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만나 독고독락
조우리 지음, 근하 그림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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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란 용어 자체도 이젠 지겨운 시대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고,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런 가운데 '전염병'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니!!! 이건 뭔가.... 그러나 작가는 딸아이가 '코로나 19'가 착한 질병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며 종알거린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이 작품을 썼다는 말에 급 긍정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필자는 책을 읽기 전에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를 먼저 읽는 습관이 있음을 밝힌다. ^^;;; 뭔가 상황파악 차원에서다. ^^)

'상세 불명의 기면', '대치기면증' 그리고 최종 WHO가 명명한 이름은 'NARC-19'
Narcolepsy가 '기면증'을 의미하는 것에서 앞의 NARC만 따 온 형태였다. 현 시대를 강타하고 있는 Covid-19가 연상되고, 정명섭 작가의 <새벽이 되면 일어나라>라는 소설도 떠오른다.

<꿈에서 만나>에 설정된 전염병인 NARC-19는 다른 전염성 질병과 다른 특이점이 있다.
먼저, 사망자가 없었고, 전원 자가 치유되었다. 증상은 갑작스레 수면 상태로 빠지는 것 뿐이었다. 그 때문에 기립 상태에서 조금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 외에 유의 사항은 없었다. -중략- 발병자들이 모두 십 대 청소년이라는 사실이었다. _ 13~14p.

코로나로 학기 초 혼란을 겼었던 것처럼 소설 속에서도 질병관리본부, 교육부 그리고 학부모들 사이에 의견이 혼재한다. 그리고 결국은 '원래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잔다'는 주장과 '집보다 학교에서 자는 게 더 안심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아이들은 일상과 같이 등교하게 된다.

과연 이런 수면 전염병이 어떻게 소설 속에서 작용할까?
사망자가 없다고 하니 심각한 두려움에 빠질 일은 없을 것 같고, 수업시간에 원래 잔다는 학부모들의 의견은 교사인 필자에게는 심기가 불편하게 만든다. 과연 작가는 잠자는 전염병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문득 작가의 말에 적혀있던 글이 또 생각났다.
'잠과 연애에 관심이 많은 나는 내 취향대로 변형했다.' (71p,)
심각한 증상이 아니니 연애, 로맨스로 빠지는 구나!!

등장인물 '니나'는 전교 1등이다. 학업 외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부모의 영향보다는 스스로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렇게 골치아픈 일이 생겼다. 입시를 위해 필요한 스펙이라 여겨 가입한 학생회에서 하필이면 '홍보부장'이라니. 할 일이 별로 없을 거란 말에 냉큼 집어든 카드지만, NARC-19라는 긴급 상황에 대한 학교의 대처 상황과 심리상담 등을 안내할 홍보물을 제작하는 게 급선무였다. 마땅한 부원도 없이 혼자 도맡아야 하는 상황. '망했다.' 니나의 머리속을 가득 채운 한 마디는 니나의 성격과 삶의 태도를 다 말해준다.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돕겠다는 말이 없는 가운데 자원하며 돕겠다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평소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삶과 부류가 다른 사람이라 여겼던 학생회장이었다. '아까 대답 좀 잘 해줄걸' 그래도 니나는 무뚝뚝하게 외면했던 자신의 행동을 3초 정도 반성은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반성할 줄 아는 전교 1등이라니... ^^)

점점 NARC-19에 전염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데 흥미로운건 감염된 학생이 꿈에서 본 사람이 전염된다는 거다. 아하 이건 또 뭐지, 갑자기 웹툰이자 드라마인 '러브 알람'도 떠오른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야 꿈에서도 보지 않나? 역시 소설에서도 그런 설정이다. 은근히 인기많았던 아이들이 감염되지 않으면 기분이 묘해지고, 감염되면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나를 꿈꿨구나! 하며 묘하게 행복해하는 아이들!

학생회장과 홍보용 포스터를 제작하며 니나는 계속 불만이다. 그냥 대충 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고르고 수정하고, 난리인가. 이 두녀석 완전히 다른 성향 같다.

- 니나 : 적당히 고르지.
- 회장 : '적당히'가 무슨 말이야. 제대로 해야지
- 니나 : 이러고 있는 동안 영어 단어 100개는 더 외웠고, 기출문제 100개는 더 풀었겠다. 중요한 일도 아닌데, 언제까지 붙잡고 늘어져 있을거야?
- 회장 : 와... 우리 엄마가 최근에 한 말이랑 완전 똑같아
- 니나 : 여섯 개나 되네. 이 중에 하나 골라. 못 고르겠으면 던져서 멀리 나가는 걸로 해.
- 회장 : 그럼 중요한 게 뭔데?
>> 꿈에서 만나_35~36쪽 일부 재구성

회장이 니나에게 던진 이 말, '그럼 중요한 게 뭔데?'는 니나의 마음에 작은 파장을 던진다. 처음엔 살짝 흔들리는 물결인가 싶었지만, 이후 니나의 삶을 온통 쏟아넣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혼자 고민도 하고, 회장을 만나 다시 물어보기도 하며 신선하면서도 감미로운 혼란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회장이 NARC-19에 감염된다. 이후 회장에 대한 생각에 빠져드는 니나. 왜 내 생각을 안하는 거지? 왜 나는 안 걸리는 거지? 니나의 마음에 잦아드는 애틋함과 풋풋한 하트모양 기류들은 독자의 시선에도 잔잔한 미소를 만들어준다.

"너지, 너 맞지?"
니나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과연 학생회장이 정말 꿈에서 니나를 만난 것일까?

전염병이란 무서운 용어가 이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우리 현실도 얼마나 좋을까? 좋은 것이 전파되는 세상. 작가의 어린 딸이 '코로나19도 착한 질병이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귓전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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