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퍼센트 독고독락
김태호 지음, 최지수 그림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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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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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만나 독고독락
조우리 지음, 근하 그림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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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란 용어 자체도 이젠 지겨운 시대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고,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런 가운데 '전염병'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니!!! 이건 뭔가.... 그러나 작가는 딸아이가 '코로나 19'가 착한 질병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며 종알거린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이 작품을 썼다는 말에 급 긍정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필자는 책을 읽기 전에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를 먼저 읽는 습관이 있음을 밝힌다. ^^;;; 뭔가 상황파악 차원에서다. ^^)

'상세 불명의 기면', '대치기면증' 그리고 최종 WHO가 명명한 이름은 'NARC-19'
Narcolepsy가 '기면증'을 의미하는 것에서 앞의 NARC만 따 온 형태였다. 현 시대를 강타하고 있는 Covid-19가 연상되고, 정명섭 작가의 <새벽이 되면 일어나라>라는 소설도 떠오른다.

<꿈에서 만나>에 설정된 전염병인 NARC-19는 다른 전염성 질병과 다른 특이점이 있다.
먼저, 사망자가 없었고, 전원 자가 치유되었다. 증상은 갑작스레 수면 상태로 빠지는 것 뿐이었다. 그 때문에 기립 상태에서 조금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 외에 유의 사항은 없었다. -중략- 발병자들이 모두 십 대 청소년이라는 사실이었다. _ 13~14p.

코로나로 학기 초 혼란을 겼었던 것처럼 소설 속에서도 질병관리본부, 교육부 그리고 학부모들 사이에 의견이 혼재한다. 그리고 결국은 '원래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잔다'는 주장과 '집보다 학교에서 자는 게 더 안심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아이들은 일상과 같이 등교하게 된다.

과연 이런 수면 전염병이 어떻게 소설 속에서 작용할까?
사망자가 없다고 하니 심각한 두려움에 빠질 일은 없을 것 같고, 수업시간에 원래 잔다는 학부모들의 의견은 교사인 필자에게는 심기가 불편하게 만든다. 과연 작가는 잠자는 전염병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문득 작가의 말에 적혀있던 글이 또 생각났다.
'잠과 연애에 관심이 많은 나는 내 취향대로 변형했다.' (71p,)
심각한 증상이 아니니 연애, 로맨스로 빠지는 구나!!

등장인물 '니나'는 전교 1등이다. 학업 외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부모의 영향보다는 스스로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렇게 골치아픈 일이 생겼다. 입시를 위해 필요한 스펙이라 여겨 가입한 학생회에서 하필이면 '홍보부장'이라니. 할 일이 별로 없을 거란 말에 냉큼 집어든 카드지만, NARC-19라는 긴급 상황에 대한 학교의 대처 상황과 심리상담 등을 안내할 홍보물을 제작하는 게 급선무였다. 마땅한 부원도 없이 혼자 도맡아야 하는 상황. '망했다.' 니나의 머리속을 가득 채운 한 마디는 니나의 성격과 삶의 태도를 다 말해준다.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돕겠다는 말이 없는 가운데 자원하며 돕겠다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평소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삶과 부류가 다른 사람이라 여겼던 학생회장이었다. '아까 대답 좀 잘 해줄걸' 그래도 니나는 무뚝뚝하게 외면했던 자신의 행동을 3초 정도 반성은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반성할 줄 아는 전교 1등이라니... ^^)

점점 NARC-19에 전염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데 흥미로운건 감염된 학생이 꿈에서 본 사람이 전염된다는 거다. 아하 이건 또 뭐지, 갑자기 웹툰이자 드라마인 '러브 알람'도 떠오른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야 꿈에서도 보지 않나? 역시 소설에서도 그런 설정이다. 은근히 인기많았던 아이들이 감염되지 않으면 기분이 묘해지고, 감염되면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나를 꿈꿨구나! 하며 묘하게 행복해하는 아이들!

학생회장과 홍보용 포스터를 제작하며 니나는 계속 불만이다. 그냥 대충 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고르고 수정하고, 난리인가. 이 두녀석 완전히 다른 성향 같다.

- 니나 : 적당히 고르지.
- 회장 : '적당히'가 무슨 말이야. 제대로 해야지
- 니나 : 이러고 있는 동안 영어 단어 100개는 더 외웠고, 기출문제 100개는 더 풀었겠다. 중요한 일도 아닌데, 언제까지 붙잡고 늘어져 있을거야?
- 회장 : 와... 우리 엄마가 최근에 한 말이랑 완전 똑같아
- 니나 : 여섯 개나 되네. 이 중에 하나 골라. 못 고르겠으면 던져서 멀리 나가는 걸로 해.
- 회장 : 그럼 중요한 게 뭔데?
>> 꿈에서 만나_35~36쪽 일부 재구성

회장이 니나에게 던진 이 말, '그럼 중요한 게 뭔데?'는 니나의 마음에 작은 파장을 던진다. 처음엔 살짝 흔들리는 물결인가 싶었지만, 이후 니나의 삶을 온통 쏟아넣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혼자 고민도 하고, 회장을 만나 다시 물어보기도 하며 신선하면서도 감미로운 혼란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회장이 NARC-19에 감염된다. 이후 회장에 대한 생각에 빠져드는 니나. 왜 내 생각을 안하는 거지? 왜 나는 안 걸리는 거지? 니나의 마음에 잦아드는 애틋함과 풋풋한 하트모양 기류들은 독자의 시선에도 잔잔한 미소를 만들어준다.

"너지, 너 맞지?"
니나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과연 학생회장이 정말 꿈에서 니나를 만난 것일까?

전염병이란 무서운 용어가 이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우리 현실도 얼마나 좋을까? 좋은 것이 전파되는 세상. 작가의 어린 딸이 '코로나19도 착한 질병이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귓전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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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니버스 독고독락
조규미 지음, 이로우 그림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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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끄는 단편소설을 만났다.

시간여행자라는 소재는 한번 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해본 독자들이 많을거다. 이런 공상과학류의 소재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만 아니라면 첫 발을 들이기에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다.

믿지 못하겠지.

자신이 시간여행자라고 밝힌 '박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나'에게 이 말을 던진다.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시간여행, 믿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꽤 흥미롭고 또 진지하게 꿈꿔보고 싶은 일이다. 지금 이 세계가 아닌 과거나 미래의 나 또는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니!

박람이 머무는 원룸 건물 아래 편의점에서 두 소년은 저녁마다 만나서 소박한 식사를 즐긴다. 한 명은 부모의 손에 떠밀려서 학원으로 방랑하는 고1. 한 명은 시간여행을 와서 과거인들과 과거 세계를 열심히 살펴보는 고1이다.

어느 날 도대체 박람이 어디를 돌아다니는 걸까 궁금해진 '나'는 슬쩍 람이 타는 버스에 따라 오른다. 그가 종일 돌아다닌 곳이 '고향'이라니!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머리 속에서는 '진짜 시간여행을 왔나??' 하는 의문과 동시에 '그래서 어떻게 될까?'라는 호기심이 경쟁하듯 달린다. 람의 언행과 '나'의 꿈 같은 경험들 속에서 독자도 어느 덧 또 다른 세계의 블랙홀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대형 참사가 나는 고층 쇼핑몰에 대해 무심결에 말하는 람.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이후 17편의 시리즈가 나올거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람.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잘 자랄거라고 말하는 람.

이 정도면 시간여행 중이라는 람이 거짓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학원에서 배운 것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람과 돌아다니며 본 것들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57쪽

억지로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한 '나'는 가끔 람을 쫓아다녔다. 세상 모든 것을 공부하고 있는 람과 함께하며 서서히 삶을 배워가는 '나'.

이제 나도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어.

58쪽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람이 떠날 시간도 성큼 다가왔다. 담임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람은 자신의 본명을 밝힌다. '시미람' 그건 별 이름이었다. 담임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별 이름!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던 별 이름이라......

62쪽

람은 왜 시간여행을 했을까?

대형 사고도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되고, 과거의 흐름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시간여행은 오히려 안타까움만 남기지 않을까?

과거를 살아가는 할아버지 앞에서 그 무엇도 밝힐 수 없는 람이지만, 미래를 알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딸이자 람의 엄마에게 아주 따스하고 소중한 선물을 남기도록 돕는 마음이 이 작품의 마지막을 훈훈하고 아름답게 장식한다.

평범한 고등학생 같지만, 알고 보면 머나먼 시간 여행을 통해 엄마를 위한 소중한 유서를 남기도록 도운 람의 미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시간여행이라는 설정 하에, 원래는 빗물에 지워져서 읽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편지(엄마에겐 아버지의 편지)를 다시 읽을 수 있는 미래의 삶에서 엄마를 비롯한 람의 가족들은 어떤 삶의 변화를 겪고 있을까?

람이 '나'에게 말한 것처럼 '멋진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은 또 어떨까?

내가 만약 시간 여행을 한다면, 람처럼 과거의 흐름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무언가 아주 약간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소설을 분명 다 읽었는데, 계속 생각이 맴돈다. (이런 소설, 좋다! 맘에 든다!)

어서 학생들과도 읽고 토론해보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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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서 사계절 1318 문고 129
김혜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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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학교에 관한 이야기다.

학교 문이 닫힌 후,

학교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김혜정의 <학교 안에서>"

 

전형적인 네모 건물에 네모 창문이 7개다.

창가로 보이는 사람들은 전직 기간제 교사와 7명의 학생들이다.

김혜정 작가는 에필로그에 이렇게 밝혔다.

"이 글은 학교에 관한 8인의 고백이자, 나의 고백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텐텐 영화단>을 떠올린 터라 이러한 작가의 고백이 사뭇 진지했다. 영화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보여주는 당당한 발걸음을 기억하며 즐거움이 솟아났다가, 이 책에 등장하는 학생들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에게 학교는 어떤 의미였을까?"

솔직히 학생때의 기억은 따스함, 엄격함, 꿈, 절친, 존경하는 선생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선생님, 인정 등이다. 그래서 우리가 학교에 다니며 만났을 거라는 '한영주, 차선빈, 이한아, 서지우, 이주리, 김아인, 박재준, 위진성'이란 캐릭터들에 고스란히 공감하긴 어려웠다.

오히려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학교 안에서의 순수함과 열정과 사랑을 무색하게 하는 사연만 담아둔 책 같아서 살짝 거부감도 들었다.

아니, 너무나도 사실이라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연도 있기에 외면하고 싶어서 드는 거부감인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서평가들이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SNS에 올라오는 협박성 메시지로 사건이 시작된다. 학교 안에 갇힌 8명뿐만 아니라 학교 밖의 어느 누구도 교문을 통과하면 폭탄이 폭발하게 될 거라는 거였다.

세상은 가십거리가 생기면 불 붙듯이 달려들고, 더이상 빨아먹을 게 없다 싶으면 그냥 외면한다.

고립된 학교, 갇힌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폭발 협박. 이거야말로 세상의 야릇한 호기심을 충동하기 좋은 소재다.

그러나 진정 그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은 하는 건지, 아니면 적절히 다루며 세간의 시선만 집중 받고 내버려두려는 건지 마땅히 한걸음에 달려와야할 폭발물 감식반도 좀처럼 오지 않는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단다.

도대체 언제까지 마냥 기다려야하는 걸까? 범인에 대한 추적도 외부에서 내부로 옮아간다. 어쩌면 범인은 너희와 같이 있으니 서로 불신하고, 의심하며 알아서 찾아내라는 건가?

기다림의 연속 속에서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여덟 명의 학교 안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도 느릿느릿 함께 전개된다. 그럴수록 범인에 대한 추적도 느슨해진다. 이 점이 스릴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답답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뭐! 도대체 왜 이 아이들과 교사를 남긴거냐고~!!"

작가는 분명 자신의 고백이라고 밝혔지만 그걸로는 성격 급한 독자를 달래기엔 무리였다.

들썩인다. 페이지를 이리 저리 넘기기도 한다.

도대체 이 아이들, 어떻게 살아온거야! 싶으니까 안쓰러움도 생긴다.

순간 한 아이가 생각났다.끊임없이 교사의 관심을 구애하던 아이.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대하는데도 그 아이는 같은 미소나 같은 칭찬에도 과하게 반응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보니 다른 교사들에게도 똑같이 다가갔다가 순식간에 질려버린 교사들로부터 외면받은 아이였다. 여러 이유가 존재했다. 그러나 누구의 탓을 하기가 참 애매한 관계였다. 결국 그 아이는 학교를 그만뒀다.

교사 편에선 같은 사랑의 정도로 대했으나 지나친 아이의 태도에 에너지 소모가 컸던거다.각종 격무에 시달리고, 살펴아하는 수많은 학생들을 두고 한 아이에게만 집중할 순 없는 구조였다.

학생 편에선 그냥 선생님의 시선,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거다. 그러나 그 사랑을 독차지하려해선 안되는 곳이 학교였다. 그리고 그 결핍은 가정에서부터 기인했다.

이 책에 나오는 학생들의 아픔은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참 딱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학교를 마냥 탓하기엔 더 살펴야 할 점도 분명히 있고, 학생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우리 사회의 어른들의 책임이 더 큰 것 아닐까 싶다.

학교 안에서의 다양한 아픔을 다루는 시도와 그로 인해 우리가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해보게 하는 의도는 참신하다. 그러나 소위 학교가 무너진다는 표현이 일상화되려하는 시대에 또 학교 흠집내기 아닌가 싶어 아쉬운 책이다. 그나마 '정규' 학교에선 그렇지 않다는 장치로 사립학교와 기간제 교사를 소재로 쓴 것도 씁쓸한 현실이다..

한 사람의 문제가 이미 사회구조 문제로 번져간 건 이해되면서도, 또 다른 한 사람들까지 잘못된 학교문화의 일원이라 호도당하는 것도 이젠 싫다. 언제까지 그들만의 문제고 난 아니야..라고 방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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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의 뜰
강맑실 지음 / 사계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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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과 풍경을 직접 그리고, '막내'로서의 삶을 회상하며 작가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196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낸 작가가 나이가 들어도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게 신기해서 집의 평면도를 그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맑실'이라는 이름이 필명인가 싶을 정도로 형제자매들의 이름도 참 '순수'하다. 별언니, 밝오빠.. 부모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셨을까 생각하며 책을 펼치게 한다.

"누구에게나 유년 시절은 있다."(5p.)는 말처럼 누구나 가진 다양한 형태의 유년 시절을 대부분의 우리들은 기억 속에만 담아두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때로는 기억의 한 조각이 어디론가 빠져서 헤매는 경우도 있다. 그런 기억들이 오롯이 잘 남아있도록 책으로 엮어낸 작가의 도전과 실천 덕분에 이 책을 만난 독자들은 '유년행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부터 띠지(책표지를 하단을 둘러싼 종이)에 그려진 평면도와 정원 그림을 보며 '나'의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집에 대한 생각에 잠긴 채 한두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이에 더해서 어린 시절 앨범까지 찾아보며 아예 방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 책을 읽을 몸과 마음의 준비가 다 된 기분일 것이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막내'는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열 개의 집에서 살았다. 그 중 일곱 개의 집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문득 나는 이사를 몇 번 다녔더라? 생각해봤다. 열한 살이 될 때까지는 4번, 20살이 될 때까지는 총 7번이었다. ^^ 그런데 더 심한(?)건 우리 꼬맹이는 거의 해마다 이사를 다닌 꼴이니 수많은 이사 경험마다 뭔가 추억이 될 만한 일들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대부분의 집이 학교 관사인 것을 보며 또다시 내 경험 속에 빠져들었다. *강화도로 전근오면서 한 가지 기대했던 것은 몇 년만 기다리면 관사가 제공된다는 거였다. 그러나 8년 만에 순서가 되서 받은 가족관사에서 딱 한 달 살다가 도망치듯 나온 경험이 있다. 얼.마.나!! 추운지.. ㅜㅜ 집 안에서도 입김이 보이고, 침대마다 1인용 텐트를 설치하지 않으면 포근하게 자기 힘들었다. 그런 힘들고 추운 기억만 가득한 관사였기에 작가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머물렀다는 집 중 '관사'에 대한 기록에서 혹시나 이런 경험이 없을까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전남 지역의 관사는 상황이 좋았는지 그런 내용은 없었다. 그래서 한 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관사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꿨던 내가 겪지 못한 것을 작가의 경험을 통해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책은 한 챕터를 읽거나 하나의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독자도 자신의 경험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읽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마치 책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기분이 들어서 여유로운 독서시간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자 대가족이기에 가능한 유쾌하고도 으악! 소리지르게 만드는 목욕행사 경험을 읽으며 작가의 가족들만이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한 달에 한 번 목욕탕 물을 데워 목욕하는 건 막내네 식구들에게 자그마한 월례 행사였다. 물이 데워지면 아버지가 제일 먼저 목욕을 했다. 그리고 큰언니, 작은언니, 큰오빠, 작은오빠 순으로 때를 밀었다. 그때마다 탕 안에는 둥둥 때가 떴다. 엄마는 뜰채로 때를 걷어내고 탕 안의 물이 줄면 다시 찬물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땠다. 한 사람이 탕 밖에서 때를 벗기며 씻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탕 안에서 때를 불렸다. - 후략

막내의 뜰 - 37p.

이 부분을 가족들에게 읽어줬더니 다들 '으웩~'하며 웃는다. 가만히 미소 지으시던 어머니께선 "야야.. 그 때는 그렇게라도 목욕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건데 그러냐~ 몸을 뿔려서 때를 밀 수 있는 환경이면 잘 산거다~"라고 말씀하신다.

온 가족의 목욕을 위해 열심히 물을 데우고, 때를 걷어내는 정성을 보여주신 작가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고, 순서대로 목욕하며 느꼈을 7남매의 왁자지껄한 풍경들도 그 자체로서 소중한 기억이겠다 싶다.

막내 너는 저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막내의 뜰 45p.

막내라면 이런 말을 한번 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언니오빠들이 막내에게 다리 밑에서 주워 온거라고 놀릴 때 아니라며 울기만 했던 어린 아이의 모습에 내 모습이 교차되어 보였다. 나도 어릴 적 언니들이 이런 말을 해서 엄마께 물어볼 용기도 내지 못하고 집 밖의 벽에 기대어 쭈그리고 앉아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옷을 사오신 아빠가 유난히 그날따라 두 언니들은 같은 스타일로 사오셨지만 내 것만 달랐던 것도 신경쓰였던 날이었다. 그렇게 한참 울다 나를 발견한 엄마 품에 안겨서야 겨우 물어봤다. "엄마, 진짜로 저를 다리 밑에서 주워오신거예요?"라고... 당시 엄마께선 그렇게 놀린 언니들을 혼내시고 나를 꼭 안아주셨다. 막내이기에 그런 놀림이 사실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그 기억도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였다.

엄마, 나 오늘 머리 잘라도 돼? - 모기만한 소리로 막내가 물었다. 정신없이 항아리를 닦던 엄마는 건성으로 - 응, 그려 알았다잉 -했다. 막내는 엄마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문을 박차고 언덕 아래에 있는 미용실로 달려갔다.

막내의 뜰 170p.

뭔가 하고 싶은 일인데 부모님께서 반대하실 것 같으면 에둘러서 말하거나 들릴랑 말랑한 목소리로 물어보고 대충 대답하시자마자 행동 개시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공감이 됬다. 막내는 얼마나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었을까? 심지어 외상으로 미용을 마치고 짧은 단발머리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스치는 그 기분이 얼마나 상쾌했을까? 물론 집에 돌아온 막내를 본 엄마는 한바탕 호통을 치신다. ^^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까?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먹고 싶은 마음에 엄마께서 낮잠을 드신 순간 귀에 대고 쬐그맣게 속삭였다. "엄마, 저 500원만 주세요!" 당시엔 하루 100원이면 50원짜리 과자를 2개나 사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잠에 취한 엄마는 "어,어 그래~"하고 주무셨다. 바로 지갑에서 500원짜리를 꺼내서 친구와 놀러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날 오후 구멍가게에서 1원짜리 눈깔사탕도 잔뜩 사고, 10원짜리 라면과자도 마음껏 사고, 50원짜리 100원짜리 음료수도 사서 친구들에게 한 턱(?) 쐈던 날이었다. 물론, 집에 돌아와서 엄마의 반응은 ^^ 다행히 혼내시진 않으셨다.

작가의 경험과 독자의 경험을 번갈아가며 읽고, 생각하며 읽다보면 어느덧 책의 마지막이 보인다. 명절날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면 곁에서 듣다가 맞장구를 쳐 주기도 하고, "아니여, 그건 이랬제."하며 중간에 끊어진 칠형제의 유년의 기억을 촘촘히 이어주던 분이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부모님이 이어주신 기억의 연결고리 덕분에 막내의 기억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이제는 칠형제의 이야기 속에, 기억 속에, 마음 속에만 남아계신 부모님을 추억하며 작가의 유년 시절 이야기도 마무리를 짓는다.

작가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엄마의 유년을 들여다보며 자신들의 유년은 어떻게 떠올릴지 궁금하고, 아이들의 유년 속 나는 어떤 엄마일까."라고..

이 말은 독자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남을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에게 어떤 부모로 기억될 것인가..? 간단한 질문 같지만, 어떤 부모로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책을 덮는 그 시점부터 삶의 진지한 목적과 나의 삶도 살펴보게 한다.

★ 교사서평단, 김혜연의 100자 평

- 작가의 유년의 기억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나의 유년을 떠올리고,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의 자녀들까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참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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