길이 1.4미터 너비 1미터 높이 0.3미터인 묘혈에 매장하기 시작했다. 부족의 구성원들은 시신 옆에 고깃덩어리와 부싯돌로 만든 무기들과 고인이 사냥한 동물의 머리를 놓아두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부족 전체가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개미 세계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을 발견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어떤 개미들은 여왕개미가 죽은 뒤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 먹이를 갖다 준다. 개미들의 시체에서는 올레인산이 발산되기 때문에 여왕개미가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텐데도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미 2 |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세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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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나 국가에 대한 믿음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고 해서 그 믿음이 참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잘 속아 넘어가는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뿐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바보라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않는다. 그러다 보니, 특정한 믿음을 위한 희생이 크면 클수록 신앙은 더 강해진다. 이것이 신비한 희생의 연금술이다. 희생적인 사제는 사람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아무것도 줄 필요가 없다. 비도, 돈도, 전쟁의 승리도, 그보다는 무언가를 없애면 된다. 사람들이 고통스런 희생을 감수할 정도의 확신만 주면 그들은 덫에 걸려든다.
4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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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깃발 제작에 들어가는 돈은 국가적인 의식의 효과를 높여준다. 모든 의식 중에서도 가장 잠재력이 큰 것은 희생이다. 세상모든 것 중에 고통이야말로 가장 실감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것만은 결코 누구도 무시하거나 의심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 어떤허구를 정말로 믿게 만들고 싶다면, 그것을 대신해서 희생하는 쪽으로 그들을 유도하라. 누구라도 이야기를 위해 고통을 체험하고나면 대부분 그 이야기가 실제라고 확신하게 돼 있다. 
4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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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는 나에게 역할을 주면서 나의 지평 너머로 뻗어가야 하지만 반드시 진실일 필요는 없다. 이야기는 순수한 허구이면서도 내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내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느끼게 해줄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최선의 과학적 이해에 따르면, 인류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 부족들이 발명해온 수천 가지 이야기 중 어느 하나도 진실인 것은 없다. 모두가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다. 만약 당신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구하고서 이야기를 답으로 얻는다면, 이것이 틀린 답이라는 것을 안다.
경확한 세부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이야기도 단지 그것이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도 진실이 아니다. 우주는 이야기처럼 작동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이런 허구를 믿을까? 한 가지 이유는, 개인의 정체성은 이야기 위에 구축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이야기를 믿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그런 이야기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검증하는 데 필요한 지적, 감성적 독립성을 키워가기 오래전부터 부모와 교사, 이웃, 문화 전반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다.
지적으로 성숙해졌을 때쯤이면 이미 사람들은 이야기에 너무나 심하게 투자를 한 상태여서, 그 이야기를 의심하기보다는 합리화하는데 자신의 지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정체성 찾기를 계속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보물찾기에 나선 아이와 같다. 부모가 자신을 위해 미리 숨겨둔 것만 찾을 뿐이다.
두 번째로, 우리의 개인 정체성뿐만 아니라 집단의 제도 역시 이야기 위에 서 있다. 그 결과 그 이야기를 의심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많은 사회에서 그 이야기를 의심하려 드는 사람은 누구든 추방당하거나 박해를 받는다.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경우에도 사회의 연결망인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하려면 강심장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실제로 그 이야기가 거짓으로 판명나면 그때는 우리가 알던 세계 전체가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법이며 사회 규범, 경제 제도, 이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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