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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왕 ㅣ 미래엔그림책
제레미 모로 지음, 셀린 리 그림, 정혜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25년 11월
평점 :
#협찬 #솔직후기

글 밥이 많은 그림책은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페이지에 오래 머물게 되는데요. 페이지를 마구 넘겨버리기에는 그림이 정말 예쁜 그림책을 만났어요. 게다가 줄글 읽는 재미까지 더해진 깊이 있는 그림책이었지요. 학년 구분 없이 초등 아이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답니다.
표지만 봐도 읽고 싶다, 사고 싶다 외치게 되는 그림책이 있는데요. [고양이 왕]은 한국에도 팬이 많은 제레미 모로와 셀린 리가 협업한 거라고 하네요. 유명한 작가들이 선보인 신간은 늘 두근거리죠. 페이지를 넘길수록 심오해지는 고양이 왕의 이야기가 새로운 우화를 만난 느낌을 주었어요.
안정적인 실내 공간에서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고양이 왕은 기지개를 쭉 켠 다음에 바깥으로 나가 봅니다. 아름답고 풍족해 보이는 정원에는 많은 생명으로 늘 북적인다고 해요. 누가 살고 있을까 페이지를 넘겨 보았는데요. 깜찍한 작은 동물들이 하나같이 표정이 좋지 않았어요. 눈썹이 8시 20분을 가리키며 축 처져 있었는데요. 다들 고양이 왕을 피하는 눈치였어요.

악마에 씐 것 같이 뛰어오르고 달려들고 난리를 치던 폐하는 돌변해서 또 기품 있게 걸어가요. 등 뒤에서 울부짖고, 분노하고, 혐오하는 작은 동물들이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어요. 그들에게 고양이는 두렵지만 반드시 내치고 싶었던 존재였어요.
"고양이 왕이 왕 노릇을 하는 건,
인간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일 뿐이야!"
이제부터 들쥐, 개구리, 토끼, 고슴도치, 지렁이 등 정원에 사는 작은 동물들이 공격을 시작합니다. 은밀하게, 꼼꼼하게! 어떤 작전을 세웠을지 궁금하더라고요. 폐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어요. 후덜덜. 빈 그릇이 일곱 개! 일주일 동안 밥을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고양이 왕의 밥그릇이 텅 비어 있었어요. 그래서 바깥으로 나갔는데!
폐하는 티티새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도 턱을 덜덜 떨며 힘을 쓰지 못했어요. 그렇게 또 일주일을 굶고 정원의 가장 외진 구석으로 숨어들었어요. 그릇에 사료를 가득 받았어도 입맛이 뚝 떨어진 우리의 고양이 왕! 사료는 입도 대지 않고 고개를 떨군 채 집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내가 무슨 고양이야?
배가 고플 때조차도 사냥을 못 하는데."
반쪽짜리 고양이가 된 폐하는 어느 절벽에 다다랐을 때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거대한 고양이가 뿔 달린 쥐를 사냥하고 있었어요. 정원 안에서 왕으로 군림했던 우물 안 개구리 우리의 고양이 왕.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더니 뿔 달린 쥐가 뭔가요... 그나저나 왕은 여기에 있었나 봐요. 고양이 왕은 고개를 숙이고 새로운 왕을 맞이하고자 했지요. 하지만 야생 고양이는 일침을 가했습니다.
"왕은 무슨, 여긴 그런 거 없다!"
"네 밥은 네가 스스로 구해 보거라."
집과 정원이 아닌 산과 숲으로 나온 고양이는 처음에는 놀랐겠지만 분명 적응을 잘하고 살았을 거예요.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였던 시절보다 조금은 더 유연하고 활기차게 지냈으리라 기대가 되니 때문인데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일까? 더 큰 세상은 없을까? 한 번쯤은 의심하게 만다는 좋은 그림책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인생에 교훈을 주는 묵직한 메시지의 조화가 참 좋았어요.
