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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두운 밤, 가장 밝은 낮 - 부활절기에 함께하는 가정예배서
마티 마쵸스키 지음, 필 쇼어 그림, 윤주란 옮김 / 홈앤에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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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이번 사순절의 고난주간을 새로우면서도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와, 동시에 그리하여 다시 맞는 부활절을 좀 더 뚜렷하며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우연하게 바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 동안은 고난주간을 시간순서별로 하루하루 살펴보거나,

아니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셨던 가상칠언의 말씀을 보았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7가지 주제로 살펴보게 되니,

같은 내용인 듯 하면서도, 다른 새로운 느낌을 가지며, 묵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가장 어두운 밤으로 끝나지 않고 가장 밝은 낮으로 이어지게 되는 부분,

책을 보면 알겠지만, 그 구성이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밝은 낮의 부분은 앞의 구성과 같이 저자는 7개의 주제로 책을 구성하였다.

이 또한 기존의 단순하게 느껴졌던 '부활'에 대해, 부활의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주는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왔다.

부활도 끝이 아니다. 부활은 책에서처럼, 승천으로 그리고 오순절로 그리고 지금 여기로 계속 되어지는 역사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후의 종이 면이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하얀 면이 아닌,

가장 어두운 밤의 끝 부분 처럼,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를 첨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스도인의 달력인 교회력을 따라 사는 성도들에게 있어,

이 책은 가족들과 함께 그 절기의 의미를 보다 흥미로우면서도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책인듯 하다.

사순절의 고난주간을 시작으로 부활절과 이어 오순절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의 교회력의 항해가

이 책과 더불어 순조롭게, 주의 은혜와 사랑의 바람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목적지에 이르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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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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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란게 참으로 신기하다. 그 영향이란 것도...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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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멈춤이 아니라 동행이다 - 불안과 두려움이 덮쳐도 당신은 쉴 수 있는가?
김한요 지음 / 두란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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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일로 분주하기만 한 이 때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쉼'이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쉼이란 여러가지 일을 놓는 것, 이 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것이었다. 쉼이란 마치 아름다운 모래 해변, 그 위에서 따스한 햇살을 온 몸으로 맞이하며, 누워서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즐기는 것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 그럴 수 있겠는가? 현실은, 휴가를 그렇게 보낼 수 있다 할지라도, 분명히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몸과 정신은 따로 놀 수밖에 없다. 한시도 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때는 없다. 그렇다고 사표를 낼 수도 없는 일. '쉼'은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이야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면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생이란 생명이 살아가는 것이다. 생명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명은 태어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야 한다. 자라기 위해서는 성장 과정이 무조건 필요하다. 이 성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타의든 자의든 간에 겪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가 전에 가졌던 생각에서 이 때의 쉼이란 '죽음'일 것이다. 생명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도퇴되어서 죽어야만 끝나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인가? 왜 이리 인생이 이리도 힘들고 어렵고 무겁게 되었는가? 우리를 만드신 분의 계획이고 뜻인가? 저자는 그렇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인생이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은 '죄' 때문인 것이다. 인생의 무거운 짐은 바로 죄의 짐이다. 저자의 말에 따라서,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용서를 받는 것 외에는 죄의 짐에서 가벼워질 방법은 없다. 우리에게 기쁜 소식은 그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 진자들'을 초청했다라는 것이다.


진정한 쉼은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말 처럼 일을 안하는 것이 쉼이 아니라, '만족한 마음'이 바로 쉼이다. 이 만족한 마음은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께 사랑받고, 나의 삶이 인정받을 때 생기는 것이다. 멍에를 벗는 것이 쉼이 아니라, 멍에를 혼자 지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지는 것이 진짜 '쉼'인 것이다.


멍에란 하나님의 영광의 사역이다. 그 창조주의 사역을 인간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반대로 창조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일을 하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 즐거우며 굉장한 일이겠는가? 방법이 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가능하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존재가 변화된다. 우리는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게 무슨 일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쉼이란 예수님께 나아가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인생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이다. 따라서 일이 없고, 일을 멈추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쉼이 아니라, 불가능이 없으신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도록 하시는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들여 함께 살아갈 때가 바로 '쉼'이 되는 것이다. 쉼은 멈춤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동행이다.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려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런데 이제 모든 만물을 만드신 전능하신 아버지가 계시니 얼마나 든든한가? 이제 언제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무슨 일이든지 감당할 수 있다. 이제 참으로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복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쉼'을 누리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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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로피 드라마 - 생명과 회복의
김영길 지음 / 두란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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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인생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 그리고 인도하심을 증거하는 생생한 증언이 담긴 책이다. 하나님은 막연하고 멀리 계시며 미신적인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으로, 분명히 계시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저자는 바로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보여주는 삶을 살아내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기를, 또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는 먼저 빚진 자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주기를 기대하고 도전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있는 그대로 읽고, 그저 한 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모든 내용이 저자의 실제 삶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자를 통하여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 분명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따르고 있고 삶을 통해 보여주는 신트로피 법칙은 비그리스도인에게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그리스도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도록 다시 생활을 재점검할 수 있도록 한다. 저자의 신트로피 법칙은 계속해서 진행형이다. 저자가 주장하기 전에부터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왔고, 이제 저자가 쉽고 친절하게 그것을 나눠줌으로, 이 법칙을 알게 된 사람들로 인해 퍼져나갈 것이다. 저자가 총장으로 섬기고 있는 '한동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신트로피 법칙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야 할 정말 소중한 책임에 틀림이 없다. 비그리스도인이든 그리스도인이든, 햇볕이나 비가 선인과 악인에게 구별하지 않고 동시에 내리듯, 모든 이들이 이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를 바래본다. 정말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보태기=>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저자의 표현이다. 저자가 들었던 물,수증기,얼음으로 설명했던, 삼위일체론에 대한 비유는 '양태론'이다. 삼위일체론을 인간편에서 설명하려다가 대개 잘못들게 되는 표현이 바로 양태론이다. 양태론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쉽게 예를 들어, 양태론을 받아들이면,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이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 코미디가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신에게 기도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 아니다.

 

성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이 아니고, 성자 하나님인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이 부분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강조되어져야 한다. 생각해보라. 사랑하는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아버지가 세상에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고 해보라. 모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길 밖에 없다고 해보라. 차라리 아버지가 아들을 대신해서 죽는 것이 훨씬 더 쉽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랑하는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부 하나님의 놀라운 형용할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다. 삼위일체론은 우리의 머리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 가운데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조차없는 진리가 내재되어 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제가 직접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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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신앙 습관 길들이기
김병태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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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근육을키우는 신앙습관 길들이기-관점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집중이 안되는가?'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집중이 안되었던 이유는 서로 잘 연결되지 않는 예화들이나 명언들이 난무해서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전에 저자의 책을 읽었던 감동이 남아있었던 터라, 그 힘으로 끝까지 읽어내긴 하였지만, 기대가 가득해서 그런지, 오히려 실망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 같다. 계속 읽으면서 '그래, 저자가 드는 예화나 명언에서라도 좀 건져내자!'가 내가 이 책을 보는 '관점'이었다.

 

저자는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고 말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면, 사실 도대체 특별히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딱히 특별한 관점이 없다. 물론 말씀을 예로 들었고, 그 예로부터 몇몇의 하나님의 관점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관점이란 오늘날 부단히도 자기계발에 애쓰고 있는 여타의 책들에서 말하는 그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굳이 하나님의 관점이라고 할만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다시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돌아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관점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 말고,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서 나오는 그 관점으로 나의 관점을 통찰하는 식으로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해석', 나도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처럼 그 해석을 나의 관점이나, 세상의 관점에서가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하자는 것이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자는 것이 그저 '구호'에 끝나버리지 않았나하는 느낌이 든다. 좋은 말은 많았다. 너무 많았다. 저자가 욕심을 내었나 보다. 많은 말들을 해주고 싶었나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제가 직접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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